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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정한 원칙마저 어긴 KBS 선거토론방송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10. 5. 1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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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KBS의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단체장 선거 후보초청 TV토론회의 무산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논란의 핵심은 누가 봐도 분명할 정도로 간단하다.

첫째, KBS는 '도입토론'의 주제로 '현역 단체장의 시정 평가'를 내걸었는데, 이것이 사실상 한나라당 소속 후보인 현역단체장을 주인공을 만드는 편파적이고 불균형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는 업적 홍보 발언 시간 1분과 야당 후보들에 대한 반대 토론 시간 1분30초에다 보충 답변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또 1분 동안 추가로 줘 토탈 3분 30초의 발언 시간을 갖는데 비해, 야당 후보들은 1분 30초 밖에 토론시간을 배정하지 않았다.

KBS가 후보측에 전달했다는 선거토론방송 큐시트. '4년 시정 평가'를 주제로 현역단체장이 3분 30초 발언한다.


둘째, 이번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종시와 4대강, 무상급식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음에도 KBS는 굳이 서울․경기․인천 토론에서 각 한 가지만 다룬다고 했다. 특히 서울지역 토론의 경우 서울 시민들의 반대 여론이 높은 세종시 문제만을 다루고, 무상급식에 있어 여․야 후보의 차이가 거의 없는 인천에서 무상급식 토론을 주제로 내걸었다.

누가 봐도 뻔한 의도가 엿보인다. 철저하게 중립과 균형을 지켜야 할 TV 선거토론에서 균형이 필수적인 시간 배정과 주제 선정에서부터 KBS는 한나라당을 편든 것이다. 이명박 특보 출신인 KBS 낙하산 사장 김인규를 두고 '한나라당 선대본부장'이라는 비아냥이 나와도 무리가 아니다.

5월 10일 경향신문 만평


하지만 특보사장과는 달리 KBS 직원들 중 양심적인 사람들은 KBS가 '한나라당 선거운동본부 소속'으로 전락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오늘 발표한 성명('KBS는 한나라당 선거운동본부 소속이 아니다')에서 "선거를 앞두고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설 곳이 없음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토론방식은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KBS가 스스로 마련한 ‘토론방송 준칙’에도 맞지 않다"며 "KBS는 지금이라도 토론방송의 기본원칙으로 정했던 ‘공정성’, ‘형평성’, ‘객관성’, ‘정치적 중립’에 맞게 다시 공정한 토론 방식과 규칙, 주제를 선정해 각 후보 진영을 설득하고 시청자에게 각 후보들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김인규 사장에게 요구했다.

자, 그럼 KBS가 스스로 정했던 '토론방송 준칙'의 내용은 뭘까?

2004년 4월 15일에 있은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KBS는 'KBS 한국방송 선거방송 준칙'을 발표한 적이 있다. 여기엔 '보도제작 준칙'과 '토론방식 준칙'이 있고, 아울러 여론조사와 관련된 기준과 개표방송의 기준 등이 세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가운데 다른 건 논의에서 제외하고 논란이 되는 토론방송과 관련된 내용만 살펴보자.

KBS는 먼저 '토론방송'의 기본원칙을 다음과 같이 '공정성', '형평성', '객관성', '정치적 중립'으로 정리했다.

1. 기본원칙

1) 공정성: 특정한 후보자나 정당에게 유리 또는 불리하지 않도록 공정하게 다룬다.
2) 형평성: 후보자와 정당에 대해 실질적 형평의 원칙에 따라 공평한 관심과 기회를 제공한다.
3) 객관성: 후보자나 정당에 관련된 사실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방송해야하며 자극적이거나 선동적 또는 흥미 위주의 토론
               을 하지 않는다.
4) 정치적 중립: 특정한 후보자나 정당의 주의·주장이나 이익을 지지하거나 옹호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런 원칙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토론방송 세칙'을 20개 정도로 세세하게 정리했고, 특히 '토론방송 진행 규칙'을 따로 12개 항목으로 정했다. 바로 '토론방송 진행 규칙'을 보면 '토론의 공정한 진행을 위해 엄격한 시간 규제를 한다', '사회자는 후보자의 발언 순서·발언 횟수·발언 시간 등을 균형있게 운영해야 하며 특정정당이나 후보자가 유리 또는 불리하지 않도록 공정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번 수도권 단체장 TV토론 방식이 이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토론 주제에 있어서도 '토론 주제를 선정할 때는 후보자간의 정책 대결이 되도록 유의한다'고 했다.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 대결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이었다.

그런데, KBS는 스스로 만든 준칙과 원칙마저 내팽개치고 한나라당의 선거운동본부에 소속된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김인규 사장에게 "스스로 만든 선거방송준칙만이라도 지켜라"라고 요구했다. 나의 요구도 같다. 지금 시청자가 KBS에게 뭐 그리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이명박을 제대로 비판하라는 것도, 사회적 약자의 편을 들어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기본만 충실히 하면 된다.

사진출처-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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