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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싼타페엔 수군거리더니, 김태호 그랜저는 겸손?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10. 8. 1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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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동아일보에 손발이 오그라들고 실소를 금하기 힘든, 그야말로 재밌는 기사가 재밌는 사진과 함께 실렸다.

2면에 실린 이 기사의 제목은 <"에쿠스 대신 그랜저" 몸 낮춘 젊은 총리>. 바로 김태호 총리 내정자에 대한 기시다.

제목에 담긴 의미는 이렇다.

8일 밤 총리실에서 김태호 내정자에게 "(공식 취임 때까지 사용할) 예비용 차량으로 에쿠스와 그랜저TG가 준비돼 있는데 어느 것을 사용하겠느냐"고 묻자, 김 내정자가 "큰 차로 하지 말라"며 그랜저TG로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기사에 등장한 총리실 관계자에 따르면 '정운찬 총리가 에쿠스를 사용하는 데 같은 급의 차량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김 내정자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8월 10일 동아일보 2면


꿈보다 해몽이랄까, 아무리 에쿠스가 그랜저보다 비싸고 좋은 차라 하더라도 에쿠스 대신 그랜저를 탄다고 "몸을 낮췄다"고 풀이하는 건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 낯간지러운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기사 제목으로까지 크게 박아서 말이다.

그 기사 제목 아래 차에서 내리는 김태호 내정자의 모습을 사진으로까지 소개한 것은 동아일보만의 '맞춤 서비스'라고나 할까. '그랜저'가 언급된 제목이 아니었던들 김태호 내정자가 탄 차가 그랜저인지 에쿠스인지, 뭔지 알게 뭔가. 이 사진은 에쿠스 대신 그랜저 탄 김태호 내정자를 두고 "몸 낮춘"이라고 띄우고 독자들에게 강변하고픈 동아일보의 인증샷일뿐이다.

기사 본문은 더욱 손발이 오그라든다.

동아일보는 "그는(즉 김태호 내정자)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효율을 중시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몸을 낮추는 자세를 보였다"며 그랜저 관련 내용 외에도 "사무실에 들어선 김 내정자는 회의 탁자 상석에 자리가 마련된 것을 보고 '편안하게 앉자'며 다른 자리로 옮기려다 간부들이 거듭 권유하자 상석에 앉았다", "총리실 간부들과의 회의에서 김 내정자는 '부서별 업무보고를 생략하는 대신 주요 현안별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부서별로 업무보고를 받느라 시간을 빼앗기는 것을 피하고 대북관계, 4대강 사업 등 현안을 깊이 있게 파악하겠다는 뜻이라는 설명이다" 등등등을 '김 내정자의 몸을 낮추는 자세'랍시고 소개했다.

동아일보가 제시한 것들을 두고 김태호 내정자가 정말 몸을 낮춘 것인지,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효율을 중시하는 것인지 하나하나 따지진 않겠다. 다만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에 있었던 일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이창동 감독이 문화부장관에 임명됐다. 2003년 2월 27일 취임 첫날 이창동 장관이 나타났는데, 그 모습이 모두를 놀래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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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14일 아침 노타이 차림으로 싼타페에서 내려 문화관광부 청사로 출근하는 이창동 장관.

장관에게 주어지는 관용차가 아닌 자신의 개인차량인 싼타페를 이창동 장관이 직접 운전하고 문화부에 나타난 것이다. 이창동 장관은 이외에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을 때 정장이 아닌 캐주얼풍 양복을 입었고, 기자회견을 할 때면 "평소 넥타이를 매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매니깐 아주 불편하다"며 넥타이를 풀기도 했다. 또 직원들 모아놓고 일장연설하는 취임식을 생략하고 대신 자신이 직접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과 악수하고 문화부 홈페이지에 취임사를 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김태호 내정자는 에쿠스를 타지 않고 그랜저를 탔다고 '몸을 낮췄다'고 평가받고, '편안하게 앉자'고 한마디하고 '현안별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해서 '틀에 얽매이지 않고 효율을 중시한다'고 평가받았는데, 이 잣대라면 당시 이창동 장관에게는 '몸을 바닥에 붙이고 다녔다'거나 '효율이 몸에 배였다'고 평가할만 한 것 같다.

과연 그랬을까?

당시 관련 동아일보 기사만 살펴보자.

2월 28일 동아일보는 싼타페를 타고 넥타이를 푼 이창동 장관과 관련해 <이창동 문화부장관, 싼타페 몰고 청사로...넥타이 풀고 회견>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객관적 사실만 존재할뿐 '몸을 낮췄다'든지 평가와 해석은 전무하다.

기사 본문도 마찬가지. 동아일보는 "영화감독 출신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27일 취임 첫날부터 '파격'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고 기사를 시작하더니 "파격" 외에는 아무런 평가가 없었다. 이창동 장관의 '파격'이 좋은지 나쁜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그저 사실만 적시한 것이다.

유명한 영화감독 출신의 40대 장관이 관용차를 거부하고 자신의 차를 타고 나타났으니, 거기다 대놓고 딴죽을 걸기는 힘들었을 터. 하지만 동아일보류의 인간들에게는 이창동 장관의 모습이 가당찮게 보였을 것이다. 약 한달쯤 뒤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칼럼에서 이런 시각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홍찬식은 '동아광장' <문화는 신음하는데>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문화부 장관으로 첫 출근을 하던 날 그가 싼타페를 직접 몰고 캐주얼 차림으로 문화부 청사 앞마당에 섰을 때 주변의 수군거림도 없지 않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고 썼다. 자신은 개의치 않았지만 주변에서는 수군거렸다는 거다.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주변'이 어떤 곳 또는 부류의 인간을 지칭하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개의치 않았다'고 한 홍찬식의 속마음도 웃긴다. 홍찬식은 "'영화감독과 소설가가 일을 할 때 신사복을 입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아직 문화인 티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개의치 않았다고 덧붙였다. 장관이 직접 자기차를 운전하고 캐주얼을 입은 게 '몸을 낮췄다'거나 격식을 따지지 않고 실속을 차리는 것 따위가 아닌 "아직 문화인 티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런 시각을 가진 부류가 세월이 7년 정도 지난 지금에서는 에쿠스가 아닌 그랜저를 탔다고 '몸을 낮췄다'니. 정말 실소가 나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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