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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제는…’ 끝장볼 때까지 말하라”

다큐후비기

by hangil 2007. 6. 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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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제는…’ 끝장볼 때까지 말하라”

침묵을 강요받아야만 했던 우리 현대사의 묻힌 진실을 파헤치고,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왔던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이하 <이제는>)가 지난 26일로 100회를 맞았다. 1999년 ‘제주 4·3’이 첫 회였으니 햇수로 7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어온 셈이다.

   
▲ ⓒMBC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짓이겨온 ‘레드콤플렉스’의 실체, ‘국가권력’이 저질러왔던 ‘폭력’의 진상, 한국사회에 있어 ‘성역’이나 마찬가지였던 ‘미국’의 정체,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발생한 의문의 사건에 대해 <이제는>은 7년 동안 말해왔다.

<이제는>이 방송되기 전에는 감히 지상파에서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말’이 비로소 <이제는>을 통해 터져 나오게 되었다. 어쩌면 지금도 어둠 속에, 망각의 뇌리 속에, 인식의 무지 속에 잠들어 있을 역사와 사건이 <이제는>으로 인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경우도 허다했다. <이제는>이 해온 작업은 지난 시대를 일깨움과 함께 동시대인의 닫혔던 눈을 뜨게 하고 막혔던 귀를 뚫는, 역사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이제는>이 말한 것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그런 <이제는>이 100회로 2005년 방송분을 마무리했다. 내년에 다시 시청자들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매년 십수 회의 방송분을 끝낼 때마다 다음을 기약하지 못하는 ‘불확실’한 방송이었지만 아마도 이번 만큼은 거의 확실한 마지막 ‘마무리’를 지은 듯 하다.

때로는 낮은 시청률을 이유로, 때로는 ‘좌파적’인 방송이라는 수구세력의 공격 때문에, 또 때로는 <이제는>의 무게를 스스로 버겁게 여긴 방송사 내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지난 7년 동안 <이제는>의 작업은 위태롭게 이어져왔지만, 이번의 마무리는 예년과 다르다. <이제는> 제작진 스스로가 “내년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변화시킬 계획”이라고 밝힐 만큼 <이제는>의 역할이 어느 정도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는 판단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제작진들은 좀더 구체적으로 “<이제는>의 7년 성과와 노하우를 어떻게 계승, 발전시킬지”에 대한 고민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렇다. 어떤 식으로든 <이제는>의 역할은 적어도 향후 몇 년 동안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직 <이제는>이 해온 역할이 완전히 사라질 정도의 ‘시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는>으로 인해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 ‘금기’와 ‘성역’으로 여겨져 왔던 것들이 거의 허물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99번에 걸쳐 <이제는>은 많은 ‘말’을 했다. 이 때문에 <이제는>의 7년 역사는 한국의 방송에 있어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작업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말해야 할 ‘숨겨진 이야기’는 없을지 몰라도 ‘계속’ 말해야 할 이야기는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제는>이 말한 대부분의 사안들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보도연맹’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여전한 우리 시대의 과제다. ‘진보당’, ‘민족일보’, ‘인혁당’ … 지난 시절 ‘레드콤플렉스’로 발생한 사건들의 진상은 아직 명명백백 드러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21세기를 넘어 온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의 지배를 받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갗라는 이름으로 인간성을 파괴하고 인권을 짓밟았던 사람들이 여전히 떵떵거리며 아무런 반성없이 그 피해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게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이제는>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던 미국의 실체는 아직도 ‘한미동맹’을 절대가치로 여기는 친미사대주의자들로 인해 ‘외눈보기’를 강요당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제는>이 마지막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한반도 평화’ 문제는 여전히 한반도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생존이 달린 절박한 과제다.

우리 역사에 대한 치열한 성찰 계속되길

100회 방송에서 김환균 CP는 그 동안 <이제는>이 해온 일을 “말을 듣고, 말을 기록하는 작업”이라면서도 “그 말은 단순히 과거의 일을 증언한다는 의미를 넘어 원한을 풀고 역사의 굽은 곳을 바르게 펴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지난 시대의 원한은 아직 다 풀리지 않았고 역사의 굽은 곳은 온전하게 펴지지 못했다. 어떤 프로그램이 됐든 “우리 역사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기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약속이 ‘끝장’ 볼 때까지 지켜지길 기대한다.

(이 글은 2005년 6월 29일자 미디어오늘 '보도와 보도사이' 코너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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