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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감독 노역설' 美정부가 만든 RFA의 작품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10. 8. 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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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황색저널 '더선(The SUN)'이 보도해 이른바 '북한 월드컵대표팀 김정훈 감독 강제노역설'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선지의 보도를 보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받아서 쓴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데도 선지는 "김정훈 북한 축구대표팀 감독이 하루 14시간씩 강제노동을 하고 있다"고 마치 사실을 확인한 것처럼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의 기사가 소스로 언급된 대목이 있긴 하나 선지가 인용한 대목은 정확하게 김정훈 감독의 사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례이다. 1966년 영국월드컵 이후 북한 선수들이 수용소에 강제수용됐다는 따위의 이야기가 마치 사실처럼 보수언론 등에서 거론되는데 이 역시 그것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것은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선지가 인용했음을 밝히지 않고 '김정훈 감독 강제노역'을 언급한 대목은 조선일보 칼럼에 등장하긴 한다. 7월 28일자 조선일보에 게재된 칼럼 '만물상' <북한 축구팀 사상비판>이 그것인데, 이 칼럼을 쓴 조선일보 신효섭 논설위원은 "김 감독이 당에서 쫓겨나 평양 건설현장 근로자로 '하방'됐다는 소문도 있다"고 쓴 것이다.

7월 28일 조선일보 '만물상' 칼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선지가 '김정훈 감독이 14시간 강제노역을 하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쓴 것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 14시간이라는 시간 따위는 언급되지도 않았고, 조선일보는 "소문"이라고 했다.

과연 선지는 어디서 그런 얘길 듣고 자신있게 이런 기사를 썼을까? 아무리 서구사회가 북한을 비정상적이고 폐쇄적인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해도 이성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 이런 기사를 아무리 타블로이드 옐로우페이퍼라 하더라도 아무런 출처도 없이 이렇게까지 쓸 수 있을까?

7월 30일 선지의 기사. '김정훈 감독 14시간 강제노역'을 사실로 보도했다.(클릭하면 해당 기사로 연결)


비록 선지는 출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지가 백지 상태에서 자기네들이 100% 지어내 이런 기사를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선지가 출처도 없이 이런 기사를 과감히 쓴 데는 선지에 언급된 조선일보의 기사처럼 북한과 관련한 과거의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도 영향을 미쳤을테고('북한이 과거에도 그랬는지, 지금도 그러겠지 뭐' 이런 식의), 어딘가에서는 남아공월드컵에서 3패를 당한 북한 대표팀과 관련한 온갖 악성루머들이 떠돌아다녔고 이런 것들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테다(월드컵 기간 중에 불거진 북한 선수 잠적설, 망명설 등등등).

그래서 도대체 선지의 황당무계한 보도에 영향을 미친 '소문'이 어떤 것들인지 확인작업에 착수해봤다. 조선일보 만물상을 보면 "남아공월드컵에 나갔지만 전패한 북한 축구팀이 사상투쟁회의에 회부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이 보도했다"고 언급한 대목이 있다. 여기 등장하는 '자유아시아방송'이 바로 '김정훈 감독 강제노역설'의 진원지다.

자유아시아방송의 7월 26일 기사.(클릭하면 해당기사로 연결)


7월 26일 자유아시아방송 사이트에 <북한 월드컵 축구팀, 사상비판 회부>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이 기사는 "북한 대표팀 선수들이 귀국한지 며칠도 안되어 인민문화궁전 대회의실에서 ‘대논쟁’이라는 사상투쟁형식의 비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북한 내부소식에 정통한 중국인 사업가 유모씨'라는 사람의 말을 소개했다.

이 유모씨가 "지난 7월 2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월드컵에 참가한 축구선수들을 놓고 사상투쟁회의가 있었다"며 "다만 (재일교포인) 정대세와 안영학 선수는 사상투쟁회의에서 제외되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은 또 '평양시의 한 소식통의 말'이라며 "7월 2일, 인민문화궁전 대회의실에서 중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박명철 체육상이 참석한 가운데 월드컵에 참가한 국가종합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대논쟁 모임이 있었다"며 "체육성 산하 각 종목별 선수들과 평양체육대학(조선체육대학), 김일성종합대학 김형직사범대학 체육학부 학생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회의가 열렸다"고 전했다. 자유아시아방송에 의하면 이 평양시의 한 소식통은 "이동규 북한 축구해설원이 이날 대논쟁 회의에서 북한 대표팀 선수들을 비판하는 주역을 담당했음을 알렸다"고 한다.

자유아시아방송에는 '신의주시의 또 다른 소식통'도 등장한다.

신의주시 소식통의 말에 의하면 "국가종합선수단을 책임진 지도원(감독)이 출당을 맞았다는 소문도 있고, 혁명화로 평양시 살림집건설현장에 투입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가 없다"고 한다. '선수단을 책임진 지도원(감독)'은 곧 김정훈 감독이다. 바로 여기서 '김정훈 감독 강제노역설'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신의주 소식통이 인민문화궁전의 '대논쟁'의 주제가 "'김정은 청년장군의 믿음을 져버렸다'는 것이어서 누구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김정훈 감독은 무사치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도 전했다.

자, 여기까지 소개된 내용은 모두 선지에도 등장한다.

'김정은의 믿음을 져버렸다'는 내용도  "betraying the trust of Kim Jong-Un"으로 등장하고, 평양시 소식통이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한 내용 가운데 김정훈 감독 비판에 앞장선 것으로 소개된 '이동규 북한 축구해설원' 역시 선지에 "After their return they faced the grilling from politicians and the man who commentated on the match, Ri Dong-Kyu"로 이름까지 똑같이 소개돼 있다.

또 자유아시아방송이 평양시 소식통의 말이라고 전한 "김형직사범대학 체육학부 학생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회의가 열렸다"고 소개된 내용 역시 선지에 등장한다. 다만 선지는 "Coach Kim Jong-Hun and his players faced a SIX-HOUR grilling from 400 government officials when they returned from South Africa"라고 하여 학생 400명을 '정부관리 400명'으로 바꿔서 표기했을 뿐이다.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찾을 수 없는 대목은 선지가 '김정훈 감독이 하루 12~14시간 강제노역한다'(North Korean boss is being forced to work between 12 and 14 hours a day lugging heavy material around a building site in the poverty-stricken hermit state)고 쓴 부분인데, 자유아시아방송의 기사에서 강제노역 시간은 찾을 수 없고, 강제노역이 사실로 단정지어지지도 않았다.

정리하자면 선지가 자유아시아방송의 기사를 거의 그대로 베껴쓰면서 황색저널답게 자신들의 상상을 좀더 가미한 소설을 쓴 것이 되고 이런 선지의 기사에 국내외 유수의 언론들이 다같이 놀아난 셈이 된다.

자, 그렇다면 선지가 '북한 월드컵선수단 감독 14시간 강제노역' 기사를 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자유아시아방송은 어떤 곳일까?

자유아시아방송의 영어 약칭은 RFA로 'Radio Free Asia'의 첫글자를 땄다. 이 매체 사이트에 들어가 'RFA 소개' 페이지를 보면 이렇게 정리되어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영어: Radio Free Asia, 약칭 RFA)은 1994년 미국 의회가 입법한 국제 방송법(International Broadcasting Act)에 의해, 1996년에 미국 의회의 출자에 의해 설립된 국제 방송국이다.


짧게 정리된 소개인데, 더 짧게 정리하면 '자유아시아방송은 미국이 돈을 내고 만든 방송국'이라는 뜻이다. 미국법에 의해 미국 의회의 지원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라는 거다. 아래 인용한 자료에 의하면 1998년 한해에만 RFA에 2,410만달러의 예산이 지원됐다고 한다.

그러면 자유아시아방송의 설립 근거가 되는 '국제방송법'은 도대체 어떤 법일까? 다음은 우리나라의 국제방송인 '아리랑TV'와 관련된 연구논문인 <아리랑TV의 운영실태에 관한 연구>(강익희·이종님·최기성, 한국방송진흥원, 2000)에 소개된 '국제방송법'과 관련된 내용이다.

1994년 국제방송법에 나타난 국제방송의 기준과 원칙은 다음과 같다.

국제방송의 기준은 ① 미국의 외교정책에 부합되고 ② 국제텔레커뮤니케이션 정책과 조약에 부합되어야 하고 ③ 민간방송사와 중복되지 않아야 하며 ④ 다른 민주국가의 정부지원 방송조직의 활동과 중복되지 않으며 ⑤ 최고수준의 방송저널리즘의 전문가적 기준에 부합되도록 운영하여야 하고 ⑥ 수용자에 대한 신뢰성 있는 정보에 근거하고 ⑦ 중요한 수용자에게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계획되어야 한다.

또한 국제방송의 원칙은 ① 신뢰성 있고, 권위적이며, 정확하고, 객관적인 뉴스를 제공하여야 하며 ② 미국 문화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사상과 제도를 균형있게 제시하며 ③ 미국정부의 정책에 대한 효과적인 제시와 책임 있는 논의와 견해를 표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기타 세계인에게 중요한 정보제공과 함께 이를 위한 연구, 전송 및 송신설비 그리고 훈련 및 기술적인 지원제공 등의 활동에 대한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과 원칙에 입각하여 미국의 국제방송은 다음의 세 가지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첫째, 국제방송은 지구화 시대의 정보와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과 진작을 통한 국제평화와 안정에 기여하여야 한다.
둘째, 급변하는 국제질서에서 자유와 민주를 지지하는 능력을 강화시키고 경제적인 진전에 기여하여야한다.
셋째,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되어야 한다.

(밑줄 및 굵은 글씨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

다 비슷비슷한 표현들이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부합되고",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유아시아방송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방송이다.

RFA 사이트에 들어가면 메인페이지가 영문으로 소개되는데, 영문 외에도 RFA는 중국어, 광동어, 위구르어, 라오스어, 베트남어, 캄보니아어, 티벳어, 버마어 그리고 한국어 등 9개 언어로 된 각각의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즉 이들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정보와 사상을 제공하는 역할을 RFA가 하고 있는 것이다.

RFA 영문 메인 페이지


이 가운데 한국어로 운영되는 사이트가 대상으로 나라는 어디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북한이다. 북한 지역을 대상으로 RFA는 파 AM 1350khz, 그리고 단파 주파수 5810khz 등으로 라디오방송을 하고 있다. RFA가 이 주파수로 북한에 흘려보내는 프로그램은 '오늘의 미국', '김씨 왕조의 실체', '북한언론의 겉과 속', '북한인권 위해 뛴다', '서울생각 평양생각', '좌충우돌 미국생활', '주성하의 서울살이' 등이다. 이들 프로그램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거론하지 않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김정훈 감독 강제노역설'은 미국이 미국법에 의해 자신들의 돈으로 만든 RFA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국인 사업가 유모씨'와 '평양의 소식통', '신의주의 소식통'을 내세워 연기를 피우고 영국의 황색저널이 그걸 가공하여 만든 루머가 된다. 미국 국가 이익을 위한 방송과 영국의 상업지상주의매체가 합작하여 전세계 언론을 상대로 해프닝을 연출한 셈이다.

한편으로 재밌고, 한편으로 씁쓸하고, 또 한편으로는 무섭지 않은가?

덧) 참고로 미국 하원 의회는 지난 6월 30일, '국제방송법' 상 RFA의 활동이 9월로 종료되는 한계시한을 철폐하고 영구 지원토록 하는 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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