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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진과 길환영의 자유한국당 입당이 코미디인 이유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18. 3. 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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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일 길환영 전 KBS 사장과 배현진 전 MBC 아나운서이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자유한국당은 경사가 난듯 입당환영식을 열고 “자유한국당에 인재가 모이는 신호탄”이라고 자평했다.

특히 홍준표 대표는 이들의 영입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방송 탈취’에 대해 심판받아보겠다고도 했다. 말인즉슨 이들이 6.1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질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면, 이는 곧 ‘문재인 정부의 방송탈취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 될 것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반대로 낙선한다면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방송 정책을 지지한다는 것이 되겠다.

길환영과 배현진은 과연 문재인 정부의 방송 정책을 두고 국민적 판단을 받아 볼 만한 상징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일까.

먼저, 길환영.
길환영은 문재인 정부의 방송정책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길환영은 2012년 막바지인 11월, 그러니깐 이명박 정부 당시 KBS 사장이 됐다. KBS 사장의 임기는 3년이다. 따라서 곧 이어 치러질 대선에서 당선된 사람과 사실상 임기 전체를 함께 하는 것이 예정됐다. 

만약 당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면 길환영의 거취는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대선에서 대통령이 된 사람은 박근혜. 길환영의 3년 임기는 보장받은 것으로 보였다. 3년이 지나도 박근혜 정부가 계속될 예정이었으므로 잘하면 연임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길환영은 2014년 7월에 사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한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서부터 비롯된 KBS에 대한 세월호 가족 및 국민적 분노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하자, 박근혜 청와대는 자신의 충견이었던 길환영을 토사구팽시킨 것이다. 


KBS 사장의 임명 또는 해임은 KBS 이사회가 의결해 대통령에게 제청하면 대통령이 이를 재가하는 절차로 이뤄진다. 11명으로 구성된 KBS 이사회는 당시 7명이 박근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이 추천한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이 길환영에 대한 해임을 의결하고 박근혜가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길환영은 정부를 상대로 해임무효 소송까지 냈지만 법원은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결내렸다.

즉 길환영이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것은 곧 자신을 쫓아낸 정당의 품에 안긴 것과 같다. 자유한국당이 자신들이 해임시킨 길환영을 내세워 ‘방송탈취에 대한 심판을 받아보겠다’는 것은, 그래서 한마디로 코미디다. 만약 방송을 장악했던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말은 되지만.

그리고 배현진.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김장겸 MBC 사장을 해임한 것이 2017년 11월, 새 사장으로 최승호 PD가 임명된 것은 12월 7일이다. 그 다음날 배현진은 뉴스데스크 앵커에서 물러났다. 배현진은 무려 7년 동안 뉴스데스크 앵커를 하다 하차한지 딱 3개월 만에 MBC에 사표를 내고 자유한국당의 품에 안겼다. 

2009년 김재철이 MBC 사장이 된 뒤 9년 동안 MBC의 간판이자 얼굴이자 목소리였던 숱한 아나운서들이 소리소문없이 화면에서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 벌어졌다. 다수는 오욕의 세월을 견디고 견뎌 새로운 MBC과 함께 시청자 앞으로 돌아왔다. 오상진이나 문지애, 박혜진 등 그 과정에서 MBC를 떠난 아나운서들도 있었지만, 방송활동을 버리진 않았다. 그 참혹한 시절을 겪으면서도 정치권에 들어간 사람은 없었다. 


신경민, 김성수, 최명길 등 더 이상 MBC에 남아 있기 힘든 최고참급 기자 출신들 일부가 당시 야당에 들어가 이후 국회의원이 된 경우는 있지만, 앞길 창창한 젊은 아나운서 중에 그 누구도 정치에 몸담은 사람은 없었다.

배현진은 자유한국당 입당식에서 "정식 인사 통보도 받지 못하고 뉴스에서 쫓겨나듯 하차해야 했다"며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에서 말하는 '자유'라는 가치가 파탄에 놓인 것 아닌가 하는 걱정과 우려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배현진의 자유지만 과연 그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정말 물어보고 싶다.(자유한국당은 입당식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한 명 당 하나로 제한하고 이런 질문이 나오는 것 자체를 봉쇄했다)

추측컨대 배현진은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엄혹한 시간을 감당하고 견뎌낼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MBC의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승승장구하던 자신이 한 순간에 대기발령 상태에 놓이게 되고, 언제까지일지도 모르게 방송에서 자취를 감춰야 한다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 다른 수많은 선후배, 동료 아나운서들이 더 많은 시간 동안 절망 속에서 언젠가 올 날을 기다린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배현진의 화려(?)했던 날들>

(권재홍과 배현진)

(박용찬과 배현진)

(최대현과 배현진)

(정연국과 배현진)


배현진 자신의 입장에서는 악몽이나 다름없는 비극일테지만, 아나운서를 포함한 다른 수많은 선후배, 동료 MBC 구성원들이 해고, 정직, 부당전보, 징계, 유배를 당하며 최장 9년을 버티고 싸운 것에 비하면, 배현진이 100일도 채우지 3개월을 보내고 자유한국당의 품에 안긴 것은  코미디의 한 장면 같다.

아마도 배현진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자신을 방송에서 쫓아나게 만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상대로 폼나게 싸워보고 싶은 것 같다. 무엇보다 새로운 MBC에 대해 서슬퍼런 칼날을 맘껏 국회 정론관에서, 상임위장에서, 본회의장에서 휘둘러보고 싶은 꿈도 꾸고 있을 것 같다. 

과연 홍준표의 바람대로 문재인 정부가 심판받아 배현진에게 그런 시절이 열리게 될까, 아니면 봄날의 개꿈으로 끝나게 될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은데, 배현진도 길환영도 모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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