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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미녀' '수다' 누군가에게는 벽이다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7. 6. 2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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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30일 단행된 KBS의 봄철 프로그램 개편에서 큰 폭의 변화 외에도 눈여겨 볼만한 작은 변화가 하나 있었다. 바로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의 편성시간대 변경. 원래 일요일 오전 10시 30분에 방송되던 <미수다>가 4월 30일부터 월요일 밤 11시 10분으로 옮겨진 것이다. 프로그램이 새로 생긴 것도 아니고 편성 요일과 시간이 좀 달라졌을 뿐인데, 눈여겨 볼만 하다?
  
   일단 그 동안 논란과 화젯거리를 적지 않게 만들어왔던 <미수다>가 이번 개편으로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그 변화는 프로그램을 보는 우리의 자세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수다>의 여전한 한계 때문에 ‘눈 여겨 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미수다>의 월요일 심야시간대로의 이동은 KBS로서는 성공적이라 자평할 만한 개편이다. 개편 뒤 첫 방송된 4월 30일, <미수다>는 전국 시청률 9.7%(TNS미디어코리아 조사)를 기록하며 동 시간대 지상파 프로그램 가운데 시청률 1위를 차지(SBS <야심만만> 8.8%, MBC <개그야> 6.9%)했다. 몇 년 동안 월요일 밤 11시 시간대는 SBS <야심만만>의 독주 체제였다가, MBC의 <개그야>가 MBC 코미디 프로그램의 부흥을 이끌면서부터 쌍두마차 체제를 이뤄왔다. 그 틈새를 비집고 새로 편성된 프로그램이 첫 방송에서부터 1위를 한 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 <야심만만>이 쇠퇴일로에 접어들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에는 역부족한 상태이고, <개그야> 또한 ‘사모님’의 뒤를 이을만한 ‘킬러콘텐츠’의 부재로 주춤해 있는 형편(<미수다> 개편 직전 월요일인 4월 23일의 경우 <야심만만>이 9.7%로 1위, <그랑프리쇼 여러분>(KBS2TV)이 8%로 2위, <개그야>가 7.8%로 3위였다. 이상 TNS미디어코리아 조사기준)이긴 하지만, <미수다>의 ‘첫방 시청률 1위’는 <야심만만>과 <개그야> 제작진은 물론 SBS와 MBC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줄만한 사건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개편 뒤 두 번째 방송에서 <미수다>는 전국 시청률 10.4%를 기록하며 1위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2위 <야심만만>(8.5%)과의 차이를 더욱 벌려 1위 독주 체제의 가능성을 보이기까지 했다. MBC <개그야>는 KBS1TV의 <뉴스라인>(7.1%)에도 뒤지는 6.8%를 기록했다.
  
  
ⓒKBS <미녀들의수다>

   일요일 아침 이른바 ‘가족시청시간대’에 편성되었던 프로그램이 ‘성인시청시간대’라 할 수 있는 평일 심야시간으로 이동했음에도 성공했다는 것은 대단히 이채로운 경우다. 여태껏 이처럼 생뚱맞은 시간대 이동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가령 아침 6시에 편성되었던 프로그램이 자정을 넘긴 새벽 1시로 옮겨지는 것처럼 ‘시청사각지대’에 있던 프로그램이 낮과 밤을 달리해 편성시간대를 옮기거나 일요일 오전 프로그램이 평일 저녁시간으로 옮기는 것처럼 ‘가족시청시간대’에서 ‘가족시청시간대’로 옮겨가는 경우는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가족시청시간대’에서 ‘심야성인시청시간대’로 이동하고도 ‘성공’이라니? 이는 그만큼 <미수다>가 개편 전에는 자기정체성에 맞지 않는 시간대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논란 끊이지 않았던 ‘미수다’
  
  지난 해 추석특집방송으로 ‘파일럿’ 편성(정규편성을 하기 전에 성공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잠깐 임의로 편성하는 것)되었던 <미수다>는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에 힘입어 가을개편에서 정규프로그램으로 편성되어 11월 26일 일요일 아침 10시 30분 첫 방송이 나가게 됐다.
   애초 제작진들은 “국내에 거주하며 우리나라를 몸소 체험한, 각국의 외국인 여성 16명이 출연, 그들의 눈을 통해 본 한국인들의 현 주소를 재치 있는 앙케트와 토크를 통해 풀어본다”는 기획의도를 내세웠지만, 제목에서부터 ‘미녀’를 내걸고 그들의 ‘수다’를 듣는 것을 기본 포맷으로 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미수다>는 ‘가족시청시간대 프로그램으로 적합하냐?’는 논란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방송 초기 <미수다>에 대한 논란은 “시커먼스”로 대표되는 일부 철없는 국내 연예인 패널의 인종주의적 발언에 이은 제작진의 미숙한 대응과 함께 ‘여성을 대상화’한다는 지적이었다. <미수다>는 초기 하나같이 ‘빼어난 미모’를 가진 외국 여성들이 저마다 짧은 치마에다 가슴이 훤히 패인 블라우스나 소매가 없는 옷을 입고 나와 마치 ‘외국인 섹시 경연대회’를 하는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카메라의 시선 또한 클로즈업 등 다양한 각도로 그들의 ‘섹시함’을 부각하는 데 중점을 뒀고, 프로그램 중간 중간 출연 전 화장을 하는 모습이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단체 사진촬영이나 모바일 화보 촬영 같은 장면을 끼워 넣었다. 외국인들이 어떤 시선으로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바라보는지, 그에 비해 외국의 문화는 어떤 지를 시청자들이 이해하도록 돕기보다는 출연한 외국인들이 얼마나 예쁘고 섹시한 지를 부각하는 데 중점을 둔 것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휴일 오전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경우에 따라 아이들과 방송을 보기에 민망함을 느낄만한 구성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이 약이 되었던지 <미수다>는 이후 출연자들의 옷차림에서 과도한 노출을 자제하고 카메라 워킹 또한 방송 초기에 비해 차분해졌다. ‘인종주의’ 논란도 다시 불거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성으로 구성된 연예인 패널들은 어떤 외국인이 한국말을 서툴게 한다든지 작은 실수를 할라치면 저마다 ‘귀엽다’, ‘예쁘다’ 등의 감탄사를 쏟아내기에만 바쁜 모습을 보여 ‘미모의 외국인 여성’을 호기심과 성적 관심으로 바라보는 ‘한국인 남성’의 시각과 태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겠다는 <미수다>의 기획의도는 채우지 못하고 ‘편성 시간의 부적절함’에 대한 논란만 키웠던 것이다.
  
   여기에 일본인 출연자인 사오리 장의 이른바 ‘개밥’ 논란(일본에서는 밥을 들고 먹는데, 한국에서는 밥을 놓고 먹는 것을 두고 ‘개 같다’라고 발언) 등 <미수다>는 한 회 방송이 끝날 때마다 네티즌들의 구설수에 올랐고, 급기야 <미수다> 홈페이지 시청자게시판은 폐쇄되기까지 했다. 심지어 외국인들의 실수를 꼬투리 삼아 비난을 퍼붓고, 이들을 성적 혹은 호기심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일부 네티즌들의 도가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제작진은 출연자들에게 개인 홈페이지까지 닫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바로 출연자들이 상처받고 위축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
  
  성인시청시간대로 옮겨져 성숙해진 ‘미수다’
  
  그랬던 <미수다>가 개편 이후 본래 기획의도대로 ‘외국인들의 시선을 통해 한국 사회를 돌아 볼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듯한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개편 전 마지막 방송인 4월 22일만 해도 ‘한국의 쇼핑문화, 이것이 놀랍다’며 각종 할인제도나 명품문화, 신용카드, 24시간 쇼핑 등을 주제로 대체로 가벼운 내용을 이야기했던 <미수다>는 개편 뒤 4월 30일 방송에서 ‘수다’ 주제를 ‘자신의 나라에서 본 한국의 뉴스’로 잡았다. 외국인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주로 접한 한국 관련 뉴스와 이로 인한 편견을 소개하고, 직접 한국에 살면서 느낀 생각을 국내 출연자들과 함께 나눠보는 내용이었다. 이날 소개된 한국 관련 뉴스는 신입생 환영식 문화, 연예인 성형 및 악플, 시위문화, 성매매 등 성 상품화, 부동산 가격 폭등 등이었다.
  
   외국인의 입을 통해 “신입생 환영식에서 술을 많이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막 때린다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는 것은 우리가 언론을 통해 그 뉴스를 접하는 것에 비해 더욱 피부에 와 닿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미수다>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게 된 외국인이 ‘악플로 인해 고통받았다’며 ‘처음엔 친절히 대꾸했지만, 나중엔 포기했다’고 이야기하는 지금 우리 인터넷 문화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다.
   ‘한국에서는 시위가 너무 많다’는 뉴스를 이야기하면서도 “학교의 어떤 선배가 같이 시위가자고 해서 ‘사회가 얼마나 큰데 우리가 가서 바꿀 수 있느냐’고 했더니, ‘우리가 안가면 누가 바꿀 거냐’고 말하는 것을 듣고 감동했다”고 말하는 외국인이나, “종군위안부 관련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며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에서 시위를 하는데, 그 할머니들이 얼마나 아픈지 우리는 모른다.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릴 거냐?”고 말하는 외국인의 모습은 언론보도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우리나라 시위, 참 문제 많다’고 상식처럼 생각하던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해 준다.
  
   물론 개편 뒤 두 번째 방송에서는 ‘한국인이 외국에게 갖고 있는 착각’이라며 ‘외국인은 모두 한국어를 못한다’, ‘외국인은 성적으로 개방적이다’, ‘외국인은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 ‘서양인은 미국에서 온 줄 안다’ 등을 주제로 비교적 가벼운 ‘수다’를 나누긴 했다. 하지만 “외국인더러 성적으로 개방적이라더니 한국에는 왜 그렇게 모텔이 많냐?”, “한국 드라마에는 불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서양인은 미국인밖에 없는 줄 안다”고 말하는 외국인들에게 사실 떳떳하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수다’로 구별 짓기
  
  이처럼 편성시간 이동 뒤 <미수다>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가진 문화적 차이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제법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고 ‘왜 광화문에서만 시위하는지 모르겠다’는 외국인에게 “정부청사도 있고, 광장이 있지 않냐?”며 “세계 어디든 광장이 민주화의 성지”라고 말하는 진행자(남희석)나 연예인 패널들의 태도 또한 이전에 비해 성숙해졌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미수다>의 ‘수다’는 같은 시간대 <야심만만>의 ‘토크’와 구별되면서 신변잡기식 사생활 드러내기에만 몰두하는 그 동안의 토크쇼프로그램의 관성에도 어느 정도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문제는 여전히 있다. 4월 30일 방송에서 말레이시아에서 온 소피아 리자의 허벅지가 노출된 모습이 화면에 잡힌 것을 두고 논란이 인 것처럼 ‘미녀’라는 타이틀 아래 틈만 나면 이들의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분주한 <미수다>는 앞으로도 의도적이든 않든지 상관없이 각 출연자들의 모습을 두고, 때로는 말을 두고, 그도 아니면 프로그램 외적인 이야기로도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수다>의 ‘미녀’ 중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에바에게 ‘섹시 모바일 화보’ 촬영 제의가 들어온 것처럼 아직 한국 사회는 그들을 차이를 가진 한 사람의 외국인이라기보다 ‘이국적인 미녀’로 바라보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미수다>가 지금의 인기를 얻게 된 데는 ‘미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화젯거리로 만드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던 일부 언론의 황색 저널리즘이 가장 큰 공을 세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 또한 그러한 대중적인 관심사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고 때로는 그것을 조장했다.
  
   <미수다>가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는 것과 비례하는 또 하나의 우려는, <미수다>가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구분 짓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미수다>에 나오는 이들처럼 아름답고, 지적이고, 한국말도 잘하는 외국인들이 있는 반면, 생존을 위해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이들도 있다. 2006년 9월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약 89만 명, 일자리를 가지고 한국에서 노동을 하는 외국인이 절반에 가까운 약 41만 명이고, 이 가운데서도 ‘불법체류’ 중인 이주노동자가 18만 명으로 무려 44%를 차지하고 있다. 또 외국인 여성들 중에는 브로커에 의해 팔려오다시피 한국으로 와 국제가정을 꾸린 이들도 적지 않다. <미수다> 덕분에 이제 우리들은 <미수다>에 나올 정도는 되어야 문화적 차이를 이야기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교류와 소통의 상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나머지는 ‘2등 외국인’으로 취급해버리지 않을지, 외국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이런 차별화된 구별 짓기가 이미 존재함에도 더 굳어지지 않을지 적지 않은 우려가 든다.
  
  개편 뒤 <미수다>의 이기원 PD는 “밤 시간대로 옮긴데다 오락적 접근과 장치까지 강조하게 되면 자칫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며 “앙케이트를 중심으로 한 문화 비교 토크라는 성격은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틀리지 않은 방향이다. 하지만 ‘미녀’라는 제목에 대해 “상징적인 의미로 봐 달라”며 “여성 외국인 전체를 ‘미녀’라는 단어로 지칭했다”면서 인종과 국적, 직업과 외모의 벽을 완전히 허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 벽을 허문다면 수다의 내용도 보다 풍부해지고, 서로에 대해 더욱 진실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은 '월간 말' 2007년 6월호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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