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창사이래 최대 규모 조직개편"이라며 이른바 'KBS 혁신안'이라는 것을 내놨다. 현재 KBS 조직을 5본부 3센터로 바꾸고, 2014년까지 현재 정원 5,500명을 약 4,400명으로 줄여 1,100여명을 감축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현재의 편성본부를 사장 직속의 '편성센터'로 바꾸겠다는 것, PD/기자 협업을 한다며 시사프로그램 제작기능을 보도본부로 통합시킨 것 등이 대표적이다. 전자는 방송사의 핵심 기능 중 하나인 '편성권'의 독립을 뒤흔든다는데서 문제가 있고, 후자는 <추적60분> 등 시사고발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PD들을 보도본부에 통합시켜 비판기능을 없애거나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데서 문제가 있다.
그리고 1100명의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것은 KBS의 오랜 숙원인 수신료 인상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이는데, KBS 스스로도 "KBS가 수신료 현실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앞서" 이번 조직 개편을 수립했다고 밝히고 있다.
편성권이 흔들리는 문제나, PD/기자 협업이 가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오늘자 한겨레 사설과 KBS PD들이 내놓은 입장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여기서는 KBS가 대대적인 인력감축을 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한가지를 짚어보려 한다.
6월 8일자 한겨레 사설
KBS를 죽이는 조직개편에
반대한다
조직개편이 마무리 단계로
들어서면서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편성본부와 라디오본부가 폐지되고, TV제작본부의 시사프로그램은 보도본부로 옮겨간다고 한다. 한 마디로
참담한 결과다.
공영방송의 조직개편이라면
마땅히 그 목표는 “공영성 강화”와 “경쟁력 향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직개편은 이러한 기본적인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오로지 추악한 이기심과 지독한 편견들을 노회한 정략과 황당한 아마추어리즘으로 봉합했을 뿐이다. 실로 KBS를 ‘한방에
훅 가도록’ 만들 수 있는 끔찍한 방안일 뿐이다.
현행 방송법의 취지를 완전히
무시한 편성본부 삭제
현행 방송법은 제4조에서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방송사업자는 방송편성책임자를 선임하고 그의 성명을 방송시간 내에 매일 1회 공표하여야하며
자율적인 방송편성을 보장하여야 한다. 방송법이 이러한 조항을 명시한 것은 방송민주화 과정에서 정권의 방송통제를 견제할 최소의 장치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편성 책임자의 실명을 공표해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책임을 부여해 정권과 정권이 임명한 사장 등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방송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이 때문에 KBS를 비롯한
모든 지상파 방송사들이 편성책임자를 본부장급으로 하고, KBS의 경우는 사장 부사장 유고시 그 업무를 대행하는 1순위인 선임 본부장의 지위를
편성본부장에게 부여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직개편에서는 KBS의 존립 근거가 되는 이러한 방송법의 취지마저 무시한 채 편성본부를 전격
폐지하려 하고 있다.
편성의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은 사내외의 인적 물적 리소스 배분이다. 이러한 배분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시청자들의 동향을 파악해 최종적으로 시청자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고도로 정제된 자료를 근거로 일선 현업부서들의 거센 요구들을 제어하고 끈질긴 설득과 대화를 통해 사내 불협화음을
조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이 사내에서의 독립성이다. 생각해 보라. 만일 편성이 특정 본부내의 일개 센터나 팀으로 전락한다면 이런
거대한 조정기능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토록 중요한 편성본부는 폐지시키면서, 사장의 입김이 직접 작용하는 정책기획센터는 본부로 승격시키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방송 현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편성 기능을 약화시켜 사장의 입김아래 두기 위한 기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날로 위태로워지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이나, 극심한 경쟁에 놓인 미디어 기업의 입장 어느 면에서 봐도 편성은 현행대로 독립본부로 존재해야 한다.
다매체 시대 공영방송의 축,
라디오본부 포기
매체가 다변화되고 수용자들의
생활 패턴이 다양화될수록 라디오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바쁘게 이동하는 차안에서, TV를 시청할 수 없는 일터나 길 위에서 라디오는 가장
효과적인 정보습득과 저렴한 오락 매체이다. 오히려 지금은 이러한 라디오의 특성을 어떻게 하면 기술 발전과 결합시켜 진화시켜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할 때이다. 그런데 이번 조직개편안에는 라디오본부도 보이지 않는다. 미래지향적인 비전은 사라지고, 편의주의적 줄긋기에 알맹이 없는
조직개편에 대한 비난을 면해보려는 눈속임만 남았다.
라디오는 한민족 방송, 사랑의
소리 방송(3라디오), 국제 방송 등을 포함해서 8개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저비용 고효율 매체다. 콘텐츠를 기획, 제작, 전달하는 방식이
TV와는 확연히 다르다. 북방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한민족 방송, 소외 계층을 위한 사랑의 소리 방송이 바로 KBS의 공영성을 강조할 때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채널이다. 이미 IMF 경제위기를 이유로 라디오본부를 폐지했다가 몇 년 후에 다시 원상 복구시켜 놓은 생생한 경험은 이런 식의
조직개편이 과오였다는 점을 이미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라디오의 경쟁력 열세가
조직개편의 명분 중 하나라면 이는 오히려 회사의 책임이 더 크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마련은 뒷전으로 하고, 설득력도 없는 보복성 인사나
자행하면서 PD들을 흩어놓기 바빴다. 이종만 라디오본부장은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 라디오 PD들이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자는 후배들의
대화 요구도 줄기차게 거부하면서, 혹시 KBS 라디오의 미래보다는 개인의 미래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뿐이다.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나서서 본인이 공언했던 대로 라디오 매체의 가치와 라디오본부의 존재의의를 지키는데 앞장서야 한다.
“시사프로그램 이관,
예능·드라마의 축소”, 이번 조직개편의 목적은 PD 죽이기
우리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시사프로그램의 보도본부 이관을 PD저널리즘 말살 기도로 규정하고 강력히 저항할 것을 천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개편에 억지로
시작한 PD 기자 협업 실험을 시작한지 두 달도 안 지난 지금,
시사프로그램의 보도본부 이관을 밀어붙이고 있다.
도대체 시청자의 입장에서
시사프로그램의 제작 주체가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누가 만드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적절하게 권력을 견제하고 시청자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느냐이다. 오히려 제대로 된 CEO라면 일부러 갈라놓고 경쟁을 유도할 것이다. 누가 더 철저하게 파헤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지
경쟁하게 할 것이다. KBS는 지난 수십 년간 이런 방식으로 기자와 PD가 선의의 경쟁을 해오며 방송저널리즘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이런 식의 무모한 조직 이관은
KBS 저널리즘을 후퇴시킬 뿐이다. 또한 김인규 사장은 방송 저널리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그의 평소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PD 기자 사이의
장벽을 더 높이 쌓은 인물로 방송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번 조직개편에서 또 하나
황당한 것은 예능과 드라마의 축소이다. BCG 보고서에 따르면 이 두 장르를 지금보다 15%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예능과 드라마의
PD숫자를 줄여 타 부서로 방출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은, 같은 BCG 보고서에서 KBS 수입 중 콘텐츠 2차
판매수익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예능과 드라마를 줄이면서 동시에 부가판매 수익을 늘릴지 그 복안이
궁금해진다.
한방에 훅 가는 조직개악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결국 지금의 방향대로
조직개악이 단행 된다면 공영방송으로서의 독립성은 훼손되고 콘텐츠의 경쟁력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속도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급속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 김인규 사장은 ‘특보’라는 타이틀을 달고 KBS의 사장으로 취임한 것만으로도 이미 조직에 심각한 누를
끼쳤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부논쟁에 휘말린 어설픈 조직개편이 아니다. 조직원들이 공영방송인으로서 정체성을 되찾고, 시청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제작에 매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KBS를 한방에 훅 가게
만드는 조직개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무게로 돌아오게 될 책임은 오롯이 이번 조직개편을 주도한 자들이 져야 할 것이다.
2010. 5.
24.
KBS PD협회
KBS는 1100명을 감축한다며 800명은 정년퇴직을 통한 자연감축으로 가능하며 300여명은 자회사 전환 등 아웃소싱으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명예퇴직도 추진하며 퇴출 구조를 한층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5500명 정원에서 1100명을 감축한다면 정원의 20%를 감축한다는 것이다. 엄청난 숫자다. 공영방송 KBS를 움직이는데 이렇게나 많은 인력을 줄여도 괜찮은지 잘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스스로 그렇다고 하니 일단 그렇다고 보자. KBS가 그토록 방만한 조직이었다면 줄일 수 있다. 아니 줄여야 할 것이다. KBS 김인규 사장은 이런 계획을 내놓고, 실행에 옮기면서 '자, 우리도 이렇게 허리띠를 졸라맸으니 수신료 좀 올려달라' 뭐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게다. 일단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KBS가 내놓은 조직개편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력은 감축되는데 간부의 숫자는 오히려 늘어난다고 한다. 지금 408명이 428명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직원 숫자는 20% 감소하는데, 간부 숫자는 약 5% 정도 늘린다는 것이다. 몸집을 줄이되 머리는 키운다는 것인데, 내가 보기에 무슨 이런 조직혁신이 있나 싶다.
KBS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판단됐는지, 'KBS 사보 특보'를 내면서 "전체 인력은 축소한다고 했는데, 관리자 수는 거꾸로 증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관리자 수는 보스턴컨설팅사가 제시한 것으로 과거 팀제로 인해 붕괴되었던, 간부의 팀원 관리 범위를 정상화 하는 조치이다. 간부 1인당 관리 범위가 최소 6명에서 최대 20명이어야 적절한 관리가 가능하다는 조직 관리론에 따른 것이다. 임원급 보직 수는 1개 줄었으며, 차장급의 경우도 3개 줄었다. 다만 국장, 부장 보직자 수가 다소 늘었으며, 전체적으로 20개 정도 늘어난 것으로 무리한 것이 아니다"며 자문자답을 내놨다.
KBS 사보 특보 중
그런데 KBS가 스스로 내논 답을 살펴봐도 납득이 되질 않는다. KBS는 '과거 팀제로 인해 붕괴되었던, 간부의 팀원 관리 범위를 정상화 하는 조치'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정상화'는커녕 과거로 회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과거 팀제'는 정연주 사장이 들어온 뒤 2004년 KBS의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면서 마련한 제도인데, 당시 이 제도를 도입한 근거로 내세웠던 것이 'KBS에는 간부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정연주 사장이 들어오긴 전 KBS가 피라미드 형식의 조직구조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또는 역피라드식의 조직구조로 과장하자면 일반 직원보다 오히려 간부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정연주 사장이 KBS를 일하는 조직으로 바꾸고자 현장 중심의 조직으로 바꾸고자 팀제를 도입했다고 알고 있는데, 낙하산 특보사장 김인규는 이를 거꾸로 되돌리려 하는 것이다.
과거 KBS에는 이른바 '창가족'이라는 족속들이 있었다고 한다. 간부들이 많다 보니, 할 일은 없고 하루 종일 창가만 바라보고 사무실을 어설렁거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인규는 이 '창가족'을 부활시키려는 것일까? 아니 굳이 과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직원의 숫자를 1000명 넘게 줄이면서 오히려 간부는 늘린다는 것이 도저히 정상적인 조치인지 납득할 수 없다.
KBS는 거창하게 '조직론'을 들먹이지만, 사장의 입장에서 간부를 늘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곧 조직 장악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간부를 늘린다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을 사장에게 줄 세운다는 것이고, 자신의 손발을 늘린다는 의미다. 회사의 간부가 된다면 웬만해서는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회사의 방침에 저항하기 힘들다. MBC 파업 과정에서 보직부장들이 자신의 이름까지 내걸고 성명을 낸 것을 지극히 의외의 사례다. 일반적으로는 그럴 수 없다.
정리하자면, 낙하산 특보사장 김인규는 KBS에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직원들은 줄이는 대신 자신의 손발은 늘려서 앞으로 KBS를 더욱 더 완전한 정권의 방송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조직 줄였으니 수신료 올려달라'고 국민들에게 손을 내밀 판국이다. 그 손을 어떻게 해야 할까? 판단은 매달 2500원씩 KBS의 수신료를 내고 어쩌면 앞으로 6500원이나 올려서 내야 할지도 모르는 국민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