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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에 '돌+I 쓰지 마라' 지침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10. 1. 1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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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방통심의위, 무엇을 위해 심의하나'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최근 MBC 'PD수첩' '4대강과 민생예산'편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중징계할 것 가능성이 높아지고, 앞서 '지붕뚫고 하이킥' 해리의 발언과 행동에 대해 방통심의위가 '권고' 결정을 내리는 등 이른바 '막말 방송'에 대한 규제 강도가 더욱 강해지는 것과 관련해 학자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방송현업인 등이 함께 모여 토론하는 자리였다.

'PD수첩' 4대강과 새해예산안 관련 방송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심의는 이미 자문기구인 보도교양특별위원회에서 경고를 결정하고, 전체회의에서 제작진을 불러 의견진술을 한 뒤 징계수위를 결정키로 했는데, 방통심의위가 벌이는 'PD수첩'에 대한 심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래에 붙여놓은 'PD수첩' 제작진의 의견과 PD연합회, 민언련 등의 성명을 참고해 그 수준이 얼마나 저열한지 한 번 판단해보기 바란다.




여기서는 'PD수첩' 등 이른바 시사교양, 보도 등 권력비판이 가능한 프로그램에 대한 국가기관의 심의 뿐만 아니라 오락프로그램에 대한 심의를 통한 규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자.

오늘 토론회에 MBC 신정수 PD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신 PD는 MBC노조 부위원장이면서 '놀러와'를 제작하는 예능PD다.
앞선 발제와 토론에서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이 국감에서 김구라의 막말 등을 거론하며 퇴출을 요구한 것에 대한 언급과 비판이 있었고, 신 PD는 진성호 의원 발언 뒤 실제 MBC에 발생한 변화에 대해 토로했다.

신 PD에 따르면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방통위원장 등 권력이 이른바 '막말'에 대한 논란을 부추기자, MBC 경영진 측에서 예능국 PD들에게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신 PD가 예로 든 지침의 내용은 이렇다.

- '무한도전'에서 '돌+I'를 사용하지 마라.
- 김구라의 발언을 자막으로 쓰지 마라.
- '멍멍' 등 효과음으로 '개소리'를 넣지 마라.

어쩐지 최근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을 지칭할 때 '돌+I'를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거의 대부분 '찌롱이'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그게 여당 국회의원과 국가권력기관의 높은 분들의 말씀으로 인한 MBC의 자체 검열 때문이었다니...

신 PD는 방송사에서 이처럼 알아서 기는 것이 '재허가' 때문이라 했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뿐 아니라 케이블TV 등 방송사업자는 3년에 한번씩 방통위로부터 방송사업자 자격을 심사받고 계속 방송사를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해 '허가'를 받는다. 그런데 심의로 제재를 받거나(예를 들어 '시청자에 대한 사과'나 '경고' 등) 하면 재허가 심사에서 감점을 받는다. 감점이 쌓이면 결국 방송사업자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이었던 iTV가 재허가심사에서 탈락해 iTV는 사라지고 새로운 OBS가 생겼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PD수첩', '뉴스후' 등 시사교양프로그램으로 이런 저런 제재를 받고 움츠릴대로 움츠린 MBC 사측이 오락프로그램들까지 심의에 걸리고 그게 재허가에 영향을 미칠까봐 알아서 긴다는 거다. 정치인들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이렇게 오락프로그램 제작현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제작진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이고 기발한 발상과 아이디어는 나오기 힘들어진다. 시사보도 분야 기자와 PD들이 MB 정권 출범 이후 겪고 있는 위축효과는 더 이상 정권에 비판적인 내용을 다룰 수 없게 한다면, 예능분야에서는 자유로운 아이디어 생산을 가로막는 자기검열과 위축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과 신선한 웃음을 보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

지금은 김구라의 말을 자막으로 쓰는 것을 통제하지만, 오락프로그램에까지 이런 규제가 지속되고 더욱 강화된다면 김구라를 말 자체를 TV에서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은 노홍철을 '돌+I'라 부르는 걸 통제하지만, 앞으로는 '찌롱이'도 문제삼을지 모른다. '돌+I'가 안된다면 '찌롱이'는 가능할까?

뿐만 아니다. 신 PD는 오늘 토론회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줬는데, '놀러와'와 관련된 것이다.

2008년 연말, '놀러와'에서는 김구라, 이경규를 패널로 불러 한해 동안의 예능을 평가한 적이 있다. 예능의 흐름, 유행, 뜬 예능인 등에 대해 김구라, 이경규가 특유의 독설과 호통, 직설적 표현으로 평가를 했는데, 재밌었다.

이 아이템으로 재미를 본 '놀러와'에서는 2009년 연말에도 비슷한 포맷의 아이템을 준비하고 김구라, 이경규를 섭외하려고 했는데 김구라와 이경규가 섭외를 거절했다고 한다. '막말'이 논란이 되면서 '남에 대해 평가하고 코멘트하는 것은 당분간 안했으면 좋겠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정치인들에게 찍힌 연예인들도 몸을 사리고 자신들의 재능과 끼를 맘껏 발산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자, 이것이 TV만 틀면 예능, 인터넷에도 예능, 친구를 만나도 예능...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 유행어, 리얼버라이어티의 캐릭터 한 명, 에피소드 하나가 사회 전체를 들었다놨다하는 대한민국 예능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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