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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W', 이미 중단된 '김혜수의 다이어리'

다큐후비기

by hangil 2010. 9. 1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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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자료를 찾다가 MBC의 <김혜수의 W>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김재철 사장이 11월 MBC 가을개편에서 <후플러스>와 함께 폐지 대상으로 올려놨다는 바로 그 <김혜수의 W>다. MBC는 공식적으로는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MBC가 지난 8월부터 시청률, 수익성, 공영성 등 '개편 3대 조건'을 기준으로 편성 전략을 검토한 결과, <후플러스>와 <김혜수의 W>를 폐지 대상으로 확정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2005년 4월 "국제분야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MBC 공영성을 대표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기획의도로 방송을 시작한 <W>가 지난 7월 최윤영 아나운서에서 탤런트 김혜수씨로 진행자를 바꾸면서 <김혜수의 W>가 시작되었다. <W>는 약 5년 동안 방송되면서 반전과 평화, 인권 등 인류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의 갈등과 모순에 대해 구조적이고 본질적으로, 그리고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접근하면서 참신함과 차별성이 돋보였던 프로그램으로 MBC의 공영성을 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김혜수씨가 진행을 맡은 이후에는 대중성까지 겸비하게 되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공영성'과 '시청률'이 보장된 프로그램이고, '시청률'이 높으면 그만큼 광고가 따라오니, 잦은 해외출장으로 제작비가 많이 든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는 '수익성'까지 담보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김혜수의 W>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MBC가 내세운 가을 개편 기조(시청률, 수익성, 공영성 등 '개편 3대 조건')가 얼마나 허구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미 <김혜수의 W> 폐지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많은 블로그와 언론들이 다뤘으니, 조금 차원을 달리해 접근해보자.

김혜수씨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김혜수의 W> MC로 선정되면서 이 프로그램에 큰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프로그램 관련 회의 때 직접 참석해 그동안 생각했던 내용을 적어 와 제작진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아이템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그동안 보여준 W 프로그램의 아이템에 대한 진정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나 역시 최선을 다해 전달하고 참여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붙인 프로그램에 어떻게 진행자로서 애착이 없을수야 있겠는가마는, 김혜수씨의 <김혜수의 W>에 감정은 대체로 제작진 혹은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뒤늦게 <김혜수의 W>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김혜수씨가 얼마나 이 프로그램을 사랑하고 진정성 있게 참여하고 있는지를 새삼, 직접적으로 알게 됐다. 바로 <김혜수의 W> 홈페이지에 개설된 '김혜수의 다이어리' 게시판을 통해서다. 이후부터 인용할 내용은 이미 김혜수씨가 7월부터 직접 써왔던 내용이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되도록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하는 마음에 소개한다.

<김혜수의 W> 홈페이지에 개설된 '김혜수의 다이어리' 게시판


'김혜수씨가 여러분에게 W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공간'으로 마련된 '김혜수의 다이어리'를 보면 김혜수씨는 많게든 매일, 길게는 약 열흘에 한번 정도씩 이 게시판에 직접 글을 올렸다.

맨 처음 등록된 글은 7월 17일에 쓴 '처음 인사드려요'라는 글이다. 7월 16일 <김혜수의 W> 첫방송을 마친 김혜수씨는 "열심히 준비한 첫방송이였지만 아직 부족함이 많은 저의 첫방송을 함께 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짧게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이후 방송에서 소개된 내용과 관련된 정보를 소개하거나 방송에서 다뤄질 내용을 미리 알리는 등 김혜수씨는 꾸준하게 이 게시판을 통해 시청자들과 교류하고자 했다. 그러다 8월 15일 김혜수씨는 <김혜수의 W>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대단히 솔직하고 진지하게 남기는 장문을 글을 '5주 간 W와 함께 하며..'라는 제목을 올린다.

이글에서 김혜수씨는 먼저 프로그램에서 다룬 내용(콩고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잔인한 학대행위)과 관련해 "그런 끔찍한 일이 자행되는 곳이 있고, 희생되는 아이들이 있다는 현실 자체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당장 무엇을 해주기 조차 쉽지 않은 콩고의 현실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함과  그곳 아이들을 향한 막연한 죄책감 마저 들었다"고 진행자로서는 물론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의 소감을 밝혔다.

나아가 김혜수씨는 "개인적으로 5주 동안 프로그램과 함께 하면서 알게 되고 느낀 부분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제작진의 고뇌와 현실적인 어려움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이 일이 방송국에서 월급만 받는다고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라 역시 개인의 신념이 바탕이 되는 일이란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구요."

"프로그램 개편 후 초반에 여러분께서 느끼셨듯이 저 역시도 제 이름이 붙여지는 것에 대한 부담과 거부감이 있었답니다."

"누구의 관점이나 색깔로 해석되는 W가 아니라 언제 누구라도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열린 시선을 유지하는 폭 넓은 프로그램으로서의 가능성을 전제로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아직은 여전히 부족하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제겐 쉽지않은 과정 만큼이나 특별한 의미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조금씩 조금씩 아주 소중히 느껴가고 있답니다."

"제가 느끼는 소중함이 여러분 입장에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방적인 결과가 되지않도록 시청자 여러분의 의견에 지속적으로 마음을 열어놓고, 제가 알아가고 느끼는 점을 가능한 많은 분들과 공감할 수 있는 객관성을 가지도록 다각도로 꾸준한 노력을 하려합니다."

그러면서 김혜수씨는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 나라 처럼 급변하는 문화 속에 방송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계속 존재하는 것! 그 차체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제가 W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라며 "지난 5년 간 W를 시청 해주신 여러분, 그리고 새롭게 저와 함께 프로그램에 관심 가져주신 여러분 한분 한분이 제겐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답니다"라고 <김혜수의 W>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시청자들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이처럼 애착을 보이는 프로그램이고, 거기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성공적인 프로그램이기도 한데 프로그램을 맡은지 약 한달만에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은 김혜수씨의 심정이 어떨까.

제작진에 따르면 김혜수씨는 MBC 경영진에 대해 엄청난 울분을 토했고 굴욕감과 배신감,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잠을 못이뤄 회의 때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단 프로그램이 방송 한달여 만에 폐지된다는 소식에 대한 김혜수의 반응을 간접적으로 접하고 이미 그 감정이 충분히 이해됐다. 그리고 오늘 우연히 '김혜수의 다이어리'에 적힌 글들을 읽으며 '엄청난 울분', '굴욕감', '배신감', '수치심' 그리고 잠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백분 이해됐다.

김혜수씨의 말처럼 <W> 제작은 월급만 받는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흔한 말로 인류애, 인권과 평화 등 보편적 가치에 대한 어떤 신념이 <W> 제작진에게 있음은 곁에서 보지 않고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런 제작진과 유명 연기자임에도 이름만 내세우려 하지 않고 진정성을 가지고 제작에 참여하는 MC가 있으니 <김혜수의 W>는 좋은 프로그램으로서의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을 김재철 사장은 없애려고 하고 있다.

김혜수씨에 대한 배신이며, <김혜수의 W>를 사랑하는 시청자에 대한 배신이다. '김혜수의 다이어리'에서 8월 19일 이후 한 달여 동안 더 이상 김혜수씨의 새글을 찾을 수 없다. <김혜수의 W> 폐지 소식이 전해진 시기와 일치한다. 폐지가 거론된 것만으로도 프로그램 제작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진행자의 의지를 꺾어버린 것이다.

김재철 사장은 <김혜수의 W> 폐지 시도를 접고, 시청자들이 <김혜수의 W>를 계속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김혜수씨가 이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시청자들을 계속 만날 수 있게, '김혜수의 다이어리'를 통해 시청자들과 계속 소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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