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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벗기는 사회' 질타하는 조선일보, 가당찮다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10. 1. 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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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27) 조선일보. 1면부터 눈을 제대로 자극하는 기사가 눈에 띈다.

<우리 아이 손엔 '걸그룹 에로 동영상'>

기사 제목은 이렇고, 그 위에 '소녀 벗기는 사회[上]'이라는 또 다른 제목이 붙었다. '소녀 벗기는 사회'란 이름으로 연재를 하려는 모양인가보다.

'소녀 벗기는 사회'라...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아주 제대로다. 눈길을 확 끌어잡는다.

자 그럼, 이 시리즈의 처음은 뭘 문제삼았는지 좀 살펴보자.

1면에서는 어떤 중년 주부(심씨)가 고1 아들이 PMP로 보고 있던 동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 동영상은 다름 아니라 걸그룹 '티아라'의 '보핍 보핍' 뮤직비디오였다.

1월 27일 조선일보 1면


"이런 뮤직비디오를 일상적으로 보고 있었다니 황당하다"는 심씨의 말에 이어 조선일보는 "가요계에 상식을 넘어서는 선정성 경쟁이 확산되고 있다"며 "핵심 요인은 2년여 전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는 소녀 그룹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작자들은 성적 이미지로 가득한 선정적 뮤직비디오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녀 벗기는 사회[상]'편의 맛뵈기를 1면에서 보여준 조선일보는 8면에서는 <어른은 몰라…청소년 파고든 음란 '뮤비'>라는 메인 기사와 그 아래 <춤이면 춤… 의상이면 의상… 가요계 코드는 "야하게, 더 야하게">를 붙여 크게 다뤘다.

1월 27일 조선일보 8면


8면에서는 어떤 아빠가 자기의 8살 아이가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춤을 추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는 내용을 전하고, 조선일보가 서울 노량진 비상 에듀 학원과 미아동 비상 아이비츠 학원에 다니는 중고생 151명(고교생 86명, 중학생 65명)에게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라며,

'아브라카다브라' 뮤직 비디오를 본 학생은 109명(72%),

성 관계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가득한 박진영의 '노 러브 노 모어(No Love No More)', 아이비의 '터치 미(Touch Me)' 뮤직 비디오를 본 학생도 각각 42명, 35명,

'보핍 보핍' 뮤직비디오의 경우 '19세 이하 버전'과 '19세 이상 버전'으로 유포되고 있는데 각각 69명, 17명의 학생이 이를 감상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 전했다.

나아가 조선일보는 "이런 선정적인 콘텐츠의 일상적 확산이 청소년들을 성적으로 자극해 충동적 범죄자로 내몰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며 연세대 의대 신의진 정신과 교수 연구팀이 2008년 성폭력 가해자 청소년 155명을 대상으로 '성폭력 동기'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40%의 응답자가 "인터넷과 TV를 볼 때 성충동을 느낀다"고 밝히고, 23%의 응답자는 자신의 성폭력 발생 주요인으로 '선정적인 동영상과 채팅'을 꼽았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그래프까지 보여줬다.


그 아래 <"야하게, 더 야하게">에서는 "가요계의 선정성 경쟁은 춤·의상·가사에서도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며 "'시건방춤' '엉덩이춤' 등 하체를 강조하는 춤은 여성의 성적(性的)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기획사의 노림수"라는 '전문가'의 지적을 소개하고, 2NE1 씨엘의 노출의상 등 "방송이나 무대에서의 적나라한 의상"과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무디 나이트'("내가 위로 때론 네가 위로 우린 마지막 이성을 잃어, 새하얀 너의 목덜미 위로 입맞추고서 파고들어") 등 "낯뜨거운 가사"를 지적했다.

여기까지가 조선일보의 '소녀 벗기는 사회[상]'편의 주요 내용이다. 어떠신가? 타당한 지적이라고 보시는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선일보의 지적에 공감할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어른이라면 조선일보의 이 기사를 보며 크게 맞장구를 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조선일보의 오늘 기사를 보며 손발이 오그라든다.

왜, 조선일보가 이런 기사를 내보내면서 대중음악의 선정성 등을 지적할만큼 품격있는 신문이 아닐뿐더러 자신들이 지적한 '소녀그룹'의 선정성을 극대화하는 기획사들의 노림수로부터 조선일보가 결코 자유롭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걸그룹들의 뮤비를 청소년 성범죄와 연결시키는 대목에서는 조선일보다운 또 다른 버전의 '마녀사냥'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2009년 11월 16일 조선일보


'소녀 벗기는 사회[상]'편의 <"야하게, 더 야하게">에서는 "여성의 성적(性的)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기획사의 노림수"로 소개된 '시건방춤'과 '엉덩이춤'에 대해 조선일보는 지난해 11월 16일 <엉덩이춤… 시건방춤… 고양이춤… '포인트 춤'이 가수를 먹여살린다>에서는 단 한 줄의 비판도 하지 않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도록 해라", "사소한 아이디어를 잡아라"며 오로지 재미 위주로 현상을 소개하는데 그쳤다. 사진으로는 카라의 '엉덩이춤'을 소개하기도 했다.

'소녀 벗기는 사회[상]'편에서는 "미성년 가수가…"라는 제목의 사진 기사에서 18세 미성년임에도 "맨몸을 드러내는 도발적 의상으로 논란을 빚었던" 사례로 소개된 2NE1의 씨엘은 지난해 7월 17일 <"소녀그룹인데… 치마가 싫으니 어쩌죠?">에서는 25살 산다라박 등과 15살 공민지 사이에서 "18세의 씨엘이 리더가 된 건, '멤버들 간의 세대 차이를 중간에서 잘 조정하라'는 차원이었다"로 소개됐고, 문제삼은 2NE1의 의상은 "미니스커트 대신, 헐렁한 힙합 바지와 징이 박힌 팔찌, 그리고 불량한 표정. '나쁜 소녀들'에게 열광하는 건 소녀들" 정도로 다뤄졌다.

2009년 7월 17일 조선일보


 <"야하게, 더 야하게">의 또 다른 사례로 '인터넷 동영상 캡처' 장면까지 소개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역시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 8일 <'시건방 춤'으로 올해를 뒤흔든 그녀들>이라며 조선닷컴을 통해 '2009년을 빛낸 스타들' 중 첫 번째로 소개하기도 했다. 여기선 "올해 발매한 3집 '사운드-G'에서는 '섹시'를 내세우며 과감히 변신했다"며 "타이틀곡 '아브라카다브라' 뮤직비디오는 공개 직후 선정성 논란도 일었지만 연일 포털의 인기검색어로 올랐다.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골반을 흔드는 일명 '시건방 춤'도 화제였다"고 소개됐다.


또 '소녀 벗기는 사회[상]'편에서는 '소녀그룹'의 선정성이 '가요계 코드'라며 비판했지만, 지난해 12월 28일 2009년 가요계를 결산한 <'소녀'들이 날아오를 때 '소년'들은 좌충우돌했다>에서는 "2009년은 소녀들의 해였다"며 "가요계는 짧은 치마를 입은 소녀들이 세력 다툼을 벌이는 전쟁터로 변했다"고 가요계 대세로 자리잡은 걸그룹 열풍에 편승할 뿐이었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이제와 '소녀 벗기는 사회'라며 한국 사회를 질타하는 소재로 '소녀그룹'의 선정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적어도 나로서는 손발이 오그라들 뿐이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유는 이뿐이 아니다.

조선닷컴 '포토' 페이지에는 선정적인 사진이 심심찮게 오르고, 조선일보의 자회사인 스포츠조선은 여전히 아래에서 보듯 대문에서조차 스포츠신문의 선정성을 벗지 못했다.

조선닷컴 포토 페이지에 소개된 한 사진

조선닷컴 포토 페이지에 소개된 사진과 동영상

스포츠조선 메인화면


그런 조선일보가 갑자기 선도부 완장이라도 찬 듯 걸그룹 뮤비와 의상, 가사를 문제삼아 '소녀 벗기는 사회'라는 눈길 확 끄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연재물을 시작하니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고 배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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