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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만수무강, 80년대엔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기원하더니

뉴스후비기

by hangil 2010. 10. 1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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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6월 9일 방송된 KBS <미디어 포커스>는 여러 모로 눈길을 끌었다.  '각하, 만수무강하십시오!'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이날 <미디어 포커스>는 87년 6월 항쟁으로 전두환이 쫓기듯 권좌에서 물러난 뒤 보안사로부터 KBS에 이관된 영상자료를 통해 방송들이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철저하게 군사독재세력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했던 적나라한 실상을 담았다.

"나중에 전두환 대통령 기념관 만들 때까지 보관을 해 달라"며 KBS에 맡겨졌다는 이 영상자료에는 12.12 쿠데타가 발생한 지 불과 일주일 후 MBC가 인기 연예인을 동원해 쿠데타 세력 위문공연을 펼쳐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모습, 5월 광주를 총칼로 무참하게 짓밟은 뒤 전두환이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가 피냄새가 가시기도 전인 6월 19일 연 파티에 TBC(동양방송) 관현악단이 동원돼 연주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미디어포커스'의 한장면


이밖에 전두환의 해외순방 생중계 영상과 '대통령 찬양 특집 프로그램'을 별도의 테이프로 특별 제작해 'MBC 보도국' 명의로 전두환에게 '진상'한 영상자료, '땡전뉴스'에만 그치지 않고 이순자의 동정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충실히 전한 뒤 그 뉴스들도 따로 묶어 '상납'한 영상자료 등 독재권력에 아부굴종한 방송사들의 수치스러운 과거 모습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그 당시 <미디어 포커스>에서 공개된 화면 가운데는 최근 전두환이 자신의 모교인 대구공업고등학교 동문회 행사에서 동문들로부터 받은 낯뜨거운 찬양과 정확하게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장면1) 1982년 1월 18일 청와대

청와대 비서실과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준비한 전두환의 51번째 생일 축하 깜짝 파티가 열렸다. "갑작스럽게 즐거움을 드리려고" 이순자가 전두환을 몰래 기자단이 마련한 자리로 데리고 와 이뤄진 행사였다. 그런데 이날 행사에 MBC 카메라와 제작인력이 동원됐다. MBC는 이날 '전두환 깜짝 생일 파티'의 이모저모와 '각하'와 '영부인'의 말씀을 고스란히 담아 'MBC보도국' 명의로 <萬壽無疆(만수무강) 51회 생신>이란 제목을 달아 전두환에게 바쳤다.

'미디어포커스'의 한장면


영상을 보면 이순자가 "그런 것 찍지 말아요"라고 말하자 제작진은 "보도용이 아니라 보관하시도록 비디오에 담는 겁니다"라고 답하고 계속 촬영한다. 영상에는 "생신을 맞이해서 각하 내외분 만수무강과 각하 영도 하에 이룩될 우리 조국의 무궁한 번영을 축원하는 뜻에서 건배 건의 드리겠습니다"라는 '전두환 팬 집단'의 낯 뜨거운 찬사도 고스란히 담겼다.
 
장면2) 2010년 10월 9일 대구 인터불고 엑스코 호텔

'대구공업고등학교 51회 졸업 30주년 기념 사은의 밤'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전두환의 팔순을 기념해 시루떡을 자르고 황금거북이를 증정하는가하면, 행사장에 '각하, 팔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각하 내외의 만수무강을 기원드립니다'는 대형 플랑카드를 내걸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10일에는 대구공업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제 31회 총동문 체육대회'에 참석한 동문들이 전날 썼던 플랑카드를 들고 운동장을 돌다 갑자기 전두환 앞에서 단체로 업드려 큰절을 올리는 그야말로 '진풍경'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그들의 큰절에 손을 흔들던 전두환의 뒤에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무늬가 새겨진 커다란 펼침막이 있었다.


독재자로 군림할 때는 독재자니깐 그렇다치고, 이제 30여년의 세월이 지나서까지 독재자 시절과 다름없는 대접을 받는 이 모습은 도대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누가 말했던가.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참으로 혜안이 아닐 수 없다. 30여년 전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권좌에 오른 전두환이 언론들로부터 낯뜨거운 용비어천가를 듣던 것이 우리 역사의 비극이라면, 30여년이 지난 지금 전두환이 모교 동문들로부터 '각하', '만수무강'이니 찬양 속에 큰절까지 받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 역시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 역사의 비극적 모습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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