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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다운 원조 '개콘'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7. 7. 27.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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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400회, 그리고 공개코미디

 KBS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가 지난 7월 8일 400회를 맞았다. 1999년 9월 11일 첫 회를 시작한 이래 매주 안방극장에 웃음을 선사하며 달려온 지 햇수로 9년째다. 콩트와 슬랩스틱이 주를 이루던 기존 코미디계에 일대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키며 코미디 프로그램의 판도 자체를 바닥부터 바꿔버린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역사가 이제 십년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인터넷도 없고, 방송이라고는 지상파 채널밖에 없던, 그래서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던 70~80년대야 <웃으면 복이 와요>, <유머일번지> 같은 프로그램이 몇 년을 두고 ‘장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아니 1분 1초가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 소식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인 21세기에, 그것도 수 십 개 채널의 재미 일색, 자극 일색의 온갖 잡다한 프로그램이 리모컨만 돌리면 언제든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줄 준비를 하고 있는 시대에, 국가기간방송 KBS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400회 동안이나 방송되다니!
  
   매번 방송 때마다 새로운 코미디, 더 웃긴 코미디를 선보여야 하는 숙명을 가진 코미디 프로그램이 ‘처음처럼’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것은 분명 예삿일이 아니다.
  
  
  ‘개콘’으로 인한 코미디계의 지각변동
  
  <개콘>의 방송 이후 국내 코미디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체제로 일대 전환을 이뤘다. 정통 코미디는 KBS 뿐만 아니라 SBS에서, 그리고 MBC에서 차례로 ‘퇴출’됐고, <웃찾사>와 <개그야>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됐다. 프로그램만 새로운 형식으로 교체된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정통 코미디로 대중들을 웃고 울렸던 ‘정통 코미디언’들도 시대 변화에 민감한 극소수 몇몇을 제외한 대다수가 방송계에서 ‘퇴출’되었다.
  
   <개콘> 도입의 ‘산파’ 역을 했던 전유성과 김미화는 그 공을 인정받고 살아남았다. 아니 후배들의 찬사와 존경을 받으며 정신적 지주로서 과거보다 더 높은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코미디판에 남아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임하룡은 영화판으로 진로를 옮겨 ‘어쨌든’ 살아남았고, 박미선은 시트콤과 드라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경규는 이제 코미디언이기보다는 일명 ‘규라인’을 이끄는 MC로 역할을 굳혀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2년여 전 정통 코미디의 부활을 선포(MBC <웃는DAY>)하며 다시 코미디판으로 복귀한 적이 있지만 쓰디쓴 실패를 맛본 뒤에는 MC 역할에 충실하다. 물론 간혹 영화판으로 외도를 하기도 하지만.
  
   ‘정통 코미디언’의 범주에 속하는 최양락이 거의 유일하게 아직 현역에 남아 있으면서 왕성한 활동을 할 뿐(전유성은 ‘역대 최강의 개그맨은 당연히 최양락’이라고 평한 바 있다), 나머지 내노라 하던 코미디언들은 어느 순간 일제히 방송에서 사라졌고, 간혹 ‘명절 특집’이나 KBS <폭소클럽> 같은 프로그램이나 밤무대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대신, 방송계에는(지상파와 케이블, DMB, 위성 등 모든 매체를 막론하고) 20대 시퍼런 젊은이들이 그 자리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도 어느 순간 새로운 얼굴로 바뀌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금도 대학로 곳곳의 공개 코미디 공연 소극장에서, 전국 각지에서 이름 없는 개그맨 지망생들이 <개콘>, <웃찾사>, <개그야>를 꿈의 무대로 삼아 절치부심 고된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개콘’의 신화창조
  
  이 모두는 <개콘>이 만들어 낸 변화다. 하지만 그런 <개콘>도 ‘시작은 미약했다’.
   <개콘>이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 조연출을 맡아 전유성 등과 함께 공개 코미디의 탄생을 주도했던 서수민 KBS PD가 이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해줬던 일화를 소개한다.
  
  “<개콘>이 개그프로로서 처음 있는 공개방송이잖아요. 공개방송 녹화 들어가기 전까지 모든 사람이 걱정했어요. ‘그게 될까?’, ‘공개코미디가 될까’ 다 반대했어요. 하물며 출연자들도 반신반의하고, 스텝들은 불만이고, 그런데다 방청객으로 부른 사람들도 객석이 안차니깐 여의도공원가서 사람들 불러오기도 했으니 너무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도 어쨌든 리허설을 했는데 무대로 보는 거랑 카메라로 보는 거랑 느낌이 이상해요. ‘큰일났구나, X 됐구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녹화가 딱 들어갔어요. 그 자리에 500명이 있었는데 500명이 우리가 계산했던 그 포인트에 정확히 쓰러지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포인트에서도 쓰러지는 거예요.”
  
  그리고 그때부터 <개콘>의 신화는 시작되었다.
   코미디계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온 지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개콘>도 <개콘> 나름대로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개콘>에서 다뤄진 코너만도 수 백 개, 그 중에는‘봉숭아학당’, ‘사바나의 아침’, ‘갈갈이 삼형제’, ‘생활사투리’, ‘우비삼남매’, ‘도레미합창단’, ‘언저리뉴스’, ‘대단해요’, ‘깜빡홈쇼핑’, ‘춤추는 대수사선’ 등 기억에 남는 코너만 열거해도 수 십 개는 금방 생각날 정도다.
  
   <개콘>의 미덕 중 하나, 새로운 실험을 담은 새로운 코너를 선보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는 점. <개콘>의 시도 자체가 실험이었던 터라, <개콘>은 출연자들의 다양한 실험이 선보이고 관객의 평가를 거쳐 시청자들에게 전해진 뒤 새로운 코너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최적의 무대였다. ‘언저리뉴스’, ‘도레미합창단’, ‘깜빡홈쇼핑’, ‘GoGo 예술속으로’, ‘착한 사람만 보여요’, ‘골목대장 마빡이’, ‘고음불가’, ‘사랑의 카운셀러’, ‘지역광고’ 등은 그 시도 하나하나가 새로운 코너였고,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즐거움과 재미,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코너들을 통해 또 다른 ‘스타 개그맨/개그우먼’이 탄생해 다시 <개콘>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백재현, 김영철, 심현섭, 강성범에서 박준형, 정종철, 김준호, 박성호, 안상태를 거쳐 이수근, 유세윤, 김병만, 강유미, 신봉선, 장동민, 황현희 그리고 최근의 변기수(‘까다로운 변선생’), 김기열(‘지역광고’), 김원효(‘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에 이르기까지 <개콘>만큼 스타 탄생의 산실이 되는 프로그램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물론 조원석과 김미려, 정성호, 김주철 등을 탄생시킨 <개그야>에서도, 윤택, 김기욱, 김경욱, 김재우, 김신영, 양세형, 이동엽 등을 낳은 <웃찾사>에서도 스타는 만들어진다. 하지만 <개콘>과 비교하자면 중량감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왜 그럴까?
  
  
  원조, 이것이 다르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 비해 <개콘>의 코너들에서 캐릭터가 더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5~10분의 짧은 시간 동안 웃음을 만들어내야 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관객들과 시청자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주는 것은 유행어, 개인기, 애드립, 스토리 등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결국엔 그 모든 것을 조화시켜낸 캐릭터가 살아 있을 때 전해 받는 느낌이 강해진다. <개콘>의 경우 캐릭터와 그 캐릭터의 연기, 유행어, 애드립, 스토리가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웃찾사>와 <개그야>의 경우에는 캐릭터보다는 유행어나 개인기, 애드립 그 자체만 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행어는 남고 개그맨과 개그우먼은 없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디서 들어본 유행어인데 누구 유행어인지는 모른다는 의미다.
  
   스토리가 <개콘>에 비해 다른 프로그램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개콘>은 짧은 한 코너라도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살아 있는데, <웃찾사>와 <개그야>는 스토리의 완결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스토리가 가장 강조되는 ‘뮤지컬’ 같은 코너가 아니더라도 <개콘>에는 ‘대화가 필요해’, ‘내 인생에 내기 걸었네’, ‘불청객들’, ‘내 이름은 안상순’, ‘사랑의 카운셀러’ 등 스토리가 살아 있는 코너가 적지 않다. 반면 <웃찾사>와 <개그야>에서는 스토리 보다는 비슷한 상황을 반복하며 같은 유행어와 우스꽝스런 몸짓을 계속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개콘>의 코너에 비해 <웃찾사>와 <개그야> 코너들이 대체로 수명이 짧다는 점도 <개콘>의 중량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제작진과 연기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건 된다’ 싶은 코너는 한 번 방송으로도 판단된다고 한다. 따라서 반응이 좋지 않은 코너는 금방 내리고 새 코너로 대체하려는 것은 제작진들로서는 당연지사. 그럼에도 <개콘>의 코너들이 더 긴 생명력을 갖는 것은, 공개 녹화 전까지 5번 정도나 이뤄지는 사전 검증 과정을 <개콘>에 비해 다른 프로그램이 부실하게 하거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웃찾사>나 <개그야>보다 <개콘>이 연기자들을 몇 번 더 믿어본다거나, 아이디어를 짜내고 한 코너를 완성하는 실력이 <개콘> 출연진들이 뛰어나거나 셋 중 하나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관객과 시청자들의 충성도와 애정이 높아 언제든 웃을 준비가 되어 있든지.
  
   사실 <개콘>에 비해 <웃찾사>와 <개그야>가 보여주는 관객들의 모습이 다소 인위적이라는 것(특히 <개그야>)도 <개콘>에 신뢰가 가는 하나의 이유라 할 만 하다. 세 프로그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콘>에 비해 다른 프로그램들은 관객의 웃음소리와 박수소리를 더 자주, 그리고 강하게 부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것이 코너의 흐름과 맞지 않는 느낌을 적지 않게 준다. 그리고 <웃찾사>와 <개그야>는 화면에서도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는다기보다 미모가 뛰어난 여성을 클로즈업 하는데 치중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코너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런 여러 가지를 종합해보면, <개콘>이 400회까지 이르는 데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고, 그것이 후발주자인 <웃찾사>와 <개그야>에게 추월을 허용하지 않고 여전히 공개코미디를 선두에서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경쟁 또 경쟁, 그리고 그늘
  
  하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개콘>이 성공적으로 400회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인에서 <웃찾사>, <개그야>와의 경쟁을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타방송사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발주자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개콘>은 주마가편의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이 과정에 한 때 휘청했던 순간도 없진 않았다. 2003년 심현섭, 강성범, 박성호, 김준호 등을 위시해 <개콘>을 이끌던 일군의 연기자들이 대거 <개콘>을 떠나 <웃찾사>로 자리를 옮겼던 것. 하지만 <개콘>은 이 위기 상황에서도 박준형을 필두로 한 이른바 ‘갈갈이 패밀리’가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을 활약을 보여주며 전화위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세 프로그램이 트로이카 체제를 이뤄 경쟁 속에서 자극을 주고받으며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다.
   
   물론 이 같은 경쟁체제의 그늘도 무시할 수 없다.
   “공개코미디가 재미없는 아이템은 빨리 없어지고 새로운 게 나온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재미없는 개그맨은 바로 교체된다는 것을 말한다. 못 웃기면 내려와야 된다.”(정종철)
   “항상 심판을 받으러 가는 느낌이기 때문에 떨린다. 안 웃고 썰렁하다 싶으면 땀이 흐르고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게 된다.”(박성호)
  
   공개코미디라는 틀에서 연기자들은 같은 프로그램 안에서 경쟁과 타방송사 프로그램과의 경쟁이라는 두 번의 전쟁을 매주 치른다. 이 과정에서 “목이라도 매고 싶은 압박감을 느낀다”고 털어놓는 개그맨도 있다. 최양락은 공개코미디에 대해 “쉽게 얘기해서 요즘 개그프로는 젊은 개그맨들이 ‘누가 누가 더 잘 웃기나’를 겨루는 웃기기 자랑대회”라며 “‘자 여러분들, 지금부터 이 사람이 웃길 거 에요’ 이렇게 쌈을 시키면 그게 참 얼마나 어려운 무대가 되겠냐?”라고 지적한 바 있다. “코미디를 음미할 수 있고 뭔가 여운이 남고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는 건 꿈도 못 꾸고 그냥 디립다 웃겨야 되니깐 그게 아쉽다”는 거다.
  
  <개콘> 400회, 그리고 공개코미디 9년의 역사. <개콘>이 ‘처음처럼’ 한결같기를 바라면서도 또 한 번 코미디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새로운 프로그램도 슬슬 모습을 드러내줬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게 된다. 어쩌면 치열한 경쟁체제가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코미디가 어딘가에서 움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은 '월간 말' 2007년 8월호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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