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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권유린 현장에 관심 부족한 한겨레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7. 6. 18.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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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풍동의 강제철거 보도 생존권유린 현장에 관심 부족


경기 고양시 일산구 풍동 369-16번지.
공권력의 묵인 아래 ‘용역깡패’들의 무자비한 폭력이 철거민들의 ‘생존권’을 짓밟고 있는 곳이다. 동시에,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어리밖에 없고, 의지할 데라고는 같은 처지에 놓인 주변사람들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언론들로부터 외면당한 ‘관심 밖의 세상’이기도 하다. 〈한겨레〉조차도 무관심한 곳이니 무얼 더 말하겠는가.

지난 5월 8일 새벽부터 풍동 철거현장에서 일어난 일들은 놀랍기만 하다. 사회적 약자들의 ‘마지막 저항 수단’으로 여겨졌던 ‘화염병’을 용역깡패들이 직접 ‘제조’, ‘운반’, ‘투척’해 철거민의 몸에 불이 붙는가 하면, ‘사제 최루병’이라 불리는 최루가루를 채운 유리병까지 등장했다. 또 용역깡패들은 ‘대형 새총’을 이용해 큼지막한 유리구슬을 철거민들 쪽으로 쏘아대 구슬을 맞은 철거민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노동자와 철거민들이 사용할 때 경찰과 보수언론들이 ‘인명살상용’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바로 그 ‘새총’이다.

육체적인 폭력과 인권침해도 노골적으로 벌어졌다. 풍동 철거대책위원회(철대위)에서 밝힌바, 용역깡패들이 규찰을 서던 철거민을 붙잡아 집단구타했으며, 골리앗 안에 있던 철거민의 아들을 폭행하고 인질로 붙잡아 골리앗 접근을 시도했다고 한다. 철거민들은 이런 용역깡패들의 폭력을 두고 마치 이라크인 포로를 대하는 미군을 보는 듯하다고 분노했다. 머나먼 이라크 땅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만 반인권적이고 패륜적인 범죄행위가 벌어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풍동’ 철거지역에서도 가장 야만적인 방식의 폭력에 의해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이라크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부시의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유린에 대해서는 대부분 눈과 귀를 닫고 있다. 심지어 〈한겨레〉조차도 말이다. 인터넷매체인 〈오마이뉴스〉와 〈참세상방송국〉이 풍동에서 벌어진 용역깡패들의 폭력을 고발하지 않고, 지상파방송 〈문화방송〉이 ‘뉴스데스크’에서 풍동철거대책위원회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편집해 보도하지 않았다면, 국민들은 풍동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일산 풍동의 택지지구 재개발은 ‘대한주택공사’가 담당하고 있다. 지금 풍동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용역깡패들은 ‘정부투자기관’인 대한주택공사가 고용했다. 주택공사는 2002년부터 이곳의 재개발 계획을 세우고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철거민들에게는 4인가족 기준으로 700만원의 보상금 또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가 있는 공공임대아파트 입주권 중 하나를 택할 것을 강요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철거민들은 거부했고, 작년 11월부터 골리앗을 세워 ‘가수용단지와 영구임대주택’ 등을 요구하며 생존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 풍동지역이 사회적 관심사로 다뤄진 적이 있었다. ‘분양원가 공개’ 논란 때문이다. 주택공사가 분양원가의 갑절에 달하는 분양가로 아파트를 분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2월 17일 ‘주공도 분양값 2배 폭리 논리’(31면), 2월 25일 ‘분양가 공개 않곤 못배길걸’(11면)에서 〈한겨레〉도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서는 다뤘다. 하지만 철거민들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한겨레〉는 그저 ‘건설사 분양 경쟁지 노려라’(2/16, 27면)와 ‘화성 동탄·고양 풍동 내달 분양대결’(4/8, 33면)에서 ‘부동산 정보’만 전할 뿐이었다.

지난해 말, 서울 상도동 철거민들이 사제총과 새총을 쏘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하여 ‘상도동 철거지역’이 언론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한겨레〉의 경우 다른 언론에 비해 차별성을 평가받았지만 양적으로나 내용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함께 받았다. 그나마 이번 풍동 철거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않고 있다.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한겨레〉의 관심이 느슨해지지 않기를 바란다.(〈한겨레〉는 4월13일 8면에서 두 줄의 해설이 붙은 사진으로 ‘풍동 철거’를 처음 다뤘다.)

(이 글은 2004년 5월 13일 한겨레신문 '한겨레비평' 코너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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