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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협조받는 '수상한 삼형제', '대본협조'까지?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09. 12. 2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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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되고 있는 KBS 주말드라마 '수상한 삼형제' 12월 20일 방송분을 봤다. 원래 관심이 없던 드라마라 본방 사수는 애초 할 생각도 없었고, 논란이 된 뒤 다시 보기를 통해 봤다. 한마디로 시간이 아깝고, 짜증이 나고, 기분이 더러웠다. '수상한 삼형제'가 막장드라마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거야 이미 귀가 아프도록 접했기에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기분이 더럽다. 아무리 논란이 된다고 하더라도 '괜히 봤어, 진짜 괜히 봤어'('남보원' 박성호 버전으로.. --;;).

막장드라마의 3대 필수요소(그보다 많으려나..) 중 하나인 '콩가루 집안'이 '수상한 삼형제'에도 있었다. 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할대로 자극하는 억지설정도 있었다. 시어머니는 시집 온 첫째 며느리 앞에서 둘째 며느리를 있는대로 구박하고, 큰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미스터 김~'이라고 하질 않나, 시어머니에겐 '큰언니~'라고 하질 않나, 큰형은 동생에게 "맞장뜨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라고 하질 않나... 개념을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중장년층 시청자들은 욕을 하면서도(때론 며느리를, 때론 시어머니를, 때론 시아버지를, 때론 장남을 향해) 드라마가 주는 자극에 찌릿찌릿하면서 보는 재미를 느낄 만은 한 것 같다. 당장 우리 부모님만 해도 이런류의 KBS 2TV 주말 홈드라마를 즐겨보신다.

첫째며느리와 식구 앞에서 둘째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


갓 시집 온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미스터 김~'이라고 부르는 건, 글쎄 이 정도는 내가 보기엔 맥락을 떠나 그 자체로 올미다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 뺨을 때린 것에 맞먹는 폐륜으로 지적당할만 한 것 같은데 요즘은 워낙 막장드라마에 길들여질대로 길들여진터라 이제는 다들 무감각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더 이상 막장드라마를 막장이라고 이야기하고 지적질하는 건 입이 아프고, 손가락이 아프다. 그래서 나는 아예 막장드라마로는 눈길을 돌리지 않고, 애써 시간 내서 블로깅하지도 않는다. 그저 언젠가는 시청자들이 이런 막장이 식상해지고 지겨워져 스스로 눈길을 끊을 때가 오리라 믿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수상한 삼형제'는 지금까지의 막장을 뛰어넘는 또 다른 차원의 막장을 선보였다. 민언련의 표현에 따르면 "정치적 막장드라마"(이제 ‘정치적 막장드라마’인가)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시위현장에서 다친 전경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과잉진압으로 몰려 옷을 벗게 될 지도 모른다는 누구는 또 뭔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런 장면과 대사가 12월 20일 '수상한 삼형제'에 등장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질 않는다.

시위대를 탓하는 대사는 또 어떤가?
"앞길이 창창한데 시위대가 던진 돌에 정통으로 눈을 맞아 실명할지도 모른답니다.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에 맞아 팔다리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시위대가 너무합니다. 자신들도 자식이 있고 동생이 있을 텐데… 똑같이 자식 키우면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전경이 무슨 죕니까?", 간혹 접하게 되는 폭력시위를 비난하는 인터넷 댓글을 그대로 옮겨 놓은 수준이었다.

"시위대 진압하다 사고만 나면 무조건 과잉진압으로 몰아붙이는데 화염병 던지고 돌 던지는 시위대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며 "경찰도 많이 다쳤는데 뉴스엔 시위대 다친 것만 크게 나오고 경찰 다친 건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정말 속상하다"고 말하는 부분은 경찰청 브리핑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민언련은 "시위대를 비난하고 과잉진압을 두둔한 두 인물의 대사는 너무나 노골적이고 '웅변적'이어서 군사독재 시절의 반공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는데, 나의 느낌도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굳이 용산참사를 이야기하고, 거리에 나갔다하면 방패로 내리찍고 곤봉을 휘둘러대고, 시위대인지 아닌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무조건 잡아들여 일본 관광객까지 두들겨패는 경찰들의 폭력성을 이야기하진 않겠다. 물리적 충돌이 없으면 신문이고 방송이고 아예 시위대의 목소리는 등장하지조차 않고, 물리적 충돌만 발생하면 '폭력시위'를 부각시키고, '교통체증'을 강조하는 방송이나, 아예 1면에다 큼지막한 제목과 사진을 함께 막아 시위대를 난도질하는 조중동도 이야기하진 않겠다. 도대체 왜 이런 장면과 대사가 '수상한 삼형제'에 등장해야 하는지 그것만이라도 좀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도대체 왜???

뭐 어차피 궁금해 해도 설명을 해주지 않을 게 뻔하니 그냥 혼자서 유추라도 해보자.

한달전쯤 '수상한 삼형제'에서 경찰간부로 등장하는 주인공 집안의 셋째 아들 김이상이 갓 임용된 초임검사 왕재수를 주먹으로 때리는 장면이 등장한 적이 있다. 경찰이 '감히' 검사를 때린 것 자체도 놀라운 설정(뭐 현실에서 맞아도 싼 검사가 수두룩 한 건 인정!!)이긴 한데 김이상은 엄친아에 정의로운 인물로 등장하고, 왕재수는 출세를 위해 자신을 뒷바라지한 여자를 버리는 비열한 인물로 묘사된 것도 흥미로웠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둘러싸고 경찰과 검찰이 오랫동안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드라마에서 일방적으로 경찰을 미화한 것은 개인적으로 경찰이나 검찰이나 '그놈이 그놈'이라고 여기고 있기에 별로 개의치는 않지만 입방아 오를 만한 내용이긴 했다.

세계일보 사회부 기자는 '기자칼럼'([현장에서] 드라마 속 검사는 왜 경찰에게 얻어맞을까?)에서 "드라마 속 검사가 푸대접을 받는 모습은 검찰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8세 여아를 성폭행해 영구 장애를 입힌 '조두순 사건'에서 검찰은 법률 적용을 잘못하고 항소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봐주기', '부실수사' 논란에 휘말린 상태다.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몇몇 의원은 '경찰보다 못한 검찰'이라고 이귀남 장관을 질책했다"고 썼는데,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닌 것 같지만,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도 만만찮으니 경찰을 미화하는 건 또 어떻게 봐야 할지 의문이기도 하다.

경향신문 11월 10일 기사


어쨌든 경찰간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수상한 삼형제'는 이미 경찰을 빨아주고 있었던 거다. 또 그만큼 '수상한 삼형제'는 경찰로부터도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를 얻고 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경찰청은 '수상한 삼형제'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데, 경찰청 내부공간이나 자료실, 강남 수서경찰서 등을 촬영공간으로 제공하는가하면 필요에 따라 경찰차량도 빌려준다고 한다. 실제 '수상한 삼형제'의 엔딩크레딧에는 '촬영협조 경찰청'이 등장한다.

'촬영협조 경찰청'


그리고 나아가 경찰청의 '수상한 삼형제'에 대한 적극적 지원의 방법 중 하나는 경향신문에 따르면 "경찰청은 각본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눈에 확 들어오는 대목이다. 경찰청이 '수상한 삼형제' 문영남 작가의 대본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로써 12월 20일 생뚱맞은 시위대 관련 내용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경찰이 '수상한 삼형제'의 '촬영협조'를 장소협조 정도가 아닌 '대본협조'까지 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어쩌면 12월 20일 문제의 방송분은 경찰 측에서 대본을 제공하고, 협조를 아끼지 않는 경찰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등장시켰을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그 부분을 알아서 썼다면 그것대로 문영남의 개념없음이 문제고, 드라마 전개와 하등 관계가 없는 내용을 뜬금없이 집어넣은 제작진의 개념 또한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리고 만약 문제의 방송분이 경찰쪽의 '조언'에 의한 것이었다면 그것 역시 KBS의 드라마조차 국민들로부터 그다지 신뢰받지 못하는 공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수상한 삼형제'는 막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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