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방통위는 왜 페이스북에 시정을 요구했나?

SNS/IT 후비기

by hangil 2010. 12. 9. 16:55

본문

방송통신위원회가 '정보통신망의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을 들어 페이스북에게 개인정보와 관련한 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처음에 이 소식을 '방통위, 페이스북에 칼 빼들었다'는 식의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 직후에는 방통위가 시대착오적인 사고로 페이스북을 길들이려는 것으로 인식했다. 1년여전 방통위가 구글을 상대로 인터넷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를 따르라고 요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니 그런 건 아니었다.

방통위는 "페이스북 서비스 중 아래와 같은 사항에서 이용자의 권리가 일부 침해되어 있다고 판단하여 국내 정통망법에 근거하여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서비스의 개선을 요구했다"고 밝혔는데, '아래와 같은 사항'은 다음과 같다.

▶ 회원 가입시 개인정보의 수집 등에 관한 고지 및 동의 절차 미비
▶ 개인정보의 취급 위탁에 관한 고지 및 동의 절차 미비
▶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시 이용목적, 보유 및 이용기간 등 미고지
▶ 개인정보 취급방침(Privacy Policy)'이 영문으로만 제공되고 있으며 이용자 권리 및 행사 방법 등 필수 고지 사항 중 일부 내용이 누락

방통위 보도자료


이와 같은 내용은 이용자 입장에서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인터넷서비스 제공자가 회원 가입을 받으면서 개인정보 수집, 이용 등과 관련해 확실히 고지하고 동의받도록 하는 것은 이용자 입장에서 당연한 조치들이다.

그런데 전제가 있다.

방통위가 지적한 사항들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판단하기에 국내에서 서비스를 실시하는 여러 기업들이다. 바로 회원 가입을 받으면서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하도록 해 실명 인증을 받고, 주소, 핸드폰번호 등 가장 중요한 개인정보들을 '반드시' 입력해야 회원 가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어놓은 서비스에나 해당하는 사항들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페이스북은 방통위로부터 이런 시정 요구를 받을만큼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여지는 없다.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페이스북에 가입하는 건 매우 쉽다. 이름과 메일주소, 비밀번호, 성별, 생일만 입력하면 된다. 그런데 이마저도 별도의 사실 확인 절차를 거치지는 않는다. 한국사람이라면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입력해도 되고, 영문으로 입력해도 된다. 거기다 이름은 얼마든지 가명을 사용할 수도 있다. 성별과 생일 역시 굳이 사실대로 입력해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페이스북이 소셜네트워크인만큼 여러 사람들과 친분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되도록 자신의 이름과 성별 등을 있는 그대로 입력하는 게 낫기 때문에 굳이 많은 사람들은 가명을 쓸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가명 혹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어떤 이름을 쓰기도 한다. 나의 페이스북 친구 중에 누군가는 이름을 '곧미남'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다고해서 페이스북이 회원가입을 거부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회원가입 이후 자신의 프로필을 올리는 공간은 제법 많긴 하다. 하지만 이 역시 강제사항은 전혀 없다. 거주지나 출신지, 관심사, 정치관, 종교관, 출신학교, 직장 등등등 모두가 입력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다.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을 찾기 편하게 하려면 입력하면 되고, 필요없으면 안해도 된다. 성별이나 생일 역시 공개할지, 안할지는 자신이 설정할 수 있다.

수많은 입력란이 비어있는 나의 페이스북 프로필


방통위가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을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셈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페이스북을 이용하면서 나의 개인정보가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아직은 한 적이 없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에 대해 개인정보의 수집에 대한 고지와 동의 절차가 미비하다고 했는데, 페이스북 이용자가 자신의 정보를 입력하느냐 마느냐, 어떻게 입력하느냐를 판단하는 그 순간 이미 동의 절차가 진행된다고 보는 게 마땅하다.

역시나 방통위의 요구를 두고 페이스북에서는 "모든 사용자들에게 자신의 페이스북 경험에 대한 컨트롤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에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정책을 포괄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은 페이스북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방통위는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시 이용목적, 보유 및 이용기간 등 미고지'를 문제 삼았는데, 페이스북은 '개인정보가이드'란 코너에서 "저희는 회원님의 개인 정보를 저희 광고주들과 절대 공유하지 않습니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물론 방통위의 지적처럼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취급방침'이 영문으로만 제공되어 있는 것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정도를 가지고 "방통위,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보호 수준 높인다"는 제목으로 보도자료까지 내고, "방통위는 페이스북에 요구한 개선 사항에 대해 30일간의 시한을 두어 결과를 제출하도록 하였으며 자료 제출로 확인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시정을 요구할 예정"이라며 대단한 엄포라도 놓는 듯이 언론플레이를 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페이스북 한국 이용자 중에는 방통위 소속 관계자들도 다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들자면, 방통위 이태희 대변인도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실명을 밝혔고, 자신의 사진을 올렸으며, 굳이 강제적으로 입력할 필요가 없는 직장, 출신학교, 관심사, 결혼여부 등등도 다 밝히고 있다.

방통위 이태희 대변인의 페이스북 프로필 정보. 거의 모든 칸이 채워져 있었지만, 개인정보라 싶은 공간은 내가 임의로 지웠다


과연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보호수준이 부족하고 문제라고 느꼈다면 '방통위 대변인' 정도나 되는 사람이 이렇게 했을까?

그런데도 왜, 방통위는 페이스북에 대해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높이라'며 압박하는 듯한 제스추어를 취했을까?

내가 방통위 관계자가 아니라서 알지는 못하지만, 몇가지 유추를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첫째, 실제 상황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나온 탁상공론식 보도자료일 경우.

둘째, 국내 페이스북 이용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상황에서 주무기관인 방통위로서 '뭔가는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나온 자기 존재감 과시용. 뭐 페이스북측에게 '한국엔 방통위가 있다'는 걸 알리려는 거???

셋째, 뭐든지 일단 통제하고, 압박하고 보는 전형적이고 고압적인 한국 공무원의 발상.

이런게 아니면 굳이 지금 상황에서 페이스북을 상대로 이런 보도자료를 낼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물론 보도자료 자체에서는 그런 의도를 찾기가 어렵지만 속내를 따지고 들면 페이스북을 길들여보려는 의도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보도자료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방통위는 개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행정처분 등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행정처분'이라, 사뭇 보도자료와는 어감이 다르고 압박하려는 의도가 다분이 묻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위에서 제시한 몇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방통위의 자기 존재감 과시'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뭔가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하지만 여기서 더 나가면 방통위가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페이스북을 어떻게든 손보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만약 방통위가 그렇게 나간다면 내 생각에 창피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유투브의 제한적본인확인제를 두고 구글에 쪽을 판 것처럼 말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