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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블랙리스트, 시청자위원회가 만들었나?<2>

다큐후비기

by hangil 2011. 2. 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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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글을 읽기 전에 지난해 7월에 쓴 아래 글을 읽어보길 권한다.

KBS 블랙리스트, 시청자위원회가 만들었나?

그렇다. 이번 글은 위에 쓴 글에 이어진 글이다. 같은 제목의 글을 '<2>'를 붙여 다시 쓸 거라고 애초에 의도한 적이 없다. 그런데 다시 쓰게 됐다. 최근 윤도현이 KBS의 시사보도프로그램 <시사기획 KBS10> '국가인권회'편 내레이션을 맡기로 했다가 KBS 간부 즉 사측의 거부로 무산된 일을 보면서 '<2>'를 쓰게 된 것이다.

일단 윤도현의 <시사기획 KBS10> '국가인권회'편 내레이션 무산과 관련해서는 애초 문제를 제기한 언론노조 KBS본부의 성명과 이어진 KBS사측의 반대 입장, 그리고 이에 대한 KBS본부의 반박 성명을 차례로 살펴보면 어느 쪽의 주장이 더 신빙성 있는지는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으로 믿는다.

또 블랙리스트 논란을 자초하는가?(KBS본부 성명)
‘블랙리스트’ 주장 터무니없다(KBS사측 입장)
‘블랙리스트 논란’ 사측 입장에 대한 반박(KBS본부 반박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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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의 내레이션이 무산된 <KBS10>


이미 정연주 사장이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 과정에서 불법으로 강제 해임(법원에서 해임이 부당하다고 이미 판결받았음)된 이후 윤도현이 갑작스럽게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하차하고, 김제동이 <스타골든벨>에서 역시 갑작스럽게 하차당하고, 정관용이 <심야토론>에서 물러나면서부터 KBS는 '블랙리스트' 논란을 자초해왔다.

그러다 김미화가 <다큐멘터리 3일> 내레이션을 한 뒤 KBS 임원회의에서 이를 두고 '부적절한 내레이터 선정'이라고 지적하고 더 이상 김미화를 내레이터로 출연시키지 않을 것처럼 태도를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KBS블랙리스트' 논란이 불붙었다.

이후 김미화는 KBS측의 고소로 지리한 경찰 수사를 받다가 서로 부담을 느낀 양자간의 합의로 'KBS블랙리스트' 논란은 어느 정도 수그러지는 듯 했지만, 이번 윤도현의 내레이션 무산으로 인해 다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KBS본부는 성명에서 "우리 조합은 문건 형태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밝혔는데, 나 역시 KBS 내에 어떤 문건의 형태로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KBS본부가 "이번과 같은 경우가 반복된다면 KBS의 제작실무자들과 제작 책임자들의 생각과 마음 속에 진정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처럼 KBS 내부에서 '블랙리스트'와 유사하게 작동하는 어떤 기제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2010년 12월 16일 KBS에서 시청자위원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KBS 시청자위원 이문원은(앞선 'KBS 블랙리스트, 시청자위원회가 만들었나?'라는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문원이라는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12월 4일 방송된 <심야토론> '연평도 포격 도발, 북한을 다시 본다'과 관련해 "동국대 북한학과 김용현 교수 발언이 굉장히 화제가 되었다"며 김용현 교수에 대해 "소위 말해서 '친북 북한학자'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용현 교수를 방송사에서 많이 불러서 대표적인 이런 프로그램에 나오는 분이 되었는데 굉장히 놀라운 게, 김용현 교수를 가장 많이 불러주는 곳이 바로 KBS라는 것"이라며 "도대체 생방송 <심야토론>을 비롯해서 김용현 교수를 계속해서 출연시키는 저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친북인사를 굳이 불러서 그 의견을 들어보는 게, 한 번은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인사, 한 번은 친북인사 이렇게 해서 들어보는 게 KBS 측이 생각하는 공정성이 맞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김용현 교수를 왜 패널로 출연시켰냐?'고 따지는 것인데, 손봉호 시청자위원장도 "지금 내용이 상당히 심각하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KBS 다큐멘터리 국장은 "이분을 초대한 것은 상당히 온건·진보 쪽 인사로 저희가 분류하고 있고 그래서 다양한 의견을 들으려면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패널로 있어야겠다는 의도에서 김용현 교수를 불렀다"면서도 "저희가 섭외할 때 좀더 검색을 많이 해보고 심각하게 필터링을 하겠다"고 답했다. "심각하게 필터링을 하겠다"는 건 곧 '심각하게 걸러내겠다'는 말이다.

KBS 시청자위원이라는 사람이 남북문제 전문가로 학계 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학자를 두고 '친북 북한학자'로 낙인찍고 그를 왜 출연시켰냐고 따지는 일이 지금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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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이 편집장으로 있는 '미디어워치'라는 매체의 김용현 교수 관련


이문원이 인용한 김용현 교수의 발언은 "서해 5도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어야 한다", "반격까지도 가능한 요소들이 북한의 추가도발을 부를 수 있다", "억제능력을 넘어서는 태세로 가면 안 된다", "지금 상황에서 냉전시대로 회귀할 수는 없다. 반작용으로서의 대응에만 집중하다보면 국민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 등이다.

연평도 사태를 두고 보복을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자칫 전쟁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 또한 이미 광범위하게 형성됐다. 그런데 학자가 이런 발언을 했다고 '친북학자'로 낙인찍고 그의 방송토론 출연 자체를 문제 삼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방송사 내부에서 출연자나 인터뷰 대상자 등을 정하면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돼'라고 하는 기준을 정할 때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화면발이 받는 인물인지,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인물인지, 말을 잘하는 인물인지, 전문가인지 등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기준이다. 이밖에 정권의 눈치를 볼 수도 있고,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도 있고, 학연과 지연과 혈연에 얽매일 수도 있고, 금전이 얽힌 사적 이익에 휘둘릴 수도 있고, 사장 이하 간부들의 입김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텐데 이런 것들은 극복되어야 할 기준일 것이다.

그리고 시청자를 대표하는 시청자위원회 또한 방송 출연자에 대해 비판하고 그 적절성을 따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일방적인 이념적 잣대로 누군가에게 색깔 딱지를 붙여 마치 '블랙리스트'라도 제시하듯 그의 출연을 문제삼는 것은 시청자위원회의 역할로 절대 보이지 않는다.

'다음기획에 대해 KBS의 분명한 조처가 필요하다'거나 "뚜렷한 정치색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으로 인지된 인물이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는 진행자, 내레이터 역할을 맡는 것은 굉장히 곤란하다"며 "단적으로 말해서 방송인 김미화씨는 '다큐멘터리 3일' 출연이 부적합하다"거나, <책읽는 밤>의 패널을 두고 "탁석산 씨, 임헌영 씨, 강기원 씨, 박태균 씨, 이여영 씨, 조한혜정 씨, 강명석 씨, 이숙경 씨, 기선 씨, 전부 다 좌편향 인사라고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근거들이 있고 그리고 게스트로 나오는 분들도 안광복 교사, 이범 교육평론가, 한겨레에 글 쓰시는 분들"이라며 "좌편향 경향이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좌편향이다"고 말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다음기획에 대해 KBS의 분명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한 과거 이문원의 발언이 다음기획 소속 윤도현의 이번 내레이션 무산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더라도 아무 관련이 없을까? 판단은 각자 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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