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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에게 '김제동과 밥 한번 먹어라'는 노주현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10. 7. 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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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7/26) 조선일보 '조선인터뷰'란에 탤런트 노주현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됐다.
신문지면 한쪽을 가득 채울 만큼 장문의 기사이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질문 하나와 답변 하나에 불과하니 전체를 다 인용해보자.

조선일보 기자의 질문 : 정치와 방송의 관계가 아직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노주현의 답 : 김제동씨나 김미화씨 이야기 같은데. 옛날에 박용식이라고 전두환 전 대통령 닮았다고 해서 고생한 탤런트가 있다. 나와 동갑이라 친한데 그 친구가 한동안 밤무대에 올라 자기 설움받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것을 보고 뭐라 한 적이 있다. 슬쩍 짚고 넘어가도 사람들이 다 아는데 왜 그걸 본인이 코에다 걸고서 밥 벌어 먹으려 하느냐고. 경우는 좀 다르지만 김제동씨나 김미화씨도 오해의 빌미를 주면서 자꾸 내가 뭘 잘못 했느냐고 따지면 곤란한 것 아닌가?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정도의 일이 큰 이슈가 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다. 기회가 될 때 대통령이 김제동씨를 비롯한 정치적 반대성향의 연예인들을 청와대에 불러 밥 한번 먹는다든가 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될까? 힘센 쪽이 여유를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7월 26일 조선일보 노주현 인터뷰


'정치와 방송의 관계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조선일보 기자의 질문에 답을 하자면, 그것이 어디 김제동, 김미화 등 연예인과 관련된 문제이기만 하랴.

MB정권 출범 직후부터 시작된 YTN과 KBS 장악, 엄기영 축출, 쪼인트 까인 청소부 사장 등 더 크고 심각한 문제가 첩첩으로 쌓여 있지만, 어쨌든 연예인에게 그런 질문을 했으니, 노주현이 "김제동씨나 김미화씨 이야기 같은데.."라고 답을 한 것은 질문에 대한 주제는 일단 잘 잡은 것 같다.

그런데 그 주제에 대한 노주현의 인식과 해법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첫째, 노주현은 박용식씨 사례를 들었다. 노주현 말처럼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분은 전두환을 닯았다는 이유로 5공 시절 동안 TV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던 분이다. 노주현이 박용식씨와 친하길래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이 TV에서 쫓겨난 뒤 밤무대를 전전하면서 자신의 설움을 이야기한 것을 두고 "본인이 코에다 걸고서 밥 벌어 먹으려 하느냐"고 했는데, 참으로 가벼운 말로 들린다.

박용식씨 입장에서는 얼마나 서럽고, 얼마나 절박했으면 무대에 올라 그렇게 말을 길게 했을까? 또 사실 밤무대에 올라서 자신이 당한 일을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게 과연 그때 당시 밥 벌어 먹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용기를 가져야 했던 이야기일까. 지금에야 우스개처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발행부수가 '1등신문'이라고 하는 신문에다 대고 이런 말을 하는 건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친하기에 더 조심해야 할 말이다.

둘째, 박용식씨와 김제동/김미화 등은 경우가 다르지 않다. 독재자와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쫓겨난 것과 권력에 밉보였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쫓겨난 건 폭압적이고 무도한 권력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

셋째, 노주현은 "김제동씨나 김미화씨도 오해의 빌미를 주면서 자꾸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따지면 곤란한 것 아닌가"라고 했는데, 정말 그런가. 김제동, 김미화씨가 어떤 오해의 빌미를 줬다는건지, 그리고 그들이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따진 건 또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전직 대통령 국장을 치르면서 노제 사회를 본 게 오해의 빌미인가? 좋은 취의 이런저런 단체 홍보대사 좀 했다고 그게 오해의 빌미인가? 도대체 김제동, 김미화씨가 어떤 오해의 빌미를 줬다는 건가?

그리고 그들이 뭘 그렇게 따졌나? 김제동은 자신과 관련된 발언은 한사코 피한다. 김미화씨도 오히려 자신이 여기저기 거론되는 걸 부담스러워하다, 참다 못해 트위터에 짧은 글 하나 남겼을 뿐이다. 그걸 두고 '자꾸 따졌다'니, 이렇게 억울할 데가 어디 있나!

넷째, 그럼에도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정도의 일이 큰 이슈가 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다"라는 노주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앞의 전제도 틀렸을 뿐더러, 노주현이 해법으로 제시한 건 더더욱 황당하다.

"기회가 될 때 대통령이 김제동씨를 비롯한 정치적 반대성향의 연예인들을 청와대에 불러 밥 한번 먹는다든가 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될까? 힘센 쪽이 여유를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MB정권 하에서 벌어진 일들이 대통령과 이른바 '소셜테이너'로 불리는 연예인들이 같이 청와대에서 밥 한 번 먹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인가. 아니 대통령이 밥 한끼 같이 먹으며 덕담 한마디씩 건네고 웃음 한 번 지어주는 따위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노주현이 얼마나 구시대적 사고에 사로잡혀 인물인지 여실히 드러낸다 하겠다.

"힘센 쪽이 여유를 보여줬으면"한다니, 같은 동료 연예인들이 당하고 있는 심각한 일들이 힘센 자들에게 '여유'가 없어 생긴 일인가. 조금이라도 귀에 거슬리는 말은 아예 싹부터 도려내겠다는 독재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정리하자면 노주현의 인식은 이런 것 같다. '김제동, 김미화씨 등이 오해의 빌미를 줬고, 이에 대해 힘센 자들은 여유가 없어 큰 일로 만들었고, 다시 김제동씨 등은 빌미를 제공하고도 자꾸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따졌다' 이런 것이다. 소셜테이너들도 잘못했고, 힘센 자들도 잘못했으니 다같이 청와대에 모여 밥 한 번 먹으면서 풀어라, 뭐 이런 것이다.

차라리 말을 말든지...

조선일보의 네이버 뉴스캐스터 편집판. 출처-프레시안


노주현의 이 인터뷰의 최고 백미는 조선일보가 이 짧은 문답을 가지고 만들어낸 제목이다. 차마 지면에는 달지 못했던 제목을 조선일보는 인터넷판에다 달았다. <노주현 "김제동·김미화, 빌미 주면서 뭘 잘못했느냐고 따지면…">이라고.

자신들도 민망했는지 나중에 교체하긴 했지만 인터뷰 기사 전체와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동떨어진 이야기를 조선일보는 과감히 제목에다 내걸었다. 이 과정에 노주현측의 항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주현이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장문의 기사가 이런 제목으로 규정받게 된 것도 노주현식 인식대로라면 노주현이 스스로 빌미를 제공했다.

노주현이나, 조선일보나 참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아주 찰떡궁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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