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MB 영웅설화 위해 프로파간다 나선 KBS"

뉴스후비기

by hangil 2010. 11. 11. 12:56

본문

오늘 근래 읽은 글 중에 가장 진정성 있으면서 가장 논리적이고 깊이 있는 글을 읽었다.

진정성이 느껴지는만큼 글쓴이의 감정이 잔뜩 투영되어 있지만, 그래서 거친 표현들 또한 많지만 그럼에도 전혀 거칠게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설득력 있는 논리로 무장된 정말 좋은 글이다.

바로 KBS의 전 탐사보도팀장이었던 김용진 기자가 미디어오늘에 '긴급투고'한 글이다.


김용진 기자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어떤 레토릭도 부족한 '기자 중의 기자'다. 지금은 사라진 KBS <미디어포커스>의 산파였으며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언론계를 주름잡았던 KBS 탐사보도팀의 정신적, 실질적 지주였다. 그 아래 또 훌륭한 기자들이 모여 세상을 흔들어놓을 굵직굵직한 대형 탐사보도들을 줄줄이 만들어내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온갖 상을 휩쓸었다. 그 덕에 KBS는 신뢰도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김용진 기자의 '비판적, 탐사적 기자정신'이 부담스러웠던지 KBS를 전리품으로 삼은 정권에 의해 내려온 낙하산 사장은 그를 울산으로 쫓아내버렸다. 그래서 김용진 기자는 지금 울산에서 3년째 사실상 유배생활 중이다.

그런 그가 "나는 KBS의 영향력이 두렵다"고 사자후를 토해냈다.

지난 9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 결과 KBS가 신뢰도 1위(44.2%), 영향력 1위(52.4%)를 차지했다는 소식에 대해 김용진 기자는 "나는 KBS의 이 영향력이 몹시 두렵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향력의 용처가 두렵다"며 장문의 글을 쓴 것이다.

KBS는 9일, 언론진흥재단의 조사 결과를 전한 바로 그날 G20 준비 상황을 전하는 리포트를 "G20 정상회의. 예행연습도 어찌나 빈틈없는지 각국 지도자들의 배우자까지 대역을 썼습니다"라는 앵커멘트로 시작했다.

김용진 기자는 "어찌나 빈틈없는지?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앵커멘트가 아닐 수 없다"고 일갈했다. 그리고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며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어찌나 빈틈없이' G20 특별기획을 편성했던지, 'G20 특집' 아닌 것들은 끼어들 틈이 없다"고 지적했다.

KBS의 퀴즈프로그램 <1대100>의 한장면. 여기까지 G20 대변인을 출연시켜 G20을 홍보하는 모습을 보고 KBS의 빈틈없음을 나 또한 느꼈다.


앞서 그나마 양심적인 KBS의 구성원들이 만든 언론노조 KBS본부(KBS새노조)는 KBS가 편성한 G20 특집 프로그램이 TV에서만 3,300시간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G20 방송 광풍, 누구를 위한 것인가?", "더 이상 기자, PD를 정권홍보 도구로 전락시키지 말라!"고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

김용진 기자는 "세계 방송역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이다.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영채널을 통해 단일 행사를 놓고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프로파간다가 자행된 곳은 아마 대한민국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라며 " KBS가 무려 3,300 시간을 퍼부어 시청자들에게 융단 폭격해대는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고 했다.

바로 "G20 서울 개최로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라는 신화다"라는 것인데, 김용진 기자의 표현이 대단히 인상적이니 그대로 인용해보자.

"이 신화를 형성하고, 지탱하는 스토리는 매우 방대하지만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세계 주요 20개국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아가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재자와 조정자 역할을 하는, 더 나아가 세계의 새로운 경제 질서를 좌우하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나타난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KBS 김용진 기자(출처-PD저널)

김용진 기자는 이번 G20 정상회의에 대해 "한국의 대다수 언론인들은 사실 G20이 반년마다 열리는 회의체에 불과하고, 설사 서울에서 어떤 합의가 도출되더라도 구속력이 없는 상징적 수준에 머물 것이며, 이 회의로 우리가 세계 중심국가로 '우뚝' 서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 내일 정상회의가 폐막하면 G20은 금방 잊혀질 1회성 행사라는 것도 주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론들이 국민을 환상에 몰아넣은 기만의 대가를 치를 일은 없다고 한다. "이번 주말부터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또다시 우리의 '국격'을 높이는 장치로 등장할 것"이고 "청와대는 대한민국을 빛낸 메달리스트들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고 사진을 찍으며, 또 하나의 캠페인을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 또 그 이후의 이후에 전개할 캠페인도 정권 내부에 포진한 전문가(propagandist)들이 지금 머리를 짜내 기획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해 연말 UAE 원전 수주 소식이 뉴스로 도배되고 특집이 잇따르면서 "MB의 막판 담판 소식이 영웅담으로 부각됐"던 것처럼, 지난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이 "군부의 거짓과 무능, 청와대의 미숙한 초기 대응 등 정권에 치명적 부담이 될 약한 고리들을 한순간에 덮어버리고 성금모금 방송 등을 통해서 국면을 ‘천안함 영웅 신화’ 스토리로 일거에 전환시킨 KBS의 기교는 예술적 경지에 이른 것"처럼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난 추석 연휴 <아침마당>에 MB가 출연한 것을 두고도 이렇게 지적했다.

"이런 거대 프로젝트와 더불어 연휴 때 <아침마당>을 통해 작지만 임팩트 있게 'MB의 눈물겨운 사모곡'을 연출해내는 기법 또한 전두환 시절의 KBS를 훨씬 능가하는 솜씨였다. 어려운 유년 시절을 극복하고 왕이 되어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어준 친모를 회상하는 것은 '영웅설화'의 대표적 서사 구조다. <아침마당> 방송 후 청와대는 MB 지지율이 50%를 넘었다고 발표했다."

김용진 기자는 "장담컨대 KBS의 G20 특집 3,300시간은 두고두고 공영방송 KBS의 부담이 될 것이고, MB에겐 독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스로 "사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를 바라는 유권자 가운데 한 명이다"라며 "하지만 현재 추세라면 이런 기대는 이뤄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고 했다.

"요즘 행보를 보면 단순히 소통 능력의 부재를 넘어 일종의 선지자적 자기 확신과 자기기만이 기괴하게 결합된 모습이 감지된다. KBS 9시 뉴스에 시시콜콜 보도됐듯이 G20 준비 상황을 일일이 감독하러 다니는 모습은 조선중앙TV의 이른바 '현장지도' 모습을 연상케 한다. 외국 정상과 포즈를 취할 때 지나치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도 아슬아슬하다."

그의 눈에 MB는 "G20 신화의 주연으로서, 세계적 지도자의 역할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KBS는 MB를 신화로 가득 찬 ‘거울의 방’에 몰아넣어 신화의 주인공처럼 보이도록 착시현상을 유발하고, 자기 확신과 정당화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이 대통령도, KBS도 자기 교정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도 불행해진다. 50%를 웃도는 KBS의 매체 영향력과 신뢰도는 그 자체를 가지고 자랑할 일은 아니다. 그 영향력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느냐가 진짜 중요한 것이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사실 KBS가 정권에 장악된 후 신뢰도 하락을 둘러싼 비판이 거세게 제기됐다. 따라서 다시금 '신뢰도 1위'가 된 조사 결과는 그동안 KBS를 비판하던 사람들에게 당황스러움을 안겨줄 수도 있다. 나조차 도대체 이런 KBS가 신뢰도 1위라니, 황당함을 금하기 힘들고 앞으로 신뢰도 1위를 내세우는 KBS가 더욱 막장으로 치달을 때 또 어떻게 해야 될까 싶다.

하지만 'KBS를 신뢰한다'고 답한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그만큼 KBS가 무거운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그래서 김용진 기자의 말대로 그 영향력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도록 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비록 스크롤 압박을 느끼더라도 김용진 기자의 글을 찬찬히 일독할 것을 권한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