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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에 중독된 시청자, 발목잡힌 '나는 가수다'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11. 3. 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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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모의 재도전을 두고 '나는 가수다'에 대한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거의 난리 수준이다. 일본대지진 소식, 서구사회의 리비아 공습 등 국제뉴스를 제외한다면 최고의 국내 '핫이슈'로 등극했다.

물론 '나는 가수다'에 대한 비판에 열을 올리는 분들을 전혀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한명을 떨어트리기로 해놓고 이를 번복한 것에 대해 '원칙을 저버렸다'고 지적하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김건모의 재도전을 두고 마치 엄청난 잘못이 있는 것처럼 흥분하는 것, 그리고 거의 대부분이 여기에 동참하는 것을 보는 마음은 무척이나 불편하고 또 무척이나 난감하다.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나는 가수다' 김건모의 재도전을 두고 뜨겁게 달아오르는 인터넷을 보며 한국의 시청자들이 살벌한 서바이벌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음을 깨닫게 됐다. 김건모의 재도전 정도에도 너그러움을 가지지 못하고 냉엄한 원칙과 룰의 잣대를 들이댈 만큼 한국의 시청자들은 서바이벌, 즉 경쟁과 생존의 게임에 매료당해 있음을 실감하게 됐다.

'서바이벌'을 내세운 프로그램에 '서바이벌'의 원칙을 들이대고 강조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시청자들 스스로가 이제 방송 시작한지 한달도 채 되지 않은 '나는 가수다'에 환호했던 이유, '나는 가수다'의 진짜 미덕은 살벌한 서바이벌만은 아니었다.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획일적인 음악 장르가 방송에서 판치는 가운데 '나는 가수다'가 보여준 가수다운 가수가 만들어낸 무대, 가수다운 가수가 부르는 노래에 열광하고 환호했던 것이다. '나는 가수다'의 최고 미덕은 가수가 자신의 기량과 열정을 쏟아내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했던 것이고, 시청자들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그 가운데서 순위를 매기고 탈락자를 가려내는 것은 물론 재미를 더하는 장치이기도 하겠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뮤지션들 나아가 방청단과 시청자들의 긴장감과 몰입을 더욱 극대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건모의 재도전을 결정하면서 이런 '나는 가수다'의 미덕이 사라지게 됐을까?

그렇게까지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김건모는 더욱 열정적으로 재도전을 준비할 것이고, 다른 가수들 또한 '한번 못하면 재도전하면 되지 뭐'라는 자세로 무대를 준비할 사람들은 아니라고 본다. 혹자들은 이번 재도전으로 앞으로 모든 가수가 재도전할 경우 한 명도 탈락하는 사람없이 몇 달 동안 이 라인업으로 진행될거라고 지적하지만 과도하고 과장된 우려다.

만약 김건모의 재도전이 '나는 선배다'라는 비아냥과 비난을 받는 것이 전적으로 타당하려면, 그것은 서바이벌이 아닌 '나는 가수다'의 진짜 미덕을 배반했을 경우다. 즉 누가 봐도 딴지를 걸 수 없을 정도로 김건모가 형편없이 노래를 불렀거나 다른 가수들에 비해 현저히 진정성과 열정을 보이지 않아 그 어떤 감동도 주지 못했을 경우다. 그럼에도 '선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니면 인정에만 이끌려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받았다면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

하지만 김건모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가 그런 평가를 받을만큼 형편없었을까? 아니다. 충분히 훌륭했고,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아, 노래를 저렇게 잘 부를 수 있구나', '진짜 가수는 저런 거구나'라는 걸 충분히 느끼게 해줬다.

열창이 끝난 뒤 김건모의 립스틱을 바르는 퍼포먼스를 두고 질책이 있긴 하다.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런 코믹한 퍼포먼스를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나았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퍼포먼스가 앞의 열창을 모조리 희석시킬 잘못은 아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예능에 익숙한 김건모의 장난기가 묻어난 해프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더구나 김건모 스스로도 충분히 민망해하지 않았나. 좀 더 너그럽게 보자면, '나 항상 그대를'를 부른 윤도현은 라이브에 단련된만큼 등수를 매기는 방청단에게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퍼포먼스와 편곡을 선보였다면, 김건모는 '나는 가수다'가 예능 프로그램의 간판인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라는데 더 착안을 했던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예능적 기질을 발휘한 것을 두고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질타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더군다나 재도전을 하기로 한 것은 '나는 가수다' 참여 가수들의 표현대로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김건모 스스로 재도전이 물의를 일으킬 만한 선택임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다. 그런 용기가 없다"는 윤도현의 말처럼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럼에도 김건모는 비난과 물의를 감내하고 다시 한 번 도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비록 박수를 보낼 일은 아니더라도 다음을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는 문제다.


'서바이벌'과 '오디션'은 TV 예능프로그램의 하나의 코드로 자리잡았고, 트렌드가 되었다. '나는 가수다'가 처음 기획될 때 제대로 된 음악을 들려주고(보여주고), 실력파 가수들의 건재를 주말 황금시간대에 증명해보이고자 했다. 물론 이것만이 아니라 거의 괴멸되다시피한 '일밤'을 부활시키 위해, 즉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서바이벌을 차용했다.

MBC는 충분히 재미를 봤지만 반대로 '서바이벌'이 방송 스스로에게도 독이 될 수 있음을 이번 김건모 재도전이 드러냈다. 꼴찌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준다는 것, 서바이벌 참가자들에게 이해와 양보와 배려를 얻어낸다는 것이 예전 같으면 오히려 '인간적인 면'으로 다가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온갖 서바이벌과 오디션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칼 같이 떨어트리고, 박 터지게 경쟁하는 걸 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가수다'는 자신이 내건 서바이벌에 스스로 발목 잡히게 됐다.


서바이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번 김건모 재도전에 터져 나온 아우성을 보며 그것을 상상하는 것이 더욱 마음이 편치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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