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BC 'PD수첩' '4대강과 민생예산'편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중징계할 것 가능성이 높아지고, 앞서 '지붕뚫고 하이킥' 해리의 발언과 행동에 대해 방통심의위가 '권고' 결정을 내리는 등 이른바 '막말 방송'에 대한 규제 강도가 더욱 강해지는 것과 관련해 학자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방송현업인 등이 함께 모여 토론하는 자리였다.
'PD수첩' 4대강과 새해예산안 관련 방송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심의는 이미 자문기구인 보도교양특별위원회에서 경고를 결정하고, 전체회의에서 제작진을 불러 의견진술을 한 뒤 징계수위를 결정키로 했는데, 방통심의위가 벌이는 'PD수첩'에 대한 심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래에 붙여놓은 'PD수첩' 제작진의 의견과 PD연합회, 민언련 등의 성명을 참고해 그 수준이 얼마나 저열한지 한 번 판단해보기 바란다.
[#M_펼쳐두기..|접어두기..|‘방송통신심의위 보도교양방송특별위원회 자문내용’에 대한 PD수첩 제작진의 입장
○ “프로그램 부제(4대강과 민생예산)에서부터 4대강 사업과 민생예산을 억지로 연관 지으려는 의도성이 보여 진다”는 데 대해.
4대강과 민생예산 문제는 11월 중순부터 12월 말 예산안이 통과되기까지 정국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음. “억지로 연관 지으려는 의도성이 보여 진다”고 판단했는데, 이같이 판단하기위해서는 4대강과 민생예산이 아무 관계없다는 것을 입증해야할 것임. 그러나 4대강 사업 예산과 민생예산은 연관성이 있을 수밖에 없음. 예산의 한 부문이 수 조원 규모로 늘어나면 다른 부문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함. 게다가 감세정책으로 가용 재원이 줄어들고, 국가부채의 과도한 증대를 막기 위해 예산절감이 필요한 상황에서 4대강에 수 조원을 투자하는 것이 타 부문 민생예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한 주장임.
○ “감소된 서민 복지예산에 대해서는 결식아동 등 영세민의 생활모습과 인터뷰, 장애인 단체의 시위모습 등 구체적 사례를 들며 장시간 강조한 반면, 저소득층 보육료 지원확대, 장애연금 도입 등 증가된 복지예산에 대해서는 그래픽 화면 등을 통한 단순 소개에 그쳤다”는 데 대해.
정부의 입장이 다소 적게 반영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기획재정부가 여러 차례에 걸친 PD수첩팀의 인터뷰 요청을 일관되게 거부했기 때문임. PD수첩은 인터뷰 요청 및 거부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보관하고 있음. 또한 PD수첩은 기획재정부의 인터뷰 거부에도 불구하고 장관 설명 자료화면 등 활용가능한 모든 자료를 통해 정부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였음.
뿐만 아니라 PD수첩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서, 정부 예산이 가지는 문제점을 지적 비판하는 것이 본래 역할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임. PD수첩 ‘4대강과 민생예산’편은 2010년 예산과 관련해 가장 심도 있게 분석, 비판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서 프로그램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실제 예산 수정 과정에서 반영됨으로써 그 기능을 충분히 했다고 판단하고 있음.
○ “인용된 정부 비판적 인터뷰 등 이외에, 이에 반대되는 인터뷰 대상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의 의도에 맞는 취재원만을 주로 선별하여 야당, 시민단체, 전문가 등 반대 측 입장을 2배 정도 많이 방송하는 등의 내용으로 질적 ,양적 균형을 맞추지 못했고”에 대해.
전술한 바와 같이 PD수첩은 가장 중요한 정부 부처인 기획재정부의 인터뷰 거부에도 불구하고 정부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 정부 입장의 핵심을 장관 기자회견 및 여타 자료 등으로 반영하여 균형을 취하기 위해 노력했음.
○ “서민 복지예산 내용 방송 직후, 4대강 사업 예산에 관련된 문제점을 지적, 마치 복지예산으로 4대강 사업을 하는 것처럼 시청자가 오인할 우려가 있도록 의도적으로 편집했다”는 데 대해.
피디수첩은 ‘복지예산으로 4대강 사업을 하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편집한 바 없음. 피디수첩은 4대강 사업 예산과 감세정책이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민생예산이 필요한 만큼 편성되기 어렵다고 표현했을 뿐임.
○ “인천국제공항공사 지분 일부 매각계획에 대해 ‘국부유출’, ‘세외수입으로 정부 추진 토목 사업 비용충당이 목적’과 같은 확인되지 않은 의혹제기 인터뷰 내용과 이와 직접 관련이 없는 4대강 사업 예산을 연계하여 방송하는 등 일부 사실 확인이 결여된 내용을 함께 방송한 바,”에 대하여.
인천국제공항공사 지분 매각이 국부유출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것은 항공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문제임. 다만 지분 매각으로 수익을 확보하려는 것이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예산부담 때문이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음.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는 인터뷰에서 ‘세외 수입으로 정부 추진 토목 사업 비용 충당이 목적이란 의심 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라고 한 것임. 또한 스튜디오에서 이 부분을 한 번 더 언급해서 확정적인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짚어준 것임. 만약 피디수첩이 인천국제공항공사 지분 매각이 정부 추진 토목 사업 비용 충당이 목적이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면 사실 확인이 결여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임. 그러나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은 사실 확인이 결여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음.
○ “사회적 쟁점사안에 있어 시청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찬반 양측에 공론의 장을 제공, 건전한 여론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공영방송이 오히려 제작진이 미리 설정한 결론과 전체적인 방향성에 따라 프로그램을 제작, 일방에 치우친 내용을 편파적으로 전달하는 등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서도 벗어났다”는 데 대해.
제작진이 미리 설정한 결론과 전체적인 방향성에 따라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제작진의 명예를 손상하는 표현이라고 판단하고 있음. 이런 표현을 공적 문서에 쓰려면 제작진이 미리 설정한 결론과 방향성에 따라 프로그램을 제작했는지 사실 확인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함.
○ “대안 제시 없이 일부 부정적 측면만을 지나치게 확대, 정부 정책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에 불과한 편향된 방송이라고 판단된다”는 데 대해.
피디수첩 ‘4대강과 민생예산’ 방송 이후 방송에서 지적한 여러 문제점들이 국회 논의를 통해 일부 혹은 전부 반영되었음.
먼저 국회는 그동안 정부가 유지해왔던 감세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었음. 국회 기획재정위는 본 프로그램에서 지적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받아들여, 올해 예정됐던 소득세 최고 구간에 대한 세율 인하조치를 유보했으며, 법인세 인하도 유보했음. 이에 따라 1조 2천 798억원의 세입이 늘어나게 되었음.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도 국회는 4250억을 삭감했음. 또한 프로그램에서 지적한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 예산 4066억원과 관련해 국회 농수산식품위원회는 이 중 30%를 4대강과는 무관한 다른 저수지 개보수에 쓰도록 조정했음.
민생예산과 관련해 국회는 결식아동 급식지원 285억원, 노인 일자리 예산 595억원, 보육 지원 595억원 등 프로그램에서 문제제기한 많은 예산을 증액했음.
국회가 PD수첩이 제기한 문제들을 새해 예산안에 반영하고, 감세정책에 제동을 건 것이야말로 PD수첩이 대안 제시 없이 일부 부정적 측면을 지나치게 확대하거나, 정부 정책에 대한 일방적 비난을 한 것이 아님을 드러내주고 있음.
여기서는 'PD수첩' 등 이른바 시사교양, 보도 등 권력비판이 가능한 프로그램에 대한 국가기관의 심의 뿐만 아니라 오락프로그램에 대한 심의를 통한 규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자.
오늘 토론회에 MBC 신정수 PD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신 PD는 MBC노조 부위원장이면서 '놀러와'를 제작하는 예능PD다.
앞선 발제와 토론에서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이 국감에서 김구라의 막말 등을 거론하며 퇴출을 요구한 것에 대한 언급과 비판이 있었고, 신 PD는 진성호 의원 발언 뒤 실제 MBC에 발생한 변화에 대해 토로했다.
신 PD에 따르면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방통위원장 등 권력이 이른바 '막말'에 대한 논란을 부추기자, MBC 경영진 측에서 예능국 PD들에게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신 PD가 예로 든 지침의 내용은 이렇다.
- '무한도전'에서 '돌+I'를 사용하지 마라.
- 김구라의 발언을 자막으로 쓰지 마라.
- '멍멍' 등 효과음으로 '개소리'를 넣지 마라.
어쩐지 최근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을 지칭할 때 '돌+I'를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거의 대부분 '찌롱이'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그게 여당 국회의원과 국가권력기관의 높은 분들의 말씀으로 인한 MBC의 자체 검열 때문이었다니...
신 PD는 방송사에서 이처럼 알아서 기는 것이 '재허가' 때문이라 했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뿐 아니라 케이블TV 등 방송사업자는 3년에 한번씩 방통위로부터 방송사업자 자격을 심사받고 계속 방송사를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해 '허가'를 받는다. 그런데 심의로 제재를 받거나(예를 들어 '시청자에 대한 사과'나 '경고' 등) 하면 재허가 심사에서 감점을 받는다. 감점이 쌓이면 결국 방송사업자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이었던 iTV가 재허가심사에서 탈락해 iTV는 사라지고 새로운 OBS가 생겼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PD수첩', '뉴스후' 등 시사교양프로그램으로 이런 저런 제재를 받고 움츠릴대로 움츠린 MBC 사측이 오락프로그램들까지 심의에 걸리고 그게 재허가에 영향을 미칠까봐 알아서 긴다는 거다. 정치인들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이렇게 오락프로그램 제작현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제작진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이고 기발한 발상과 아이디어는 나오기 힘들어진다. 시사보도 분야 기자와 PD들이 MB 정권 출범 이후 겪고 있는 위축효과는 더 이상 정권에 비판적인 내용을 다룰 수 없게 한다면, 예능분야에서는 자유로운 아이디어 생산을 가로막는 자기검열과 위축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과 신선한 웃음을 보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
지금은 김구라의 말을 자막으로 쓰는 것을 통제하지만, 오락프로그램에까지 이런 규제가 지속되고 더욱 강화된다면 김구라를 말 자체를 TV에서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은 노홍철을 '돌+I'라 부르는 걸 통제하지만, 앞으로는 '찌롱이'도 문제삼을지 모른다. '돌+I'가 안된다면 '찌롱이'는 가능할까?
뿐만 아니다. 신 PD는 오늘 토론회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줬는데, '놀러와'와 관련된 것이다.
2008년 연말, '놀러와'에서는 김구라, 이경규를 패널로 불러 한해 동안의 예능을 평가한 적이 있다. 예능의 흐름, 유행, 뜬 예능인 등에 대해 김구라, 이경규가 특유의 독설과 호통, 직설적 표현으로 평가를 했는데, 재밌었다.
이 아이템으로 재미를 본 '놀러와'에서는 2009년 연말에도 비슷한 포맷의 아이템을 준비하고 김구라, 이경규를 섭외하려고 했는데 김구라와 이경규가 섭외를 거절했다고 한다. '막말'이 논란이 되면서 '남에 대해 평가하고 코멘트하는 것은 당분간 안했으면 좋겠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정치인들에게 찍힌 연예인들도 몸을 사리고 자신들의 재능과 끼를 맘껏 발산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자, 이것이 TV만 틀면 예능, 인터넷에도 예능, 친구를 만나도 예능...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 유행어, 리얼버라이어티의 캐릭터 한 명, 에피소드 하나가 사회 전체를 들었다놨다하는 대한민국 예능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