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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국, 참 불운한 사람

뉴스후비기

by hangil 2011. 6. 1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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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국은 참 불운한 사람이다.
그가 벌이는 활동이라는 것들에 대체적으로 비판적이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연민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적어도 축구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큼은 순수하다고 믿고 있으며, '기러기 아빠'라는 그의 신세 또한 처량함을 자아낸다. 거기에다 김흥국은 불운하기까지 하다.

많은 사람들은 김흥국이 MBC라디오 '두시만세'에서 퇴출된 뒤 벌이고 있는 1인시위, 삭발 등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스스로 '대중예술인'을 자처하면서 왜 대중들이 그에 대해 부정적인지는 김흥국 스스로가 자신의 그동안의 행적을 되돌아보며 깨달을 문제다.


다만 김흥국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찬찬히 살펴보면 김흥국은 억울한 부분이 없지 않다. 솔직히 그가 친한나라당 성향의 활동을 했다고 하여 '2시만세'에서 퇴출될 필요는 없다.

'2시만세'는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시사보도프로그램이 아니다. 그의 정치적 견해가 프로그램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김흥국이 '2시만세'를 진행하면서 그로 인한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다.

지난 재보궐 선거 과정에서 김흥국이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부분이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이를 두고 퇴출시킬 사안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다.

MBC가 스스로 마련한 '선거보도준칙'에 의하면 '선거일 90일 전부터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한 지지를 공표한 자, 선거운동원 등을 출연시켜 후보자의 이미지를 조작하는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조항이 김흥국의 사례에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조항을 그대로 해석하면 특정 정당 지지자나 선거운동원이 방송에 출연하여 선거에 영향을 주는 내용을 방송에 담으면 안된다는 의미가 된다. 김흥국에 적용하자면, 방송에서 한나라당에 유리하도록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을 언급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김흥국은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이 조항을 좀 더 확대해 어떤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는 누군가가 방송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김흥국은 재보선 당시 분당에 갔던 직후 방송출연금지를 당했어야 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2달이 가까워오는 지금 그를 퇴출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그저 김흥국은 희생양일뿐이다.

MBC가 김미화, 김종배 등을 퇴출시킨 것을 두고 쏟아지는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친야당성향만 퇴출시킨 게 아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 김흥국을 끼워서 퇴출시킨 것뿐이다. 따라서 김흥국의 퇴출은 '정치적 목적'에 의한 퇴출이다. 방송만 놓고 보자면 김흥국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김흥국을 쫓아낸 MBC가 정치적인 것이다.


이제 김흥국을 퇴출시킨 MBC는 '봐라, 친한나라당 방송인도 쫓아내지 않았냐?'며 앞으로 MBC에 이른바 '소셜테이너'는 발도 붙이기 힘들게 할 수 있으며, 맘에 들지 않는 방송인을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며 얼마든지 쫓아낼 수 있게 됐다. 아마 그런 일들이 더욱 광범위하게 벌어질 것이다.

자,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헷갈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낙하산 사장 김재철이 들어온 뒤 MBC는 KBS가 무색하리만큼 관제방송화되어 있다. 친이명박에 친한나라당 방송이 된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 친한나라당 방송 MBC가 친한나라당 연예인 김흥국을 쫓아냈다? 이건 어울리지 않는 조합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김흥국은 쫓겨났다. 왜?

김흥국이 불운한 사람이라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흥국은 친한나라당 성향이긴 하지만 친이도 아니고 친박도 아니다. '친정(몽준)'이란 용어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김흥국은 친정몽준이다. 사실 정몽준만 한나라당에 없으면 김흥국은 '친한나라당' 연예인일 이유도 없다.

비록 정몽준 의원이 차기 대권주자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는 정치적 존재감이 거의 0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러니 그와 가까운 연예인 한 명 퇴출시키는 거야 MBC로서 아무런 정치적 부담을 느낄 게 없다.

김흥국의 화려한 한 때.(사진출처-한겨레)


물론 한때 화려한 시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02년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와 후보단일화 협상을 할 무렵, 그땐 김흥국도 따라서 주가가 올랐다. 그리고 MB정부 출범 뒤 정몽준이 한나라당 대표가 됐을 때, 그때 김흥국은 참으로 화려했다. "불러만 준다면" 얼마든지 정치판에 뛰어들 준비도 했던 시절도 있었다.

(관련글 : 정몽준 대표 시대, 김흥국의 꿈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시기는 너무 짧았다. '축구 대통령', '월드컵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정몽준의 꿈이 사그라들면서 김흥국의 화려한 시기는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비록 힘이 없긴 하지만 '전직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정치인의 '측근 중의 측근'인 그가 친한나라당 방송에서 쫓겨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어찌 불운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오늘 포털을 장식한 사진을 보면 참으로 우울한 블랙코미디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대권주자 중 한 명임에도 자기의 측근 하나 구제해주지 못하는 전직 한나라당 대표와 그 앞에서 머리를 삭발하는 김흥국이라니...

사진출처-오마이뉴스


권력의 힘이란 이토록 냉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리 김흥국이 불운하다한들 지금 그가 MBC에서 퇴출당할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지금 김흥국의 MBC 퇴출을 두고 목소리를 높이자면 그 대상은 김흥국이 아니라 MBC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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