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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과 우정쌓는 월리엄·브루니, 한국은?

뉴스후비기

by hangil 2009. 12. 2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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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2/23)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 2위라는 월리엄 왕자(왕세손)가 런던의 블랙프라이어스 다리 근처 쓰레기통 옆에서 영하 4도의 날씨에 침낭 하나에만 의지한 채 노숙을 한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영국 왕실의 왕자가 추운 날씨의 거리에서 노숙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노숙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침엔 직접 노숙인들을 위한 식사를 차리기도 했다.

월리엄은 "빈곤과 정신질환, 마약 및 알코올 의존, 가정파괴 등이 사람들을 길가로 내몰고 있다"며 "이 문제를 내가 더 깊게 이해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을 돕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참으로 훈훈한 소식이다. 그의 삼촌인 앤드류 왕자는 과거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서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에 헬기 조종사로 직접 참전한 적이 있는데, 영국 왕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은 귀감이 될만하다.

영하의 날씨에 쓰레기통 옆에서 노숙을 한 영국의 월리엄 왕자


비슷한 시각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인 브루니가 자신의 집 주변 노숙인과 우정을 쌓아왔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브루니는 드니라는 이름의 노숙인과 음악과 책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가끔 지폐를 주기도 하고 모포 같은 것을 주기도 하는 등 친구 사이로 지냈다고 한다. 브루니는 "노숙인들을 반감으로 대하지 말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역시 훈훈한 소식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이같은 소식지자,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오늘 아침 신문들 역시 크게 다뤘다.

조선일보는 <브루니 "내 친구는 노숙자">, 동아일보는 <왕세손, 겨울밤의 노숙 체험/영부인, 노숙인과 오랜 우정>에서 노숙인과 함께 한 월리엄과 브루니의 모습을 상세히 전했고, 중앙일보는 <영하 4도 쓰레기통 옆에서…월리엄 왕자 노숙 체험>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큼지막하게 실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은 <하룻밤 노숙, 아침 지어준 왕자님/노숙자와 우정 쌓는 대통령 부인>이란 제목의 기사에 "영·프랑스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부제를 달았고, 한겨레는 <영국선 '왕자와 거지'>, <프랑스선 '귀부인과 노숙인'>이란 제목의 기사를 각각 실었다.

경향신문


연말에 딱 어울리는 훈훈한 소식이니 이를 널리 알리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들 신문의 기사를 보는 마음이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다. 특히 어제 한겨레에서 보도된 어떤 기사를 생각하니 씁쓸하기까지 하다.

12월 23일 한겨레에는 <노숙인 추모제도 막는 경찰 '촛불 노이로제'>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거리에서 숨져간 노숙인을 추모하는 촛불추모제를 연 사람들을 경찰이 잡아갔다는 소식이었다. 22일 저녁 홈리스행동, 빈곤사회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서울역 주변 노숙인 150여명이 서울역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를 열고 있었는데, 남대문경찰서 경찰들이 나타나 "지난 5월 이후 서울역에서 여는 모든 촛불집회를 불허했다"고 일방적으로 해산명령을 내린 뒤 12명을 연행한 것이다.

한겨레


'노숙인 추모제'는 올해로 9년째 열어온 행사인데, 작년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올해들어 경찰이 '미신고 집회'임을 문제 삼고 연행해갔다.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들의 추모마저도 가로막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전해진 소식과 비교하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심지어 야간 집회 금지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경찰은 그들만의 잣대로 추모제마저도 짓밟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국과 프랑스의 훈훈한 소식을 전한 조중동에서 정작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일은 전혀 접할 수 없다.

거기다 노숙인 구호단체 관계자와 개인 비서만 대동한 체 거리에서 노숙체험을 한 월리엄 왕자나 오랫동안 노숙인과의 쌓아온 우정을 알리지 않은 브루니와 비교해 가끔 시끌벅적 요란스레 시장 등을 방문해 노점 오뎅 사먹고, 목도리를 건네주며 '친서민' 생색을 내는 한국의 어떤분을 떠올려보면 기분은 더욱 씁쓸해진다.


 (경찰 난입 장면은 5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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