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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인가 이야기꾼인가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9. 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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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에 '주성하'라는 이름의 기자가 있다.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의 '탈북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를 통해 '다음뷰'를 비롯한 블로고스피어에서도 제법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평소 그가 쓰는 '글'을 보면 블로그에 게재하는 것은 물론 신문에 쓰는 '기사'까지, 과연 기사가 맞는지, 그를 기자라고 볼 수 있는지, 르뽀 작가인지, 소설가인지, 수필가인지 애매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어쨌든 그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엘리트 출신의 탈북자'라는 간판 덕인지 몰라도 동아일보에서 기자질을 하고 있고,  그가 블로그에 쓰는 글도 거의 대부분 다음뷰에서 베스트에 오르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어쨌든 '미디어후비기'에서도 몇달전 그가 쓴 '기사'에 대해 한 번 다룬 적(탈북한 동아일보 기자, 옛동지를 고발하나?)이 있는데, 오늘 동아일보에 게재된 그가 쓴 기사를 보고 또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2009년 9월 8일 동아일보 2면 기사

오늘 동아일보 2면에는 <김정일, 뇌중풍 후유증 벗어나고 있다는데…/암페타민(각성제) 복용 효과?>라는 기사인지, 소설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글이 게재됐다. 주성하와 함께 한 명의 기자가 같이 작성한 걸로 나오는 데, 이 글은 '중국의 한 대북 소식통'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장군표 맥주'를 사용해 뇌중풍 마비 후유증에서 벗어났다는 말이 북한과 중국 국경 일대에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며 뇌중풍으로 쓰러진 적이 있다고 '소문'이 난 김정일 위원장이 마약 덕에 뇌중풍 후유증을 극복한 게 아니냐는 '소문'을 전했다. '장군표 맥주'는 '히로뽕'을 지칭하는 중국의 은어라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소문의 근거는 딱 하나 밖에 없다. 북한에서는 히로뽕이 뇌중풍 특효약으로 알려져 있는데, 히로뽕을 사용한 사람들에게서 식욕은 감퇴하지만 활동량은 매우 증가하고 살과 머리카락이 급속히 빠지는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김 위원장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히로뽕 사용자와 김 위원장의 비슷한 정상은 다음과 같다.

- 김 위원장 4월까지만 해도 다리를 절룩거리고 입 오른쪽 꼬리가 올라가는 등 마비 후유증이 있었지만 히로뽕이 혈전을 용해한 덕에 지금은 마비가 풀렸다.
- 3월에 김일성대 수영장에 나타난 김 위원장의 몸이 심하게 야위고 머리숱이 많이 줄었다.
- 아프다면서도 올해 현지지도 활동이 작년보다 몇 배나 활발해졌다.

동아일보는 이에 대해 "살이 급격히 빠지고 탈모가 오며 활동이 크게 증가하는 것이 히로뽕 복용자에게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세와 일치한다는 것이다"고 했다. 이게 바로 김 위원장이 마약 덕에 뇌중풍 후유증에서 벗어났다는 '소문'의 근거다.

그런데, 다음부터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기가 차다 못해 김이 팍 세기까지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히로뽕을 복용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마약인 메스암페타민 대신 전문의약품으로 한때 뇌중풍에도 사용됐던 암페타민을 복용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 효능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편"이라고 한다. "수년간의 연구로 암페타민의 효과는 ‘별로 없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뇌경색 치료에 쓰지 않는다"는 서울대병원 신경과장의 코멘트까지 인용했다.

결국 김 위원장이 마약인 메스암페타민은 물론 '전문의약품'인 암페타민조차 사용했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결론을 맺으면서도, 동아일보는 기사의 대부분에 걸쳐 김 위원장과 마약의 연관성을 단지 '소문', 그것도 얼마나 신빙성 있게 퍼져 있는 소문인지도 모르는 어느 누군가의 '전언'을 토대로 부각시킨 것이다. 특히 기사에는 '전문의약품'이라고 설명되어 있는 '암페타민'을 제목에서는 '각성제'로 표시해 소문을 더욱 자극적으로 부풀렸다.

추측컨대 김 위원장의 증상을 들어 소문을 전한 부분은 주성하가 썼고, 의학계 전문가를 통해 그 내용을 사실상 부정하는 부분은 노지현 기자가 썼을 것으로 보인다. 노지현 기자는 의학, 보건 분야를 다루는 기자다.

이게 바로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왔다는 엘리트 탈북자 주성하가 동아일보에 쓰는 '기사'의 실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동아일보 쓰는 기사는 물론, 비록 북한 생활을 경험했다고는 하나 그가 블로그에 쓰는 글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불신할 수밖에 없으며, 아무리 인터넷 공간에 반북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우익 성향의 네티즌이 많다고 해도 그가 쓴 글 대부분이 뷰온 1000건이 넘어가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성하가 이런 류의 '기사'를 쓴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2006년 10월 2일 동아일보 2면

지난 2006년 10월 2일 동아일보 2면에는 <"김정일 '총알받이 대역' 2명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이 기사 역시 익명의 누군가가 전해준 말을 빌어 "김 위원장이 나이와 키, 외모가 비슷한 사람들을 선발해 자신의 스타일대로 훈련시켜 공개장소에 내보낸다"고 전했다. 기사를 살펴 보면 근거라고 제시되는 누군가의 전언은 고작해야 '김 위원장을 닮은 영화배우가 있었다' 정도였다.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몇몇의 전언만으로 동아일보는 제목을 뽑고, '김, 주요행사만 직접 참석/군부대나 농장 방문할 땐 테러등 우려 닮은꼴 보내'라고 단정지어 중간제목을 붙이기까지 했다. 주성하가 쓴 '기사'다.

이에 앞서 2006년 9월 30일 동아일보에는 <히로뽕에 찌든 북한>이라는 '기사'가 게재됐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 데일리NK 등이 탈북자와 대북인권단체 등을 인용해 이미 보도된 내용을 짜집기해 '북한이 마약에 찌들어 있다'고 단정지었다. 이 기사에는 "마약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고급 기호품이나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된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라며 "'각종 병에 특효가 있고, 적당히 사용하면 장수한다' 등 마약이 좋다는 소리만 퍼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마치 자기가 직접 보고 취재한 것처럼 쓴 내용이 등장하는데, 이번 김정일 위원장 관련 보도와도 매우 유사한 내용으로 역시 주성하가 쓴 기사다. 하지만 이 내용은 2006년 당시 동아일보 보도에 앞서 연합이 "한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마약을 적당히 복용할 경우에 장수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당과 군 간부들 사이에서도 마약을 복용하는 현상이 적지 않다고 한다"고 보도한 내용과 거의 유사했다.

즉 주성하는 6하원칙에 입각한 '기사'를 쓰는 기자라기보다는 '소문'을 전하는 '이야기꾼'에 가까운 것이다. 지면에 게재되는 기사가 이럴진대 블로그에 쓰는 '글'은 사실관계를 따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이것도 주성하가 남한 사회에서 살아 가는 중요한 방법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탈북자'를 브랜드로 내세워 그가 20여년 겪은 경험을 울궈 먹으면 남은 평생을 살아가는 길이 동아일보 등으로부터 인정받으면 나름대로 부가가치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같은 탈북자라도 나름대로 전문성을 살려 학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명철 박사나, 사업으로 성공한 전철우씨 같은 사람이 훨씬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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