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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대통령의 사람'을 다시 KBS 사장으로?"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11. 2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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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사회가 신임 사장으로 임명 제청키로 의결한 김인규씨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언론 특보를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임자가 아니다. 후보 시절 언론 분야를 조언했던 인사를 대통령이 된 후 KBS 사장에 임명한다면 KBS는 대통령의 언론관을 홍보하고 시행하는 시범관이 될 우려가 있다.

엊그제 KBS 규탄 집회에서 제기된 것처럼 방송의 편향성과 불공정, 친정부적 보도 행태가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터에 ‘대통령의 사람’이 KBS 사장으로 들어오게 되면 방송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KBS 이사회는 공개 추천을 통해 15명의 사장 후보를 접수하고 무기명 비밀투표로 김씨를 뽑았다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격요건을 철저히 검증했느냐는 것이다. KBS 노조에 따르면 씨는 대선 때 후보의 특보를 지냈고, 이 후보가 당선된 뒤에는 대통령 당선인 언론보좌역을 지냈으며,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을 지내며 '청와대 불법기금 조성 사건'에 연루됐다는 지적인데, 이런 점이 이사회에서 어떻게 검토되었는지 궁금하다.

청와대측은 "전적으로 KBS 이사회가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방송가에서 1 전부터 내정설이 나돌던 인사가 선출됐다는 것은 특정인을 염두해둔 요식행위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만하다.

KBS는 한국 최대 언론기관으로 KBS의 정체성(正體性)은 미디어 차원 이상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KBS 사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막강한 힘이 국민을 위해 쓰이느냐 아니면 정권에 이용되느냐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다.

그런데 대통령의 후보 시절 언론 특보를 거침없이 밀어붙이려는 것은 현 정권 역시 방송을 전리품(戰利品)쯤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방송을 국정의 도구화하려는 의도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없지 않다. 방송의 주인은 국민인 만큼 공영방송은 국민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위 글은 2003년 3월 24일 조선일보 사설 <‘대통령의 사람’을 다시 KBS 사장으로?>에서 단어 몇 개와 문장 두어개만 바꾼 것이다.

2003년 3월 24일 조선일보 사설.(빨간색 박스 표시는 민언련 자표 참조)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그것인데, '김인규'는 '서동구'를, '이명박'은 '노무현'을, '특보'는 '고문'을 각각 바꿨다.

그리고 "이 후보가 당선된 뒤에는 대통령 당선인 언론보좌역을 지냈으며,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을 지내며 '청와대 불법기금 조성 사건'에 연루됐다는 지적"이라는 부분은, 2003년 조선일보 사설에 "노 후보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씨의 고종사촌이며, 78년 ‘언론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사건’에 연루됐다는 지적"이라는 부분을 바꾼 것이고, "청와대측은 '전적으로 KBS 이사회가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지만"이라는 부분은, "지명관 이사장은 '정권의 입김은 없었다'고 밝혔지만"이라는 원문을 고친 것이다.

그밖에 'KBS'는 'MBC'를, '15'명은 '46'명을, '1년'은 '한달'을 각각 바꾼 것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때 자신의 언론고문을 지낸 서동구씨를 KBS 사장으로 임명하자, 조선일보는 이런 사설을 써서 비판한 것은 물론, KBS 안팎과 서동구씨, 지명관 당시 KBS 이사장 등의 주변을 샅샅히 뒤져가며, 낙하산 사장 서동구씨가 9일만에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180도 달라졌다. 이렇게만 바꿔도 이번 KBS 사장 선임 과정에 대한 지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머리 짜내서 사설을 쓰기 싫으면, 'Ctrl+C', 'Ctrl+V'만으로도 얼마든지 한 편의 사설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조선일보는 정권이 바뀌고 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조차도 하지 않는다. 아니 '김인규 KBS 사장에게는 공영방송 정체성 확립이라는 과제가 있다'며 김인규씨를 인정했다.

6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방송을 전리품 쯤으로 여겨 후보 시절 언론 고문을 거침없이 밀어붙이려는 것이 비판받을 일이면,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역시 방송을 전리품 쯤으로 여겨 후보 시절 언론 특보를 거침없이 밀어붙이려는 것 또한 당연히 비판할 일이다. 어떤 잣대를 들이대든 같은 사안이지만 조선일보의 잣대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건 뭐 신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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