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왜 광저우 뉴스는 4년전 도하보다 4배 많아졌나?

뉴스후비기

by hangil 2010. 11. 21. 15:52

본문

얼마 전 김용진 KBS 기자가 미디어오늘에 '긴급기고'한 글을 소개한 바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댓글과 트윗을 통해 공감을 표해주었다. 혹시 아직 읽지 못한 분들은 지금이라도 일독해보면 좋을 것이다.


다시 김용진 기자의 글을 언급하는 것은, 요즘 방송을 보니 지난번 김용진 기자가 쓴 글 가운데 마치 미리 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하게 예상한 부분이 있어서다. 예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김용진 기자는 G20에 호들갑을 떨고 열광하는 KBS를 비롯한 언론들에 대해 "한국의 대다수 언론인들은 사실 G20이 반년마다 열리는 회의체에 불과하고, 설사 서울에서 어떤 합의가 도출되더라도 구속력이 없는 상징적 수준에 머물 것이며, 이 회의로 우리가 세계 중심국가로 '우뚝' 서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 내일 정상회의가 폐막하면 G20은 금방 잊혀질 1회성 행사라는 것도 주지하고 있다"고 썼다.

그의 말처럼 G20은 언제 있기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1주일도 되기 전에 사라졌다. 김용진 기자의 예상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김용진 기자의 예언은 이 대목이 아니다.

김용진 기자는 이 부분에 이어 이렇게 썼다.

그렇다면 국민들을 환상에 몰아넣은 기만의 대가를 어떻게 치를 거냐고? 장담컨대 그럴 일은 없다. 어차피 장밋빛 레토릭은 곧 망각될 것이고, 이번 주말부터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또다시 우리 의 ‘국격’을 높이는 장치로 등장할 것이다. 청와대는 대한민국을 빛낸 메달리스트들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고 사진을 찍으며, 또 하나의 캠페인을 벌일 것이고, 그 이후, 또 그 이후의 이후에 전개할 캠페인도 정권 내부에 포진한 전문가(propagandist)들이 지금 머리를 짜내 기획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다. 김용진 기자는 "이번 주말부터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또다시 우리의 '국격'을 높이는 장치로 등장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지금 어떤가? 그의 말 그대로다. G20을 떠들던 언론들은 그 입으로 이제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떠들고 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관련 뉴스로 도배되다시피 한 MBC 뉴스사이트


사실 이벤트 행사로서의 스포츠에 대한 언론들의 호들갑은 익히 알고 있었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시작되면 어느 정도는 언론들이 거기에 매몰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동안 우리 언론, 특히 방송에서 다뤄 온 '아시안게임'은 그렇게 엄청난 호들갑을 떨 정도로 '국격을 높여줄 도구'로 취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용진 기자의 글을 읽으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에이 그래도 올림픽도 월드컵도 아닌 아시안게임인데, G20만큼이나 심하기야 할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 특히 방송들은 나의 예상을 무참히 짓밟고 김용진 기자의 불길한 예언을 따랐다. 그중에서도 방송뉴스들이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다루는 모습이 가장 호들갑스러운데 그 양상을 잠깐 살펴보자.

최근 방송뉴스를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첫 뉴스가 아시안게임 소식이다. 아시안게임 관련 소식을 대여섯개 전한 다음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소개하는 것이 요즘 방송3사 뉴스의 기본 패턴이다. 인터넷매체 '미디어스'에 따르면 지상파3사는 하루 평균 5건 이상의 아시안게임 관련 보도를 내보내고 있고, 특히 박태환, 정다래 선수가 금메달을 딴 17일에는 KBS가 9꼭지, SBS가 7꼭지 MBC는 무려 13꼭지를 아시안게임 뉴스로 도배했다고 한다.


KBS의 광저우아시안게임 특집페이지


이같은 양상은 4년 전인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때와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아래 표를 보면 알겠지만 도하 아시안게임 때 방송사들은 적으면 1건(아예 보도가 없을 때도 있었다)에서 많아야 3, 4건에 불과한 보도량을 보였다. 그런데 아시안게임 5일차까지 비교했을 때 MBC는 4년 전 11건에서 44건으로 정확히 4배 늘었다. KBS는 12건에서 30건, SBS는 14건에서 27건으로 늘었다.

그런데 고작 4년이 지났을 뿐이고, 그동안 아시안게임의 위상이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데, 보도량이 서너배나 많아지고 유난스럽게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방송3사 보도량 비교
-출처:미디어스)

박태환 때문에? 알다시피 4년 전 도하에서도 박태환은 3관왕에 올랐다. 그리고 한국 선수단은 종합2위에 올랐다.

도대체 왜, 방송3사는 아시안게임을 유난히도 호들갑스럽게 보도하고 있는걸까?

그답을 김용진 기자의 글에서 찾는다면 다음과 같다.

G20과 관련해 KBS가 무려 3,300 분을 퍼부어 시청자들에게 융단 폭격하면서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매우 단순하게도 'G20 서울 개최로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라는 신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면, 아시안게임과 관련한 방송들의 호들갑 역시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는 신화를 만들기 위한 것인 셈이다.

"아시아에서 한국 골프는 상대가 없었다"고 시작한 SBS 8시뉴스


물론 이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3S정책'이라는 걸로 잘 알려졌다시피 스포츠는 단순히 국위선양의 도구만 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수한 사건, 사고, 현안, 이슈로부터 대중들이 눈을 돌리게 하고 오로지 스펙타클한 스포츠에만 관심을 갖도록 함으로써 무엇인가를 감추고자 하는 정권에게는 아주 훌륭한 통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청와대 대포폰 의혹,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삼성 3대세습 등이 과연 아시안게임보다 중요하지 않은 사안들일까?

4년전 도하 때는 방송사마다 아시안게임 보도량이 눈에 띄게 달랐던 것과 비교해 지금 광저우를 다루는 방송3사의 천편일률적인 호들갑을 보며 아시안게임을 중요하게 만들고, 다른 사안들은 중요하지 않게 만드는 과정에 방송3사의 자체적인 판단 외에도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진 기자는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우리의 국격을 높인다며 국민들을 환상에 몰아넣을 또 다른 캠페인이 벌어질 거라고 했다. "정권 내부에 포진한 전문가(propagandist)들이 지금 머리를 짜내 기획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뭐가 나올까?
궁금하진 않다. 그리고 뭐가 나오든지 놀랍지도 않을 것 같다. 이미 식상해질대로 식상해졌고, 지겨워질만큼 지겹기 때문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