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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플랜B'를 더 재밌게 보는 법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10. 9. 3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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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기대를 충족했다.
첫방송 1회를 보고 온전히 평가하는 것은 섯부를 수 있지만 충분히 성공적인 1회였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만들었고, <도망자 플랜B>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캐릭터인지 첫회에서 이미 시청자들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박진감 넘치고 속도감 있었으며 재미와 긴장을 적절히 버무렸다. 캐릭터는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했고 '곽정환 드라마'답게 주인공 외에도 다양한 조연들의 매력이 벌써 드러나기 시작했다. 곳곳에 등장한 카메오는 또 다른 볼거리고 재미였다.



물론 첫방송 이후 정지훈(비)의 연기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긴 하다. 정지훈이 맡은 '국제탐정협회 태평양지부 아시아지회 대한민국 사무소장' 지우의 호들갑스러운 연기는 보는 사람에 따라 오버스럽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나는 정지훈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를 한 것으로 평가한다.

방송 전 쓴 글에서 나는 "'닌자 어쌔신'처럼 초클릿복근을 내세워 인상 쓰는 모습보다 <상두야 학교가자>라든지 <풀하우스>처럼 정지훈의 천연덕스러우면서 자연스러운 코믹한 연기를 좋아한다"며 "<도망자>는 정지훈의 장기를 잘 살릴 수 있는 드라마 장르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도망자>에서의 정지훈의 모습을 기대한 바 있다.


첫방송에서 정지훈이 보인 모습은 적어도 이런 나의 기대는 충족시켰다. 혹자는 정지훈의 연기가 '가벼웠다'고 혹평했지만 연기가 가벼웠다기보다는 정지훈이 맡은 캐릭터가 가벼운 인물이고 정지훈은 그 인물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지훈이 가볍기만 할거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지우를 통해 복수를 계획하는 '진이'의 휴대폰에 저장된 케빈의 사진을 보고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겉으로 보이는 가벼움 속에 뭔가를 간직하고 있는 인물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진이'를 맡은 이나영의 연기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랜만에 TV에 등장한 이나영을 만나는 것 자체가 반갑고, 여린 듯 강단있는 모습에 신비로움과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은 이나영이 여태껏 해온 연기와는 또 다른 모습임에도 충분히 어우러졌다. 아픈 과거를 가진 진이 이중삼중의 보안 장치를 해야지만 편히 잠들 수밖에 없는 이유, 누구를 상대를 어떻게 복수할 것인지, 정지훈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지게 될지, <도망자>의 핵심 스토리가 이나영을 통해 풀어질 것으로 보이기에 더욱 주목된다.


경찰요원인 '도수' 역을 맡은 이정진 또한 활동감 넘치는 모습과 강한 인상 그리고 문득문득 드러나는 냉소적인 모습 등 배역에 충분히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줬고, 도수와 함께 일하는 경찰후배 역을 맡은 윤진서는 특유의 백치미는 물론 멍청하면서도 똑바라진, 약한 이미지지만 소매치기 정도는 금방 때려잡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인물임을 보여줬다.

주연급들 못지 않게 <도망자>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연들이다. 자, 여기서부터 <도망자>를 보다 재밌게 보는 방법을 살펴보자.

첫째, 주인공들에만 집중하지 말 것

<도망자>가 지우와 진이, 도수 등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건 명백하지만 이들에게만 집중한다면 <도망자>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놓칠 수 있다. 곽정환 PD가 전작 <추노>에서 그렸던 것처럼 <도망자> 역시 조연들의 역할 또한 꽤나 비중있게 그려질 것이 틀림없다.


물론 <추노>가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노비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혁명을 꿈꾸는 자와 그런 노비를 이용하려는 자 등 다양한 맥락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워낙에 굵직굵직해서 업복이조차 마치 주인공처럼 그려졌던 것에 비하면 <도망자>에서는 진이의 복수 외에 어떤 줄거리가 펼쳐질 지 아직 미지수라 조연들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아직은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나카무라 황'을 맡은 성동일과 '제임스 봉'을 맡은 조희봉, '장사부'역의 공형진 등은 역시 맛깔나는 조연의 모습을 충분히 보여줄 것이고, 얄미운 팀장 '백남정' 역을 정말 얄밉게 하고 있는 데니안의 모습도 기대된다.

둘째, 카메오 찾는 재미에 빠져볼 것

<도망자>에는 많은 카메오가 등장할 예정이다. 이미 첫방송에서부터 이다해와 오지호가 카메오로 출연했고, 앞으로도 한정수와 이종혁도 출연할 것이다. 이밖에 또 어떤 카메오가 등장할지 기대되는데, 일단은 <추노>에 출연했던 연기자들이 다수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의외의 또 다른 카메오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앞서 <추노>에서는 장동민, 황현희, 오지헌 등 개그맨들과 유채영 등이 그야말로 깜짝 카메오로 등장해 색다른 재미를 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추노> 팬이었다면 더욱 주목해서 볼 것

먼저 카메오 찾는 재미에 연장해서 보자면, 지우의 과거 애인으로 카메오 출연한 이다해의 경우 극중 이름이 혜원이었다. 혜원은 바로 <추노>에서 '언년이'로 나온 이다해가 노비 신분을 감추며 사용한 이름이었다. <도망자>에서는 이런 자잘한 요소에서부터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카무라 황' 성동일이 도수에게 지우와 관련한 회상을 들려주는 대목은 <추노>에서 역시 성동일이 맡은 '천지호'가 '대길이(장혁)'의 과거를 회상할 때와 매우 흡사했는데, 그런 장면들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역시 색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사회적 메시지를 놓치지 말 것

<도망자> 첫방송에서 눈길을 잡은 대목이 있다. 팀장 승진이 거의 확실하다던 도수를 제치고 백남정(데니안)이 아버지 '빽'으로 팀장에 승진해 얄미운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었는데, 그 자체가 현실에 존재하는 이른바 '똥돼지'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백남정이 팀장 승진 뒤 팀원들에게 "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성과주의로 가란 말이야"라고 쪼는 대목은 조현오 경찰청장과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 서장 사이에 있었던 이른바 실적 위주의 '성과주의' 논란을 비튼 유쾌한 대목이었다.

이미 첫방송에서부터 등장했고, 앞으로도 이같은 풍자는 충분히 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데, 바로 곽정환 PD가 드라마 곳곳에 배치할 의미심장한 사회적 메시지를 눈여겨 보는 것도 <도망자>를 재밌게 보는 방법이 될 것이다. <추노>의 기획의도를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었다.

이런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거리에 나가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 되는 세상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의 삶에서
희망이나 꿈, 전망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보편적인 그런 세상을?
절반 이상이나 되는 인생의 값어치가 단지 얼마짜리 돈으로 결정된 그런 세상을?
절반 이상되는 이들의 사람답게 살고픈 바람이 오직 '도망'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세상을?

....

만약 몇 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각자의 얼굴을 저 안에서 찾을 수 있다면
우리가 저잣거리를 살아가는 그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화폐가치가 인생의 값어치로 손쉽게 매겨지고
'88만원 세대'라던가,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문구들로부터 눈길을 떼지 못하는 현재의 모순을
그 시대와 등가로 놓을 순 없다하더라도
맨몸으로 부딪혀 싸우지 않고서는
무엇인가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랍답게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만큼은 여전하기 때문인지도.

곽정환 PD는 <추노>를 통해 몇백년 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현실을 반영하려 했다. 물론 <추노>의 또 다른 주인공 노비들의 혁명이 큰 줄거리가 되다보니 <추노>는 사극임에도 그 어떤 드라마보다 현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현대물인 <도망자>는 코믹액션첩보물을 표방한만큼 <추노>만큼의 메시지는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곽정환 PD가 <도망자>를 그냥 만들지는 않으리라.

<도망자> 첫방송에 아쉬운 대목이 없었던 건 아니다. 1회 도입부가 너무 천편일률적이었기 때문이다. 지우가 범죄조직으로부터 쫓기는 추격신은 액션첩보물로서 '색다른 재미'를 주지 못했다. 특히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도 총 한 방 맞지 않고 추격자들을 다 물리치는 모습은 물량을 쏟아부어 시작부터 눈길을 잡으려는 의도를 너무 솔직하게 드러냈고 <아이리스>에서처럼 이미 흔하게 봐왔던 모습이라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정지훈의 노출과 여성 출연자들을 훔쳐보게 만드는 빈번한 카메라 각도 등도 곱게 볼 수 없던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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