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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전성시대' 혹은 '유행어 전성시대'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7. 6. 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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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전성시대' 혹은 '유행어 전성시대'

특정 세대에 편중된 개그프로, 다양성 절실


  바야흐로 ‘개그 전성시대’라고 이야기한다. KBS <개그콘서트>, MBC <개그야>, SBS <웃찾사> 등 각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들은 저마다 개그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다.
  
  웃겨죠~ 어서~
  
  요즘 사회생활 하면서 주변 사람과 말 좀 섞으려면 이들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 한두 가지는 필수적으로 알아둬야 한다.
  
  “이건 아니잖아~”(SBS <웃찾사> ‘이건 아니잖아’), “뉴스가 뉴스다워야 뉴스지”(〃 ‘형님뉴스’), “난 세 살 때부터 웃음(신용)을 잃었어”(〃 ‘띠리띠리’), “그래서 내가 왔잖아”(〃 ‘퀸카 만들기 대작전’), “김 기사~ 운전해~ 어서”(MBC <개그야> ‘사모님’), “뻥치지마, 그런 게 어딨어”(〃 ‘아홉살 인생’), “주연아~”(〃 ‘주연아’), “그럼 노세요”(〃 ‘명품남녀’), “내가 누군지 알어, 골목대장 마빡이여”(KBS <개그콘서트> ‘골목대장 마빡이’), “김창식 씨, 하보람 양”(〃 ‘호구와 울봉이’), “오빠~오빠~오빠~”(〃 ‘오빠’), “오빠, 기분좋아졌어~”(〃 ‘연인’)…….
  
  이들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시청자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행어만 대충 정리해도 열 손가락이 훌쩍 넘어갈 것이다.
  
  
△KBS의 간판 개그 프로그램 <개그콘서트> ⓒKBS

  
  유행어뿐만 아니라, 각 코너에서 개그맨과 개그우먼들이 펼치는 특이한 동작과 언행도 금방 화젯거리가 되어 어느 새 주변의 누군가가 그 동작과 말투를 따라하는 걸 볼 수 있다. 요즘 화제가 되는 <개그콘서트> ‘골목대장 마빡이’가 그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이 정도로 화제가 개그 프로그램이지만 생각보다 시청률이 많이 나오는 건 아니다. 가장 높은 시청률은 기록하는 <개그콘서트>만 하더라도 보도 20% 정도여서 비슷한 시간대 KBS1TV와 SBS에 편성된 드라마 두 편(<대조영>, <연개소문>)보다 낮다. <개그야>와 <웃찾사>는 13~15%를 왔다갔다한다.
  
  이는 좀 잘 나간다는 드라마에 비하면 절반 내지 1/3 정도에 불과한 시청률이다. 어떤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된다고 할 때는 대개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게 아니라면 특종을 한다든지,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내용을 방송할 때나 화제가 된다.
  
  
△SBS의 개그 프로그램 <웃찾사>. 일요일로 편성을 옮겨 시청률 경쟁의 선봉을 맡고 있다. ⓒSBS

  
  하지만 개그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이 그다지 높지 않고, 그 내용이 무슨 특종이거나 사회적으로 의미있다고 보기에는 더더욱 힘들다. 그럼에도 화제가 되는 이유는 뭘까?
  
  젊은 세대의, 젊은 세대에 의한
  
  바로 한 시대의 트렌드를 선도해나가는 10대와 20대가 개그 프로그램의 절대 지지층이기 때문이다. 높지 않은 시청률이지만 그 시청층을 이들이 주로 차지하고 있다. 중장년층이 뉴스를 보고, 드라마를 볼 때 이들은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
  
  또 한 편으로 이들 세대는 굳이 TV를 통해 개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다시보기를 한다든지, P2P 사이트를 통해 개그 프로그램 동영상 파일을 구해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나아가 최근에는 각 포털사이트마다 동영상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개그 프로그램의 재미있는 부분들만 편집된 영상도 얼마든지 골라볼 수 있다.
  
  이들은 단순한 시청자 혹은 수용자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재미있는 부분만 편집해서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 내는 행위 자체가 이미 콘텐츠를 제작하는 단계로 볼 수 있으며 더 적극적인 경우 이들 영상을 기반으로 새로운 패러디물을 만들어낸다든지, 아니면 개그 프로그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아예 새로운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UCC(User Created Contents)가 시대적 대세가 되면서 이러한 추세는 더욱 확대되고 있는데, 최근 다음은 마빡이를 흉내내는 여학생들이 어느 동작이 가장 어려운 지 확인하는 영상으로 다음UCC 사이트(ucc.daum.net) TV CF를 만들기까지 했다.
  
  
△MBC의 개그프로그램 <개그야>. MBC에서 간만에 활력을 찾은 개그 프로그램이다. ⓒMBC

  
  뿐만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는 개그 프로그램과 개그맨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루는 연예뉴스들이 범람하고, 뉴스 댓글란에는 한결같이 10대, 20대들의 의견이 줄줄이 달리는 한편, 이들 프로그램의 인터넷 게시판 역시 프로그램 시청소감을 올리는 글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주려는 목적을 가진 개그 프로그램이 이같이 번성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우리 사회에 그만큼 ‘웃음’이 많아진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하지만 ‘개그 전성시대’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주시청층이 젊은 세대여서 그런지 이들 개그 프로그램은 날이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다. 현역에서 활동하는 최고참 코미디언이라 할 수 있는 최양락 씨는 얼마 전 ‘월간 말’과의 인터뷰에서 “공개방송 형식은 내 코너에서 웃음이 더 크게 터져야 되는 게 당연시된다. 그러다보면 자극적이고 원색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코미디를 음미할 수 있고 뭔가 여운이 남고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는 건 꿈도 못 꾼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청자들이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는 ‘웃음’ 그 자체일 수도 있지만, 바쁜 일상을 잠시 잊고 기분 좋고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시청자들은 개그 프로그램을 통해 속 시원한 풍자를 기대하기도 한다.
  
  개그 프로그램 다양해져야
  
  하지만 요즘 개그 프로그램의 경우 1시간 동안 프로그램 보는 내내 정신없이 웃다가, 또 시시각각 쏟아지는 유행어를 쫓아가다보면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 ‘도대체 내가 왜 그렇게 웃어댔지?’라며 까닭모를 허무감까지 가지게 된다. 최양락 씨의 말대로 뭔가 음미한다거나 여운이 남기란 기대하기 힘들다.
  
  또 한편으로 이들 프로그램 주 시청층이 아무리 젊은 세대라 하더라도 거의 모든 코너가 이들 세대의 감수성과 취향에 맞춰져 있다 보니 조금 나이 든 세대들은 어쩌다 한 번씩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 ‘저 방청객들은 뭐가 그리 재밌어서 저리 웃을까?’라며 세대차이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채널을 이들 프로그램으로 맞추기 어려워하게 된다. 어찌보면 이들 프로그램이 특정 세대 외의 시청자들은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개그콘서트> '골목대장 마빡이' ⓒKBS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춘 개그 프로그램이 한두 편 방송되는 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방송3사의 주력 개그 프로그램들이 모두 공개방송의 형식을 띠고 개그의 양식조차도 구별이 힘들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은 그만큼 시청자들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비단 시청자들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다.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개그맨과 개그우먼들도 피 말리는 경쟁 관계(타사 프로그램과는 물론 같은 프로그램의 다른 연기자들과의 경쟁 관계) 속에서 어쩌든지 웃음만 이끌어내면 된다는 식으로 아이디어 ‘짜’ 내고, 밤 새워 연습하는 지금의 구조가 계속되는 한 탁월한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기력이 소진되고 결국 수명도 짧아지게 될 것이다.
  
  벌써 최근의 개그 프로그램을 두고 ‘유행어 남고 개그맨과 개그우먼은 없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유행어가 범람해 누구나 따라하는 데 정작 그 유행어가 어떤 이야기 속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심지어 그 유행어를 하는 연기자의 이름이 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나마 KBS에는 그 동안 신인들의 등용무대라 할 수 있는 <개그사냥>이 방송되어왔고, 11월 25일에는 지난 3월 폐지됐던 KBS <폭소클럽>이 1TV로 부활함으로써 개그 프로그램의 다양성에 조금의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TV는 아니지만 SBS가 라디오에서 일반인들 중에 개그에 끼가 있는 사람을 발굴해내는 <라디오 웃찾사>를 지난 6일부터 편성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 글은 2006년 11월 17일에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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