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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민련 때려잡은 안보신권, 코미디가 아니었네

뉴스후비기

by hangil 2009. 6. 2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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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미디어후비기에서 다뤘고, 인터넷과 언론들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안보신권'.
(관련글 : 기절초풍할 국정원의 안보신권 이벤트)
국정원의 발상과 센스가 개그맨들 밥줄을 끊어놓을 정도의 코미디인줄 알았더니, 결코 코미디가 아니었다.

안보신권은 인터넷 상의 단순한 이벤트에만 적용되는 '무술비법전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실제로 누군가를 간첩·좌익사범이라며 때려잡는 무시무시한 초절정 무술이었다.

김용의 소설 '사조영웅전'에 등장하는 곽정의 항룡십팔장보다 무섭고, 양과가 수련한 구음진경보다 치명적이며, 장무기의 구양신공보다도 위력적이다.

검찰이 범민련(조국통일 범민족연합) 간부 3명을 구속기소하며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애초 이들을 구속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은 국정원이었다. 지난 5월 7일 국정원은 경찰 병력을 동원하여 전국 각지의 범민련 사무실과 범민련 관계자들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이번에 구속된 사람들을 체포해갔다.

이토록 범민련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국정원의 비기는 다름 아닌 안보신권이다. 안보신권의 또 다른 이름은 국가보안법.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악명에 걸맞게 신묘한 비법을 자랑하는 국가보안법에 근거한 안보신권다웠다.

알고보니 안보신권 1단계 '열공신법'에 등장하는 '간첩 및 좌익사범' 식별요령은 그저 네티즌들을 웃겨주고 괜히 국정원 시계를 나눠주려고 만든 게 아니라 범민련 따위는 한 순간에 때려잡을 수 있는 만능 권법이었다. 안보신권에 등장하는  "반미·반정부 집회에서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폭력시위를 조장하는 사람", "남북경협·이산가족 상봉 등을 구실로 통일운동을 하자는 사람", "인터넷을 이용하여 불순내용을 게재, 전파하는 사람" 등의 범주에 범민련을 때려넣는 일은 안보신권의 초절정 고수인 국정원 직원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다만, 이들이 지난 10여년 동안 주화입마에 빠져 안보신권 수련에만 신경을 쓰느라 범민련이 안보신권에 의해 개박살나지 않은 것뿐이었다.

이번에 범민련 간부들을 때려잡은 안보신권의 비기는 '국가보안법상의 잠입·탈출과 회합' 등이다. 간첩·좌익사범들을 색출할 때 가장 흔하게 쓰이는 무술이면서도 한 번 기술을 걸게 되면 한 사람의 인생을 일순간에 파탄내는 무서운 기술이다. 평생을 통일운동에 몸 바쳐 온 이규재 범민련 의장도 결국 이 기술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범민련을 때려 잡는 것을 보며 안보신권의 고수인 국정원 직원들과 검찰에게 정말 궁금한 게 있다.
이들에게 건 기술이 '국가보안법상의 잠입·탈출과 찬양·고무'라면 또 다른 안보신권의 비기가 당연히 함께 펼쳐졌어야 했다.

국정원과 검찰이 범민련 간부들에게 이 기술을 건 이유는 이들이 금강산 등 북한에 갔기 때문인데, 그게 '잠입·탈출'이고, 북한 지역에서 북한 사람(검찰에 따르면 공작원)을 만난 게 '회합'이라면 나름대로 안보신권을 조금이나마 알아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국가보안법 상의 '편의제공'이나 '특수직무유기'는 왜 이번에 사용되지 않았는지 정말 궁금하다.

6월 25일 조선일보 기사

범민련 관계자들이 금강산 등을 방문한 것은 조선일보가 오늘 기사에서 "범민련 방북 3차례 승인/통일부가 이적 활동 방조"라는 제목으로 지적했듯 통일부의 허락을 받고 간 것이다. 또 통일부는 그냥 허락만 한 게 아니라 그런 자리라면 통일부 관계자 또한 함께 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남북 교류 사업은 그것이 민간 차원의 교류라 할지라도 국정원 관계자 또한 동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범민련 관계자들에게 '잠입·탈출'과 '회합' 등의 기술을 걸게되면, 범민련 관계자들이 북한을 방문하도록 편의를 제공한 통일부 관계자들에게도 안보신권을 적용해야 마땅하다.

국가보안법 제9조 '편의제공' 조항의 2항에는 "잠복·회합·통신·연락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편의를 제공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국가보안법 제11조 '특수직무유기' 항목에는 "범죄수사 또는 정보의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이 법의 죄를 범한 자라는 정을 알면서 그 직무를 유기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만약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범민련 관계자들의 방북 현장에 국정원 관계자가 동행했다면 그는 국가보안법 상의 '특수직무유기' 죄에 해당된다.

안보신권 전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나도 모르게 안보신권을 익히고 말았다. 기어이 정부의 허락을 얻고 공개적이고 합법적으로 방북 등을 한 범민련 관계자들을 처벌하겠다면, 국정원이 전수한 안보신권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라도 요구한다. 범민련의 방북을 허락한 통일부 관계자와 범민련 방북을 동행한 국정원 관계자 역시 간첩·좌익사범으로서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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