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월드컵 유치 실패, 다들 예견하지 않았나요?

뉴스후비기

by hangil 2010. 12. 3. 13:22

본문

2022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카타르가 낙점됐다. 2022년 월드컵 유치를 신청했던 한국은 3차 투표에서 탈락했다.

한국의 월드컵 유치를 진두지휘했던 정몽준 FIFA 부회장은 결과가 나오기 전날 우리나라의 월드컵 개최 가능성에 대해 "꽉 찬 50%"라고 했다. 이 말의 의미에 대해 정몽준은 "한국이 2개국이 남는 결선투표에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라며 "끝까지 남는다면 승산이 있다"고 했다.

정몽준의 예상은 어긋났고, 한국의 월드컵 유치 실패에 대해 "나홀로 정몽준"이니 PT가 식상했다니 여러 비판이 언론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12월 3일 중앙일보


솔직히 그저께부터 월드컵 유치 관련 보도들을 접하며 뜬금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1주일 동안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둘러싸고 마치 전쟁을 치를 것처럼 비상상황에 몰려 있는 나라가 갑자기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하러 스위스로 날아간다니?

뿐만 아니라 월드컵 유치의 명분으로 '한반도 평화'를 내세우고 있다니? '이 무슨 퐝당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라고 느끼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이 퐝당 시추에이션의 백미는 방송보도였다. 톱부터 줄줄이 '조지워싱턴호가 어떻고', '다연장로켓포가 어떻고' 떠들며 사실상의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흥분한 듯 보도하던 방송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한반도 평화'를 내세우는 월드컵 유치단의 모습을 그대로 화면을 옮기는 모습을 보며, 정말 웃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표정 관리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뉴스를 전하는 앵커는 뉴스 내용에 따라 흥분했다, 근엄했다, 진지했다, 그리고 웃었다 표정을 잘도 바꿨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혀 다르게 잘도 보도했다. 역시 방송사 앵커 하려면 저 정도 철판을 깔아야 가능한 것이겠지 싶기도 했다.

12월 2일 MBC보도

12월 2일 SBS보도


그리고, 끝내 한국이 2022년 월드컵유치를 실패하고서야 언론에서는 <연평 포격장면 담은 PD에 "또 평화 얘기냐" FIFA 표심 냉랭>이란 식의 제목의 기사가 등장한다.

한국이 유치에 실패하기 전에는 정말 몰랐을까?
이 상황에서 한국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월드컵을 개최해야 한다'는 주장이 먹힐지 안먹힐지, 맞는 이야기인지, 웃기는 이야기인지 정말 몰랐을까?

월드컵 개최지가 결정되기 전인 어제(12월2일) 몇몇 신문의 기사 제목을 보자.

<"평화-열정-영감의 한국으로">(동아일보)
<"후손들에게 평화·열정·희망 주고 싶습니까? 코리아가 하겠습니다">(중앙일보)










평화와는 가장 거리가 먼 듯한 대표적인 신문의 월드컵 유치 관련 기사 제목이 어제까지 이랬다.

그리고 오늘, 어제 '평화'를 얘기했던 동아일보는 <연평 포격장면 담은 PD에 "또 평화 얘기냐" FIFA 표심 냉랭>이라고 '한국 2022 월드컵 유치 실패'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중앙일보는 <같은 명분, 나홀로 정몽준, 무게 잡은 PT...2022는 경쾌함 원했다>고 기사 제목을 달았다. 여기서 '같은 명분'이란 '한반도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기사에는 "한반도 긴장 완화, 동북아 평화... '2002 레퍼토리 식상' 반응"이란 부제가 붙었다.


월드컵 유치를 두고 우리나라와 경쟁하던 어떤 나라가 '2002년에도 한반도 평화를 얘기했지만, 월드컵 개최 이후 달라진 게 뭐냐'고 꼬집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그저 우리나라를 깎아내리기 위한 수법으로만 해석한다. 그런데 나는 그 보도를 접하고 부끄럽고 민망했다.

그것이 설령 국제행사 유치를 위한 수법이라 하더라도 빌미를 제공한 건 결국 우리가 아닐까? 연평도 포격은 북한이 한 게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그 이후 우리가 과연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게 뭘까? 오히려 정부고, 언론이고 전쟁을 부추기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지 않나.

특히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이후, 정권이 바뀐 다음 진행된 남북관계를 보면 '한반도 평화'라는 말이 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월드컵을 개최한다고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니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그런 차원에서 나는 '한반도 평화'를 내세운 우리나라의 월드컵유치가 실패한 책임에서 언론, 특히 방송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한국을 바라볼 때 뭘 보고 판단할까? 언론이다. 특히 방송이다. 그런 방송에서 매일같이 최첨단무기가 총동원된 전쟁준비 상황이 보도되었는데, 이를 보는 눈에 한반도가 전쟁 직전 상황에 이른 것처럼 비춰지지 않았을까?

지금 상황에서 전혀 받아들여질 수 없는 명분을 내세워 월드컵을 유치하려 했던 전략 자체가 실패했을 뿐더러, 과거 같으면 이 정도 국제행사를 유치하려 했다면 적어도 언론들도 적극적으로 손발을 맞췄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전혀 받쳐주지도 못했을뿐 아니라 코미디같은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언론보도 중에 또 하나 코미디 같은 사례가 있어 덧붙인다.

어제 언론에 나온 기사 가운데 "카타르는 가장 비현실적 카드다"라고 쓴 신문이 있다. 이 신문은 카타르를 두고 "국토가 좁아 모든 경기장이 반경 60km 이내에 있다. 게다가 12개 경기장 가운데 10개는 반경 25~30km 이내에 자리해 심각한 교통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오늘은 "카타르는 중동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개선하고 동서 문화 충돌을 최소화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중동에서 사상 첫 월드컵을 열어야 한다는 호소가 통한 것으로 보인다"며 "또 사막의 뜨거운 날씨에도 최첨단 장비를 갖춘 시원한 경기장에서 축구할 수 있다는 획기적 아이디어가 집행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동아일보이고, 어제 기사와 오늘 기사를 쓴 기자는 같은 사람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