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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결정문에 적나라하게 입증된 대리투표·재투표 실상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9. 10. 3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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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다시피 어제 헌재가 미디어법 표결처리 과정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미디어법에 대한 무효 청구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과 조중동에서는 마치 헌재가 미디어법 자체가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데, 헌재의 대체적인 결정 취지는 '법안 처리 과정이 위법이긴 하나, 법안이 가결된 결과 자체를 두고 헌재가 무효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의 권한을 침해한 부분에 대해서는 국회가 자율적으로 조치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최소한의 염치와 체면이 있다면 헌재 판결을 계기로 미디어법을 강행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의 재논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국회는 계속 혼란스러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언론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물론 헌재 판결을 납득하기 힘들어 하고, 미디어법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국민 다수의 더 큰 반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만약 앞으로 국회와 우리 사회에서 미디어법을 둘러싼 혼란이 계속 가열된다면 이는 정치적인 판결을 내린 헌재의 책임이 대단히 크다. 그럼에도 어제 헌재의 결정문을 살펴보면, 의미 있게 거기다 재미있는 부분까지 찾을 수 있다. 바로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한나라당의 대리투표와 재투표에 대해 헌재가 '사실'로써 인정한 부분들이다.

신문법 처리 당시 대리투표의 적나라한 실상

헌재결정문 중 신문법과 관련한 "표결절차의 헌법적 정당성 여부"를 판단한 부분을 살펴보면, "신문법 수정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무질서한 상태에서 여러 번에 걸쳐 권한 없는 자에 의한 투표가 이루어지는 등 헌법상 다수결 원리에 반하는 명백한 절차적 하자가 있어 청구인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5명의 재판관(이강국, 이공현, 조대현, 김희옥, 송두환)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사실'로 인정했다.

가. 국회의 전산기록상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은 2009년 7월 22일 오후 3시 49분 57초 국회 본회의장에서 신문법 수정안에 대하여 최초로 재석표시를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위 시각으로부터 10초 안에 14인의 한나라당 의원이 재석표시 또는 찬성표시를 하였다. 한편,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을 바라보고 왼쪽에 걸려있는 벽시계가 3시 49분경을 가리키고 있을 때 의장석으로부터 다수의 의원들이 의원석으로 이동하였고, 그 때에도 위 이사철 의원은 의장석을 바라보고 의장석 우측 앞에서 민주당측 의원들과 몸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 한나라당 배은희 의원은 신문법 수정안에 대한 표결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석으로 접근하여 투표단말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 당시 나경원 의원은 본회의장에 없었다.

다. 한나라당 신성범 의원은 신문법 수정안에 대한 표결 당시 한나라당 안형환 의원석의 투표단말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 당시 한나라당 안형환 의원은 본회의장에 없었다.

라. 한나라당 이화수 의원은 신문법 수정안에 대한 표결 당시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석의 투표단말기 화면 쪽으로 손을 뻗었고, 곧 이어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석에서 일어나서 뒤로 돌아 한나라당 김태원 의원석에 접근하여 투표단말기 화면 쪽으로 몸을 숙여 손을 대는 듯한 동작을 취하였다.

마.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은 한나라당 김영우 의원석의 투표단말기 화면 쪽으로 향하여 허리를 구부리고 2~3초 정도 머물러 화면을 바라보는 듯한 동작을 취하다가 왼쪽 옆 자신의 자리로 이동하였다.

바. 한나라당 성윤환 의원은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석으로 접근하여 의원석 왼쪽 아래쪽으로 몸을 기울여 책상 아래 왼쪽 버튼을 눌러서 투표단말기 화면이 올라오도록 하였고, 그 당시 주성영 의원석은 비어 있었다.

사. 한나라당 여상규 의원은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석 앞 쪽에서 뒤로 돌아 보고 이범래 의원석 투표단말기 화면을 향하여 손을 뻗어 가리키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였다.

또한 이들 5명의 재판관은 "이례적인 표결 경과"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경우라면 재석과 찬성(또는 반대)이라는 2회의 표시가 있기 마련인데, 이와 달리 다음과 같은 이례적인 투표 경과가 기록상 확인된다"며 아래와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가. 이군현, 권영세, 김영선, 김무성, 허천, 조해진, 김소남, 안상수, 신영수, 진성호 의원 등 10명의 의원들의 경우, 재석과 찬성을 한 다음 이를 추소하고 다시 찬성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나. 이한구, 유정현, 서상기, 권경석, 정야석, 이범래, 유일호 의원 등 7명의 의원들의 경우, 재석과 찬성을 한 다음 이를 취소하고 반대를 하고, 다시 이를 취소하고 찬성을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최종적인 찬성표시를 포함한 총 표시의 횟수가 이한구, 유정현, 서상기 의원은 총 6회, 권경석 의원은 8회, 정야석 의원의 경우 총 10회, 이범래 의원의 경우 총 20회이고, 유일호 의원의 경우 무려 총 24회의 표시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다. 강승규, 허원제, 김재경, 황영철, 여상규, 강길부 의원 등 6명의 의원들의 경우, 재석과 반대를 한 다음 이를 취소하고, 최종적으로 찬성을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강길부 의원의 경우 총 12회의 표시를 한 것으로 되어있다.

라. 안형환, 김성식, 현경병, 나경원, 유승민, 강봉균, 손숙미 의원 등 7명의 의원들의 경우, 최초 재석, 이어 찬성 또는 반대를 하였으나 최종적으로 취소표시를 하여 기권으로 처리되었다.

이런 사실을 두고 5명의 재판관은 "심의절차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표결 절차는 국회입법권 실현의 사실상 최종 과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대한 헌법적 의미를 갖는다고 보아야 할 것", "국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과 다른 국회의원의 표결권이 모두 정당하게 행사되고 확인되는 과정을 거쳐 국회의 최종 의사로 확정되는 국회입법권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라며 "자신에게 사용권한이 없는 투표단말기를 사용하여 투표하는 행위는 그 동기나 경위가 무엇이든 국회법에 위배되어 다른 국회의원의 헌법상 권한인 법률안 표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5명의 재판관은, "피청구인(국회의장)은 신문법 표결을 진행함에 있어 다수의 위법한 투표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예견되었고, 실제 그와 같은 사례가 발생하였음에도 이를 바로잡을 자신의 권한을 전혀 행사하지 않은 채, 이를 방치하였다"며 "표결과정에서의 자유와 공정이 현저히 저해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하며 아래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신문법 수정안의 가결선포행위는 헌법 제49조 및 국회법 제109조의 다수결 원칙에 위배되어 청구인들의 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다."

5명의 재판관이 결정문에서 '사실'로 인정한 내용들은 언론노조 등에서 증거 동영상을 찾아내고, 사진을 제시하는 등 이미 수차례 언론에서 공개가 되었지만, 한나라당은 '사실이 아니다'거나 '야당때문'이라는 식으로 발뺌해왔다. 하지만 결국 헌재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위법행위를 했음을 밝혀냈다.


여기서 궁금한 것. 과연 불법이 확인된 한나라당 의원들은 어떻게 후속조치해야 하나?

코미디와 다름없는 재투표(일사부재의 원칙 위배)의 실상

방송법 개정안 표결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이른바 '재투표'가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위배되는지에 대해 5명의 재판관(조대현, 김종대, 민형기, 목영준, 송두환)은 "표결이 종료되어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에 미달하였다는 결과가 확인된 이상,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에 미달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회의 의사는 부결로 확정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며 특히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마. 우리 헌법은 헌법개정안에 투표한 유권자의 수가 유권자 총수의 과반수에 미달한 경우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부결된 것으로 보고,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은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 대한 주민소환투표의 경우에 소환요건 충족인원인 1/3 이상의 투표수에 미달한 경우 주민소환이 부결된 것으로 보는바, 이러한 규정과의 균형상으로도 국회에서의 의결에 있어서 표결절차가 종료될 때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에 미달한 경우에도 부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해석하여 한다.

바. 이와는 달리 투표가 종료되었다고 하더라도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에 미달한 이상, 국회의 의사가 유효하게 성립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에 의하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요건을 충족할 때까지는 몇 번이고 재표결을 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는 국회의사의 단일화 및 회의의 능률성·효율성 보장이라는 국회법 제92조(일사부재의)의 입법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5명의 재판관은 "이미 존재하는 국회의 방송법안에 대한 확정된 부결의사를 무시하고 재표결을 실시하여 그 표결결과에 따라 방송법안을 가결을 선포한 것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하여 청구인들의 표결권을 침해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결론내렸다.

이윤성 국회부의장의 투표종료 선언 뒤 재적과반수가 되지 않자, '부결'을 외치는 야당 국회의원들.


헌재의 이같은 다수 재판관의 판단은 7월 22일 국회에서 재투표 행위가 벌어졌을 직후부터 일반국민들과 네티즌이 이미 강력하게 주장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재투표가 유효하다는 한나라당의 궤변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럼 정족수가 충족될 때까지 몇번이고 재투표해도 된단 말이냐'라고 이미 지적했던 것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지적이었는데, 한나라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법과 관련한 최고 기구라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를 통해 이런 기초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을 듣게 되니 참으로 씁쓸하기까지 하다.

어쨌든 이런 불법을 저질러가면서 처리된 미디어법은 두말 할 필요 없이 '무효'임은 명백하다. 헌재가 정치적인 이유로 몸을 사려 판단을 내리지 않은 것일뿐이다. 아울러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 다른 국회의원들의 헌법적 권한을 침해하면서까지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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