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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때까지 간 폴리널리스트, 누가 책임져?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8. 2. 2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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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유행하는 정치 관련 신조어 가운데 '폴리널리스트'라는 말이 있다.
다름 아니라 politics+journalist, 즉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란 말이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번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으려고 문을 두드리는 언론인 출신 인사들이 줄을 잇고 있어. 과히 폴리널리스트 전성시대라 할 만한 상황이다.

비슷하게는 '폴리페서'가 있고, '폴리테이너'가 있다.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학자와 연예인을 일컫는 말이다.

이 셋 중에 아마도 가장 심각한 문제를 가지는 게 폴리널리스트가 아닌가 싶고, 가장 부담없이 정치권 문을 두드리는 건 폴리페서가 아닐까 싶다.

폴리널리스트는 그 자신이 특정 정파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 그 이전까지 그가 해왔던 언론 활동, 즉 기사를 쓴다든가, 칼럼을 쓴다든가 했던 일들의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가 해왔던 언론 활동이 결국 특정 정파를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는 개연성 또한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객관성과 중립성, 공정성의 탈을 쓰고 특정 정치집단의 사실상의 '하수인' 노릇을 해왔다는 것이다.

폴리페서의 경우는 조금 다른데, 그 자신의 학문적 신념을 실제로 펼치기 위해 정치권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고, 소신은 찾을 데 없이 철새처럼 이 정당 저 정당 시류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부류가 있다. 그 사람의 이력을 찾아보면 구별은 되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정치권에 진출했다가 그만두게 되면 언제든 강단으로 복귀할 수 있다. 별 부담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교수가 이번 총선에 나온다고 하자.
그렇다면 공천신청을 해야 한다, 해서 예비후보로 뛰어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학교를 그만둘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다 공천에서 떨어지면? 그냥 예전처럼 강의에 전념하면 된다. 4년 뒤를 기약하면서...
근데, 공천을 받았다? 그럼 잠시 '휴직'을 하고 열라 선거운동을 하면 된다. 낙선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된다.
또 재수 좋게, 혹은 실력으로 당선된다? 그럼 휴직이 길어진다. 4년으로... 4년 뒤 다시 한 번 더 도전하든, 아님 학교로 돌아가면 된다. 몇 군데 '쉬는 기간'을 학칙 같은 걸로 정해놓은 곳도 없진 않은 것 같던데, 금뱃지까지 단 사람이 돌아오겠다는데 막는 학교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진짜 편하다.

반면, 어쨌든 폴리널리스트는 한번 언론사를 나가면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아직 그런 경우는 없었다. 정치색이 분명한 사람이 다시 기자든, 논설위원이든 돌아와서 제아무리 기사를 쓰든, 칼럼을 써봤자 먹히지 않을 게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폴리널리스트들은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각오한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 직업 이전의 자유까지 있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인 이 나라에서 그들에게 뭐라 할 것인가?

그러나!!

무엇이든 금도라는 건 있다. 적어도 이 정도는 지켜야.. 하는 선은 있는 것이다.

민언련에서 2월 21일 폴리널리스트들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부적절한 방식의 언론인 정계진출, 바로잡을 때다' 라는 이 논평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당선인이 역대 최대의 언론인 출신 공보팀을 꾸려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2008년 총선에도 이미 60여 명에 달하는 언론인들이 공천신청을 했다고 한다"며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한 언론인은 조선일보 5명, 월간조선 1명, 중앙일보 3명, 동아일보 4명, 경향신문 4명, SBS 8명, KBS 3명 등 40여명이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민언련은 특히 이 가운데,
"언론인이 정계진출을 꾀하기 위해 노골적이고 편파적으로 정치지향성을 드러내는 경우"에 대해 비판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민언련이 제시한 사례는 3명이다.

먼저,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이규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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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은 이 씨에 대해 "이규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의 대선 당시 칼럼을 살펴보면 언론매체를 이용한 특정 후보 줄서기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규민 씨는 동아일보에서 경제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으로 활동해왔으며, 작년 10월 정년퇴직한 뒤 지난 1월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을 낸 인물"이라며 그의 지난 행적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민언련의 논평 구절을 인용해 보자면,

이명박 후보에 대한 도덕성 검증 논란이 한창이던 2007년 7월 10일 <‘검증의 칼’ 보다 더 필요한 것>이라는 칼럼에서 “정치인에게는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지만 일반시민들이 도덕으로부터 얼마든지 자유롭게 행동하는 사회에서 성인군자형 정치인을 바라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며 시민들의 도덕성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정치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는 상식 밖의 주장을 늘어놓으며 이명박 후보를 감쌌다.

또,

노무현 정권 시절 내내 노무현 정부를 공격하는 데 앞장서 왔던 이규민 씨는 2007년 7월 23일 <우리에게 至上의 가치는 무엇인가>에서는 어떤 경제대통령을 원하는가를 논하며 한나라당 경선 후보들만을 당선 대상자로 꼽았고, <‘검증의 칼’ 보다 더 필요한 것>에서도 “우리는 5년 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편을 들었다.

이규민 씨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mlee623)에는 '이규민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글에 "이규민 예비후보는 동아일보의 명칼럼을 통해서 한나라당과 저를 적극 지원해 주셨습니다. 또한 한국의 뉴라이트 운동으로 보수층 결집을 위해 애 많이 쓰신 분입니다"라는 이명박 당선인의 글이 남겨져있다는 사실도 민언련은 지적했다. 결국 그 자체가 "이규민 씨가 동아일보라는 칼럼니스트라는 언론인 신분을 이용하여 정치계에 입문한 한 증거"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앙일보 부국장을 지낸 김현일 씨. 민언련은 김 씨가 "30여 년간을 중앙일보에서 활동하다가  2007년 9월 사표를 내고, 11월 8일 이명박 후보의 언론특보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발전을 지원하겠다”며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몇 가지 또 인용해보자.

김현일 씨의 칼럼은 2002년 대선 때부터 편파성으로 문제가 됐다. 2002년 9월 24일 <노무현 후보의 ‘발가락 양말’>을 비롯해 2002년 12월 2일 <대선과 감춰진 여론>에서는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노골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김현일 씨는 발가락 양말을 고집한다는 이유로 노무현 후보가 아집이 지나치고 정치력이 부재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확인할 길 없는 한 대학 교수의 강의시간에 있었던 모의투표 사례를 들며 젊은이들이 속마음으로는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식의 ‘카더라’식 칼럼을 쓰며 언론인의 기본 소양마저 저버리는 행태로 빈축을 샀다.

2002년 10월 21일 <북핵 변수에 곤혹스런 여권>에서는 정치권이 북풍을 이용하려 했던 것을 외려 북한이 선거개입하려 했던 것으로 간주하며 “반(反)이회창 ‘통합 후보’로 유력시되는 정몽준 의원은 북한의 음모·공작을 제대로 막아낼 수 없다”고 하여 이회창 후보를 두둔하기도 했다.


한 명 더.

이번엔 방송인 출신이다. KBS 시청자센터장을 지낸 차갑진 씨. 민언련은 차 씨에 대해 "대통령 후보 토론회 때 이명박 후보에 다가가 조언을 하여 편파성 시비를 일으켰던 차갑진 씨는 12월 12일 보직 사퇴의사를 밝히며 정연주 사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외려 KBS가 편파적이라며 기자회견까지 한 인물"이라며 "공영방송 안에서 반 정연주 사장, KBS 편파성을 주장하며 한나라당에 유리한 정치행보를 보이다가 결국 한나라당에 문을 두드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사람들 외에도 민언련은 '최소한의 냉각기도 없이 정당에 입당한 언론인'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지적했다. 이에 해당되는 사람으로 민언련은,
조선일보 출신인 진성호 씨(말이 필요 없다), 동아일보에서 '나대로 선생'이라는 네칸 만화를 오랫동안 그려 온 이홍우 씨, 그리고 KBS '뉴스9'의 편집까지 맡았던 신성범 씨, 역시 KBS에서 외교안보데스크를 지낸 안형환 씨, 또 역시 KBS '뉴스타임' 데스크를 지낸 박선규 씨, 그리고 SBS에서 이사를 지낸 허원제 씨, 또 SBS '8시뉴스'의 앵커를 맡다가 얼마 전까지 '모닝와이드' 앵커를 맡았던 홍지만 씨 등을 꼽았다.

헤럴드미디어 회장인 홍정욱 씨 등 물론 이밖에도 많다. 여기까지 제시한 사람들은 모두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사람들이다. 다른 당은? 물론 언론인 출신들은 있다. 하다못해 권영길 의원 또한 기자 출신이고, 정동영 씨도 기자 출신이다. 하지만 냉각기도 없이 바로 들어와서 이번 18대 총선의 공천을 신청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민언련은 이러한 폴리널리스트 '급증' 현상에 대해 "언론인이 언론인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이미지를 정치입문의 도구로 사용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사나 칼럼의 공정성 뿐 아니라 언론사의 공정성까지 의심받게 되어 언론 스스로 자멸하는 길을 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부적절한 처신을 보인 언론인의 정계진출 사례를 더 모아서 유권자들에게 알려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 앞으로도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판단은 정말 유권자들의 몫이다. 만약 이들이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게 된다면? 우리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들이 후보로 선거에 나온다면 우리는 우리의 표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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