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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무기 소개하는 방송뉴스 보고 살이 떨린다

뉴스후비기

by hangil 2010. 11. 3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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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북한의 연평도에 대한 포격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한마디로 일촉즉발 그 자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언제든 전면전이 벌어지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령, 일요일 휴전선 근처 1사단 포병부대의 곡사포 오발 사건의 경우 천만다행으로 '오발'에 그쳤기에 망정이지, 그 오발이 자칫 휴전선을 넘어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기 그지없다. 그 오발을 빌미로 휴전선 전역에 배치된 북한의 장사정포가 일제히 불을 뿜는 일이 벌어졌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온몸에 닭살이 돋고, 살이 떨린다.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속담이 요즘처럼 절실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두고 마치 다른 나라에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전쟁이 일어나도 그만, 일어나지 않아도 그만인 것처럼 바라보고, 따따부따 말을 쏟아내는 부류가 적지 않다. 이것저것 거론하지 않겠다. 바로 언론들이 그렇다. 인터넷에 하루에도 시시각각 무수히 쏟아지는 연평도 포격 관련 기사를 볼라치면 언론들은 마치 전쟁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인터넷뿐만 아니다.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방송은 더욱 심각하다.

오늘(11월29일) MBC 뉴스데스크를 보자. SBS라고 전혀 다르지 않다. KBS는 더 심하다. MBC 뉴스데스크만 보자.

16건의 연평도 포격 관련 기사 가운데 무려 절반이 남-북-미의 전쟁 준비에 대한 중계식 보도였다. 실제 상황에서 사용된다면 얼마나 많은 인명을 희생시킬지 상상조차도 끔찍한 전쟁무기의 엄청난 위용을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무기 아이템 정도를 소개하는 것처럼 사실감 넘치는 그래픽까지 동원해 그 화력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 뉴스데스크에서 다뤄진 내용들을 살펴보자.


미그기들이 출격해 아군을 위협하는 가상 상황.

이지스함에선 수백 기의 대공 미사일이 적기를 향해 날아오르고, 전투기에서 발사된 지능형 미사일들은 우리 세종대왕함에서 보낸 유도 신호를 따라 '스스로' 적기를 격추시킵니다.
....
항공모함에서 이륙한 대잠 '시호크' 헬기가 헬파이어 미사일로 적 잠수함을 침몰시키고 정찰기가 알려준 좌표에 맞춰 이지스함의 순항 미사일도 일제히 불을 뿜습니다.
남은 건 '강력한 응징'.
1만 2천 미터 상공의 정찰기가 적 집결지의 위치와 상황을 미리 알려주면, 북한군 지휘소를 향해 슈퍼 호넷 등 폭격기들이 날아오릅니다.

<실전 훈련 미사일 발사> 중


이번 한미 연합 훈련을 지휘 통제하는 사령탑, 조지 워싱턴호가 오늘 공개됐습니다. 웬만한 나라의 군사력과 맞먹는, 가공할 핵 항공모함의 위력을 김병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연료 공급없이 20년 동안 운항이 가능한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는 말 그대로 '바다위의 군사기지'였습니다. 축구장 3배 넓이의 갑판 위에는 전투기 80여대가 탑재되고 갑판 밑에서는 출격할 전투기에 대한 급유와 미사일 장착이 쉴 새 없이 이뤄집니다.
....
바다에서 하늘에서 최첨단 장비를 통해 수집된 적의 정보는 조지워싱턴 호의 지휘통제실로 모아지고 분석이 끝난 공격 명령은 또다시 하늘로 바다위로 바다 속으로 신속하게 전파돼 적군의 공격의지를 단숨에 꺾어버립니다.

<바다에서 작전 지휘> 중

서해 5도와 마주한 북한군의 전력은 옹진반도에 늘어선 해안포들을 해공군력이 뒤받쳐주는 모양새입니다.
......
연평도 포격에 사용된 4군단직속의 122mm 방사포도 전진 배치돼 있습니다. 대공 전력도 대폭 보강해 사거리 30Km의 지대공 미사일 SA-2를 백령도, 연평도 북쪽에 배치해 우리 공군기를 정면 겨냥하고 있습니다.
......
대함 전력은 특히 강합니다. 사곶의 8전대에는 연평도 포격 직후 준전시 상태 명령이 하달돼 함정 70여척이 출동 대기 태세에 들어갔고, 초도의 9전대에는 공대함 미사일을 탑재한 폭격기는 물론 함정 수십 척이, 남포 서해함대사령부는 고속정과 어뢰정, 잠수함 등 6백여 척 이상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방사포 전진배치 비상태세> 중

연평도의 우리 군 전력도 한층 강화됐습니다. K9 자주포가 추가 배치됐고 K9보다 18배나 위력이 센 다연장 로켓포도 새로 투입됐습니다.
.......
우리 군 지상화력 가운데 최강을 과시하는 다연장로켓포가 연평도에 배치된 건 이번이 처음, 한번에 12발의 로켓을 탑재하고 1분 안에 모두 발사할 수 있습니다. 200미터 상공에서 터지는 한발의 위력은 5백발의 자탄으로 나눠져 축구장 3개 넓이를 초토화시킵니다.

<최강 화력 긴급 배치> 중


북한 해안포를 집중 타격하기 위한 정밀 유도 미사일을 도입하고 그동안 방어에 초점을 맞췄던 전략은 공격 중심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
적외선으로 숨겨진 해안포를 찾아내 정밀 타격하는 이스라엘제 스파이크 미사일입니다.
......
또, 해안포의 위치를 정확히 포착하기 위한 '음향 표적장비'도 새로 도입됩니다.
......
북한의 기습 도발을 사전에 탐지하기 위해 무인정찰기를 서해 5도에 배치하고 전술비행선도 새로 도입할 계획입니다. 비행선은 1.5킬로미터 상공에 멈춰서서 주변 30킬로미터 까지 감시가 가능합니다.

<북한 해안포 잡는다> 중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리고 숨이 가빠진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걸까?
이 정도의 막강한 화력이 있으니, 한 번 제대로 붙어보자는걸까? 기어코 전면전을 벌이자는걸까?

서두에 예를 든 '곡사포 오발'과 관련한 보도를 보자면 더욱 살이 떨린다.

MBC는 "우리 군의 곡사포 오발 사고와 관련해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포탄이 제대로 발사됐는데 왜 북측으로 넘어가지 않았냐는 것이다"며 마치 곡사포 폭탄이 휴전선 넘어 북한으로 넘어가지 못한 게 아쉽기라도 한 것처럼 보도한다. "더 큰 의문은 실수긴 하지만 정상 발사했는데 포탄이 왜 북한 쪽으로 넘어가지 못했는가 하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어제 최일구 앵커는 이 사건을 두고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 엄중한 시기에 뭐하는 겁니까"라고 그나마 그의 특유의 어조로 군을 비판했다. 그런데 하루만에 MBC는 아찔한 상황에 대한 아무런 지적 없이 오히려 폭탄이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아서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이쯤되면 정말 전쟁하자는 거다.

지난 2003년 미국이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방송사들은 이라크 바그다드로 진격해가는 미군을 따라 전쟁을 중계하듯 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 방송들은 미군이 사용한 전쟁무기들을 역시나 컴퓨터 그래픽까지 동원해가며 상세히 소개하고 그 위력을 과시하는데 일조를 했는데, 그 전쟁무기들이 얼마나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게임식 화면, 흥미위주의 첨단무기 소개

기술적인 면에서 볼 때 이번 전쟁 보도의 가장 큰 특징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생동감 넘치는 전쟁화면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3사는 각각 버추얼스튜디오(KBS), 매직스튜디오(MBC), 사이버스튜디오(SBS)라는 이름으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전황을 전달했다. 보도 기자가 미사일이 발사되는 선상에 서 있거나 전차들이 질주하고 아파치 헬기가 날아다니는 전장에 서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 컴퓨터그래픽 화면은 마치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표5> 방송3사 특수부대, 첨단무기 소개 보도사례
KBSMBCSBS
<'크루즈'가 주도>(3.20)
<공격 지휘본부>(3.20)
<첨단무기 시험장>(3.21)
<위력적 무기 사용>(3.22)
<전차가 좌우한다>(3.23)
<최정예군 사수>(3.24)
<이중 삼중 방어선>(3.26)
<미사일 공격선봉>(3.20)
<최신예 폭격기 출격>(3.20)
<항공모함 위력발휘>(3.20)
<특수부대가 선봉>(3.20)
<첨단무기 총출동>(3.20)
<후세인 사살 특명>(3.21)
<핵폭탄 같은 위력>(3.22)
<진군선봉 101사단>(3.23)
<최후보루 '수비대'>(3.23)
<최첨단 지휘본부>(3.23)
<전자폭탄 실전 등장>(3.26)
<복면 쓴 게릴라 부대>(3.26)
<정확도 80%>(3.20)
<공격선봉 '키티호크'>(3.20)
<땅속도 초토화>(3.20)
<폭탄의 어머니>(3.21)
<어둠속의 전사>(3.21)
<전투기 출격>(3.21)
<충격과 공포>(3.22)
<특수부대 사담페다인>(3.25)


또한, 시청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킨다는 미명하에 방송3사는 지나치게 자세하게 특수부대와 첨단무기를 소개하였다. 이것 역시 첨단무기의 뛰어난 성능이나 미국·영국 특수부대와 이라크 특수부대의 대결에 집중한 흥미성 보도의 한 전형이었다. 특히 MBC의 경우 개전 첫 날 무려 5건의 특수부대, 첨단무기 소개 보도를 함으로써 타 방송사보다 압도적으로 보도량이 많았으며, SBS의 경우에는 초대형 폭탄 MOAB에 대한 보도를 21일에 <폭탄의 어머니> 22일 <충격과 공포> 두 건 연이어 하였는데, 보도 내용이나 화면에 있어 별 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는 중복 보도였다.

(<방송3사 '이라크 침공' 보도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모니터 보고서> 중)


그런데 그런 보도를 자신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한반도의 운명을 전하면서도 똑같이 반복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아무래도 방송사들은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 조지워싱턴호가 북한의 심장부를 박살내고, 이스라엘제 스파이크 미사일이 해안포를 정밀타격하고, 다연장로켓포 수십발이 축구장 100배쯤 되는 넓이의 땅을 초토화시키는 모습을 보고싶은가보다. 하늘엔 전술비행선이 떠 있고, F-22가 미그29와 공중전을 벌이는 그런 모습을 실제로 보고 싶은가보다.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을 보는 것 같다.
지난 봄 MBC노조가 파업을 할 때 '파업뉴스데스크'를 진행했던 김병헌 기자가 "웬만한 나라의 군사력과 맞먹는, 가공할 핵 항공모함의 위력"을 흥분한 듯 전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이자가 그자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평소 북한에 대한 나름 전문성있는 기자로 평가해왔던 김대경 기자가 "더 큰 의문은 실수긴 하지만 정상 발사했는데 포탄이 왜 북한 쪽으로 넘어가지 못했는가 하는 대목"이라며 정말 의문스러워하고 나아가 안타까워하는 듯 보도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이자가 그자가 맞는지 눈이 의심스럽다.

좋다.
백보양보해 북한이 먼저 잘못을 저질렀으니, 북한에 대한 분노를 어떻게든 표출해야한다고 치자. 그래서 북한을 맹비난하고, 압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자. 하지만, 그래도 하지만 전쟁은 막아야하는 것 아닌가?

북한의 잘못에 대해 규탄하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 전쟁마저도 불사하겠다고, 아니 전쟁이 일어나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아니 나아가 전쟁을 부추기면 어쩌자는 말인가.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지만, 결코 겪고싶지 않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실제 전쟁이 일어나면 컴퓨터 게임처럼 재밌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그런데 방송들은 마치 게임처럼 즐길 수 있는 듯 다룬다. 이라크전때도 그랬고, 지금조차도 그러고 있다.

제발 조금만 이성을 찾자. 방송이 오히려 더 흥분하면 시청자들은, 국민들은 더 불안해진다. 조금은 차분하게 연평도 포격 같은 일이 왜 일어났는지 되짚어보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과연 전쟁밖에 길이 없는지, 물리적 대응 수위를 높이는 것밖에 길이 없는지, 따져보자. 물리적 대응을 다루는 것은 좋다. 하지만 과연 그것밖에 없는지, 다른 해결책은 없는지도 좀 생각해보자.

제발!! 애원이라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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