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PD수첩 수사팀이 꺼낸 히든 카드, 애걔걔

다큐후비기

by hangil 2009. 5. 8. 18:47

본문

'PD수첩' 제작진을 기어이 처벌하겠다는 검찰이 마침내 회심의 '히든카드'를 꺼내들었나보다.
정운천, 민동석 전 농림부 관료들이 'PD수첩' 광우병 관련 방송을 두고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것과 관련해 결혼을 나흘 앞둔 여성 PD까지 체포하는 등 제작진을 싸그리 잡아가고, 작가들의 이메일까지 샅샅이 뒤져봤던 검찰이, 수사 막바지에 이른 지금 마침내 꺼내든 카드는 '매국노' 관련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5월 8일 동아일보 기사


웬, '매국노'?


'PD수첩' 관련 검찰 수사 내용을 거의 독점적으로 '특종보도'하고 있는 동아일보의 오늘자 기사 <검 "명예훼손 여지 크다" 결론>은 "수사팀은 PD수첩이 정 전 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했는지에 대해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정부 당국자들이 광우병 위험성이 높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위해 무리한 협상을 했다며 이를 한일강제합방 당시의 매국노에까지 비유한 것은 언론의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의 부제를 "PD수첩, 쇠고기협상 공직자를 '매국노' 비유"라고 달았다.

그런데, 'PD수첩'과 관련한 그 동안의 상황 전개를 나름대로 꾸준히 지켜봤다고 자부하는 나로선 쇠고기 협상단을 매국노에 비유한 것을 두고 '명예훼손으로 걸 수 있다'는 검찰쪽 판단이 대단히 생뚱맞고, 약간 어안이 벙벙하다가 급기야 폭소까지 터질 지경이다. "웬, 매국노?".
왜냐, 이 부분은 그 동안 내가 알기로 문제가 되지 않았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PD수첩 방송 직후 언론중재위를 통해 농림부가 '정정 및 반론보도'를 요청했을 때부터, 농림부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폄하하여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고 협상대표단을 비롯한 전 농림수산식품부의 명예를 훼손한 바 있다는 이유"를 내세우긴 했지만 '매국노' 발언을 문제 삼거나 그에 대한 직접적인 정정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농림부 측 주장을 압축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는 협상을 열심히 했는데, 왜 부실협상이라고 비판하냐? 이거 명예훼손이다' 정도다.

지난해 6월 20일 농림부가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최초 수사를 의뢰햇을 때도 "방송 전반을 통해 농식품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충분한 사전검토와 실태파악도 거치지 않은 것처럼 보도하여, 그 동안 미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식품의 안전성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기울인 노력을 폄하하고 신뢰에도 치명적 손상을 가하는 한편, 장관과 협상대표들의 명예를 직접적으로 침해하였다"며 '아레사 빈슨의 사인', '다우너 소와 광우병 소의 연관 부분' 등과 함께 "농식품부가 미국의 실정을 잘 모르거나 알면서도 숨기고 수입위생조건 개정에 합의하였다고 보도한 부분"을 문제삼았을 뿐이었다.

이를 좀 더 쉽게 풀면, 'PD수첩이 농림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협상한 것처럼 보도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인데, 이를 검찰이 꺼내든 카드와 연결해서 보자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PD수첩이 농림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협상함으로써 국익을 훼손한 매국노처럼 보도해 명예를 훼손했다'.

바로 여기서, 내가 검찰이 꺼낸 '회심의 카드'를 코미디로 여기는 이유가 나온다.


'정부 협상 문제 삼은 내용은 명예훼손 아닌, 의견표명이자 평가'


지난해 농림부가 언론중재위에 제기한 정정 및 반론보도 요청에 대해 언론중재위는 일부 농림부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MBC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법원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지난해 7월 31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김성곤 판사)는, 1) '다우너 소의 원인'에 대해 "위 동영상 속 주저앉은 소가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을 것과, 2) 한국인에게 많이 나타나는 MM유전자와 관련해 "특정유전자형만으로 인간광우병의 발병 확률을 단정할 수 없고 따라서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섭최할 경우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약 94%에 이른다고 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을 것, 3) 광우병위험물질, 즉 SRM 부위를 PD수첩이 30개월 미만 쇠고기의 경우 7가지로 보도한 것에 대해 '농림부는 30개월 미만인 소에 있어서는 2가지 부위만이 특정위험물질에 해당하는 반론을 제기하므로 이를 시청자에게 알릴 것'을 판결한다.

당시 농림부는 'PD수첩이 한미 쇠고기 협상에 의하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허위보도를 하여 명예가 훼손됐다', '농림부가 협상을 앞두고 미국 도축시스템을 점검했음에도 PD수첩이 우리 정부 협상팀이 미국 도축시스템을 제대로 알았는지, 알려고 했는지 의문이라고 보도하여 명예가 훼손됐다'는 내용도 함께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남부지법은 농림부가 문제삼은 이 내용에 대해 "농림부의 협상준비나 능력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보도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는 등 모두 "의견표명 또는 평가에 해당한다"며 농림부의 주장이 이유 없다고 기각했다. 즉 몇 가지 사실관계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정이나 반론을 결정한 데 비해 협상 내용을 두고 PD수첩이 정부 협상단을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이 아니라 의견표명이나 평가로 정당하다는 판결이었다.


과연 '매국노' 발언은 무엇이었길래?

그렇다면 이제서야 검찰이 꺼내든 '매국노' 발언은?

내 판단에 앞서 과연 PD수첩은 뭐라 그랬는지 정확하게 살펴보자.

"오늘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명단 발표가 있었죠. 대통령은 공과를 같이 따져야한다고 말했고, 일부에서는 반발하기도 했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는데, 과거 친일매국노들처럼 오늘 혹 우리 자신은 특히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역사에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지 않은지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PD수첩은 여기까지 입니다."


당시 PD수첩 진행자였던 송일준 PD가 광우병 관련 방송 마지막에 클로징멘트로 했던 말이다. 어떤가? 이것이 "언론의 통상적인 정부정책 비판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되는가?

당시 PD수첩 진행자였던 송일준 PD


내가 보기에는 당근 이 또한 정당한 의견표명이자 평가다. 아무 문제 없다. 사회고발을 하는 언론이 이 정도의 논평도 못한단 말인가. 이 정도가 "언론의 통상적인 정부정책 비판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면 조중동 사설과 칼럼에 실리는 그 엄청난 수준의 저질스런 모욕과 낙인찍기, 욕설과 다름없는 비방은 도대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검찰은 과녁을 잘못잡아도 단단히 잘못잡았다. 1년 동안 수사하고 고작 이 정도로 '명예훼손'을 걸려고 한다니, 참나 콧방귀도 안나올 지경이다.

한편으론 검찰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 엄청난 난리를 치면서 뭔가 결론은 내놓아야할텐데, 그래서 이메일이고 집이고 샅샅이 뒤졌는데, 나오는 게 없으니 겨우 이 정도라도 꺼내들어야 할 게 아닌가. 검찰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지만, PD수첩을 두고 '정부에 대한 비판이라 명예훼손으로 보기 힘들다'고 한 임수빈 전 수사팀장이 역시 현명했다.

1년여 전, 송일준 PD가 했던 말은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유효한 듯 하다.

검찰은 역사에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지 않은지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