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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 이후의 KBS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9. 9. 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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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병순 이후의 KBS를 준비할 때다.
KBS의 낙하산 사장 이병순은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했다.
신태섭 KBS 이사에 대한 법원의 연이은 판결이 'KBS사장 이병순'의 존재에 치명타를 가했고, 정연주 사장에 대한 법원판결이 이병순의 임명 자체가 부당하다는 결정타를 날렸다면, 최근 KBS 이사회의 KBS 부사장 임명동의안 부결은 더 이상 KBS에 '사장 이병순'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확인 사살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정연주 사장 축출 대작전에 힘입어 어부지리로 보궐사장에 앉아 1년을 온전히 채운 것만으로도 이병순은 'KBS 장악'의 첨병 노릇을 제대로 한 것이다. 그 1년 동안 KBS는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었다. 정연주 사장 5년여 동안 신뢰도 1위를 굳건히 지켜냈던 KBS는 이병순 1년 만에 신뢰도 1위 자리를 MBC에 내줘야 했다. 다 이병순의 공이다.

이병순으로서야 그간의 공을 인정받아 이참에 3년 임기의 KBS 사장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겠지만, 그리고 어쩌면 정권에서도 그렇게 배려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부지리 보궐사장'으로서는 욕심이 과했다.

'어부지리 보궐사장'이 욕심내기에는 국가기간 공영방송 KBS 사장 자리를 욕심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병순이 비록 보궐사장으로는 100% 임무를 완수했는지 모르겠지만, KBS 사장 자리를 탐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출신성분이 너무 미약하다. KBS 사장 자리를 탐내며 줄을 선 사람들 중에는 이명박 정권의 탄생에 한몫한 이른바 '개국공신'들이 즐비하지만, 이병순은 KBS 사장이 되기 전엔 '듣보' 인물이였다. 정권 창출의 논공행상과는 애초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임기 80여일을 남기고 1년 동안 함께 일했던 부사장들의 사표를 받고, 정권과의 아무런 교감없이 '지엄하신(!)' KBS 이사들에게 당일에야 차기 부사장 명단을 제출해 임명동의를 받으려 했으니, 이 정도면 꽤심죄도 그냥 꽤심죄가 아닐 터. 이 정도의 갑작스런 인사라면 누가 봐도 연임을 목적으로 KBS 조직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인데, 수가 너무 훤하게 읽혔다. 아무리 이병순으로서는 11명 중 8명의 KBS 이사를 자기편으로 판단하고, MB정권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고 계산했다 하더라도, 떡 줄 놈은 생각도 안하고 김칫국물부터 심하게 마셨다.


이병순이 KBS 사장을 한 번 더 하고 싶었다면, 한나라당이 추천한 KBS 이사들을 '한 분 한 분' 공들여 만나 단물도 제공하고 애걸복걸도 하고, 정권에도 좀더 체계적으로 구애작전을 펼쳐야했겠지만, '독일병정'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마음이 급했나 보다. 그참에 남은 80일 동안이나마 보장됐던 KBS 사장 놀이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이병순 KBS 사장'은 사실상 이름만 남은 식물 상태에 빠진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야 그런 선택을 할 기회가 영원히 없겠지만, 정말 나같으면 지금이라도 깨끗이 KBS 사장 자리를 던지겠다. 정권으로부터 축출 압박에 시달렸던 정연주 사장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것은 물론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을 지키는 명분이 있었다면, 자신을 KBS 사장에 앉혀준 정권으로부터 불신임 당한 이병순은 물러나는 게 그나마 명예를 지키는 일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그 자리에 있어봤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겠는가.

문제는 이제 이병순 이후의 KBS다.
지난해 KBS 내부의 극심의 저항과 KBS 후임 사장 인선을 위한 대책회의 등이 폭로되면서 주저앉았던 인물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후문들이 들려오고 있다. 이병순에 대한 불신임을 계기로 움직임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가운데 누군가가 차기 KBS 사장 자리에 앉을 것이다. 또 다른 낙하산인 셈이다. 막을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핵심 타겟을 정해놓고 그 사람을 막더라도 '제2의 이병순'을 내세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공영방송 KBS 사장을 뽑는데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최대한 투명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자격있는 사람을 KBS 사장으로 뽑도록 줄기차게 요구해야 한다. 줄때 주더라도 손쉽게 KBS 사장 자리를 내주면 안된다. 그래야 싸움을 지속시킬 수 있다.

아울러 이제 더욱 본격적으로 '관변방송 KBS'와의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동안 언론의 공공성, 방송의 독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언론악법 투쟁에 집중하느라 KBS가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꼴을 사실상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차기 사장을 맞아 더욱 안정적으로 '2기 관변방송'으로 고착화될 KBS를 상대로 KBS의 주인인 국민과 시청자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조직해서 싸워야 한다.

'땡전뉴스'가 무색해지는 KBS 보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하고, 정치시사 영역에 있어 탐사와 고발 기능이 사라진 KBS 프로그램에 대핸 문제 제기해야 한다. 더 이상 '누들로드'와 '차마고도'를 제작할 수 없는 KBS를 질타해야 하고, 또 다른 '불멸의 이순신'을 볼 수 없는 KBS를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끝내 KBS가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고,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다면 히든카드로 아껴왔던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과 시청거부운동을 본격적으로, 그리고 대대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이병순 이후의 KBS를 이병순 때의 KBS로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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