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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부시 면담' 환영하고 있다..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7. 10. 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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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10월 중순 미국을 방문해 부시 미국 대통령을 면담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형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멜리사 버넷 백악관 의전실장이 공식문서로 (면담을) 확인해줬다”고 밝혔고, 이번 면담을 막후에서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강영우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 또한 언론에게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우리나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를 만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일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

첫째, 미국 대통령이 한 나라의 대통령 선거 후보와 면담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애초 한나라당은 미 국무부라는 ‘공식 라인’을 통해 부시와의 면담을 신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 국무부 측에서는 “선거를 앞 둔 시점에 특정 정당의 후보를 만나기 어렵다”며 면담을 거부했다고 전해진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비선(秘線)’을 통해 면담이 성사되었다는 것은 미국이 스스로의 공식적인 입장을 뒤집어서라도 이명박 후보를 만날 이유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정세변화에 미국이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부시가 이명박 후보를 만난다는 것은 대내외에 ‘미국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명백한 대선 개입은 물론, 과거 '북풍'에 비견할만한 ‘미풍(美風)’이다.

둘째, 면담 성사 과정이 외교적 관례를 무시한 무리수로 점철되어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공식 라인을 통한 면담이 거부되자, 이 후보 측에서는 강영우 차관보와 미 공화당 원로들을 통해 부시에게 편지를 보내서까지 면담에 매달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표면상으로는 이명박 후보가 평소 친분이 있던 미국 인사들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공식 라인을 젖혀두고 ‘비선 라인’을 통했다는 것은 결국 ‘로비’를 했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당연히 이루어지지 말아야 할 면담이 억지스럽게 비밀리에 이루어지다보니 미 국무부에서 반발하고 있고 이 때문에 미국이 이 후보와의 면담을 ‘재검토’한다는 소식이 나오더니 결국은 주한 미대사관 측에서 ‘면담 계획은 없다’고 공식확인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길어야 1시간도 만나지 못할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려고 이 후보 측이 외교적 관례까지 무시하고 무리수를 둔 결과 세계적 조롱거리가 될 만한 해프닝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셋째, 이번 면담은 시기적으로 숱한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역사적인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3일여 앞두고 유력 야당 후보와 미국 대통령의 면담 소식이 전해진 것 자체가 어떤 ‘꿍꿍이’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 만하다. 더구나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한창 남북 사이의 화해와 평화정착 노력이 무성할 시점에, 부시가 미국의 대북강경책을 지지하고 정상회담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인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만난다는 것은 대선 개입과 함께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어떤 신호를 보내는 걸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곧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제기되고 있는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미국 측의 이견으로도 볼 수 있다. 결국 이번 면담이 성사될 경우 한반도 전체 구성원의 염원인 평화와 통일을 어떻게든 가로 막으려는 미국 강경파와 한나라당의 ‘합작품’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한반도 평화 선언'을 두 손 맞잡고 했는데, 며칠 뒤 미국에서는 부시와 이명박이 두 손을 잡고 '북핵폐기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며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까?

정상회담은 한번도 ‘환영’ 안한 중앙일보, ‘이명박-부시 면담’은 ‘환영’

상황이 이런데도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일부 보수신문들은 문제 지적은 외면한 채 면담이 성사되기까지의 ‘극적’ 과정을 부각하면서 이명박 후보 측이 대단한 일을 벌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특히 중앙일보는 사설을 동원해 “유력한 차기주자가 최대의 동맹국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갖게 된 것”을 “환영할 일”이라고 적극 반겼으며, “엉망이 된 한·미 동맹관계와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로 활용해줄 것을 기대”하는 등 친미사대적 속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한편, 이명박 후보를 노골적으로 두둔하는 편향성 또한 전혀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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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중앙일보 사설



중앙은 9월 29일 면담 소식을 1면에 <노 대통령에 대한 불만/미국, 우회적으로 표출>이라는 제목으로 큼지막하게 싣고 “백악관의 이례적인 결정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면서도 그것이 가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지율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 후보가 대세론을 확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부시 면담’으로 맞불을 놓으며 대선 주도권을 쥐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등 이 후보 측의 선거전략을 충실히 소개했으며, 면담이 ‘비선 라인’을 통해 이뤄졌음이 확인되고 있음에도 “비선이 아닌 공적인 라인을 통해 성사된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특히 사설 <부시 대통령 왜 이명박 후보를 만날까>에서는 ‘면담 환영’ 이유를 “현 정부 들어 국민은 이 나라의 안보를 지탱해온 한·미동맹관계가 소원해진 데 대해 매우 걱정해왔기 때문”이라며 “부시 대통령이 관례를 깨면서까지 이 후보를 만나는 것은 다행”이라고 친미사대적 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중앙은 또 “다른 한편 왜 미국은 이런 일을 했을까를 곰곰 되씹어야 할 것”이라며 참여정부 하에서의 한미관계가 문제가 많은 것으로 몰아갔고, 이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당연한 것으로 주장하며 이번 면담에 대해 “미국과의 동맹을 중요시하는 국민은 오히려 안도할 것”이라고 아전인수식 주장을 늘어놓았다.

중앙은 또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첫날인 10월 2일 1면에 <“부시·이명박 면담 막으려 한국 정부가 미국에 압박”>이라는 기사를 싣고 강영우 차관보의 입을 빌어 이번 면담으로 인해 ‘한미 간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처럼 부각시키면서도 이번 면담 자체와 성사 과정의 부적절성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반면 미 국무부에서 불만을 나타냈다는 것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측의 발표를 인용하며 ‘아무 문제없다’는 식으로 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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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9월 29일 <“MB는 한미관계 중시” 공화당 원로 편지 주효>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면담이 이뤄졌는지에 관심이 쏠린다”며 면담 성사 과정을 시시콜콜하게 소개했다. 특히 미 공화당 원로들이 이명박 후보에 대해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수없이 강조하는 등 반미 성향의 주자들과 차별화된 사람’으로 ‘전통적 한미관계를 유지하는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편지를 부시에게 보낸 것에 대해 “이런 노력이 결실을 봐” 면담이 이뤄졌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부시와 이 후보의 만남에 힘을 실었다.

또 10월 2일에는 <이명박 미방문 “경제에 집중”>에서 “(이 후보가) 미국 방문의 초점을 ‘경제 외교’에 두고 세부 일정 조율에 들어갔다”며 이 후보 측의 “현 정부보다 상대적 우위를 가졌다고 평가되는 경제 분야에 집중해 차별화를 노리겠다는 전략”과 “한미 FTA가 양국에 미칠 긍정적인 효과 등을 ‘체험적’으로 강조해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확산시킨다는 복안”을 부각시키는 등 ‘한나라당 기관지’같은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반면 면담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미국측이 우리 쪽에 유감을 전했다는 얘기는 알지 못한다’는 이 후보 측 전언을 빌어 애써 봉합시키는 자세를 보였다.

한편 조선일보의 경우 10월 1일 <이명박, 부시와 면담 ‘삐걱’>과 2일 <한미 외교라인 분위기> 등에서 면담 성사 과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는 모습을 보여 중앙·동아에 비해 차별적인 모습을 보였고, 특히 2일에는 주한 미대사관 확인을 통해 “처음부터 일정이 잡혀있지 않은 상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발 빠르게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9월 29일 <부시, 이후보 면담 수락, 왜…>에서는 ‘부시가 이 후보의 한미동맹·북인권 중시 정책에 주목했다’며 동아 등과 별반 다르지 않는 보도태도를 보였고, 논란에 대해서도 그저 사실 관계만 추적할 뿐, 면담의 부적절성에 대한 지적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 과연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2일 오후부터 언론들은 ‘이명박-부시 면담 계획 없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단언하기에는 이른 듯하지만, ‘비선 라인’을 통한 이 후보 측의 무리한 면담 로비가 외교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결과 때문일 것으로 해석된다. 애초부터 ‘이명박-부시 면담’은 있어서는 안 될 만남이었다. 하지만 ‘해프닝’일 수도 있는 이번 면담 추진 과정을 보며 또 다시 한국 보수언론의 친미속성과 특정후보에 대한 노골적인 편향성을 확인함으로써 씁쓸함을 가슴 가득 느끼게 된다.

조선·동아·중앙은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사실이 발표된 직후부터 시기·방법·절차·의제 등을 놓고 두 달 가까이 흠집을 내왔다. 하지만 이들 언론은 남북 정상 간의 만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명박-부시 면담’에 대해 그 어떤 비판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단 한 차례도 ‘환영’ 입장을 내놓지 않던 중앙일보같은 매체는 이들의 면담을 “환영”하고 “기대”했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 한국 사회에서는 이른바 ‘메이저언론’에 의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편향적인 보도 또한 선거개입이나 다름없다.

한편, 이번 면담 추진 과정을 통해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의 친미사대주의적 모습에 대해서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박정희와 전두환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케네디, 레이건 등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사활을 걸었다. 그리고 미국은 이들을 만나줌으로써 ‘정통성’이라는 것을 부여하고 국내 정치와 한반도 정세를 맘껏 주물러왔다. 이후 군사정권의 ‘적통’을 이어받은 노태우 대통령은 후보 시절 레이건을 면담해 미국으로부터 ‘대통령 자격’을 인정받았으며, 군부세력과 야합한 김영삼 대통령 또한 부시(현 부시의 아버지) 대통령을 후보도 되기 전에 만난 바 있다. 겨우 지난 2002년 대선에 이르러서야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그런 노무현조차 대통령이 되어서는 ‘이라크 파병’, ‘한미FTA’ 등 미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이명박 후보의 이번 면담 추진은 조금씩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한국의 정치를 20~30년 전 과거로 후퇴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런 이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지 참으로 걱정이다. 얼마 전 버시바우 주한미대사를 만나 이번 대선을 ‘친북좌파와 보수우파의 대결’로 규정한 바 있는 이 후보는 이번 면담 추진을 통해 자신이 ‘보수우파’를 넘어 ‘반북우파’ 또는 ‘친미우파’임을 확인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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