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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 유감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09. 3. 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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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동아일보 2면 하단 귀퉁이에 여차하면 못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을만큼 자그마한 크기의 '정정보도문'이 하나 실렸다.



별 생각없이 그냥 쓱 훓어보고 지면을 넘기려는 순간 이 정정보도가 지난 6일 동아일보의 외부필자 칼럼인 '동아광장'에 실린 칼럼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란 걸 보고, 머리 속으로 역시 훑어보고 슥~ 지나쳤던 그날 그 사람의 칼럼이 떠올랐다.



4일이 지난 뒤 정정보도문이 게재된 3월 6일 '동아광장'의 칼럼 <한국가요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사연>은 바로 변희재가 쓴 칼럼이었다.

'시작되는...' 표절·샘플링은 "대중문화사에 중요한 시사점"

변희재는 이 칼럼에서 1994년 발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노래를 예로 들며 '침체된 한류가 살아날 길'에 대해 썼다.

이원진과 류금덕이 듀엣으로 부른 '시작되는..'은 "니가 아침에 눈을 떠 처음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내가 됐으면, 내가 늘 그렇듯이~"라는 가사로 시작되데, 이 노래와 관련해서는 나 또한 추억이 적지 않지만, 그건 생략하겠다.(이 노래가 인기를 얻을 즈음 연애를 시작하던 사람이나, 짝사랑으로 가슴앓이 해본 사람들은 살짝 가슴이 아리는 추억 한 대목 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변희재는 '시작되는..'을 홍콩의 영화배우 장학우(장쉐유)와 필리핀의 가수 레진 벨라스케스가 듀엣곡으로 발표한 'In love with you'이 표절했다는 것, 그리고 미국의 머라이어 캐리가 발표하여 빌보드 1위를 차지한 'Thank God I found you'가 다시 장학우의 'In love with you'를 일부 표절한 것을 두고 "대중문화사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원진이라는 사실상 무명의 한국 작곡가의 노래가 표절과 샘플링을 거쳐 5년 사이에 홍콩과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 그리고 미국에서 1위에 오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만일 이원진이 살아 있었더라면 세계적 작곡가로 활동했을 것"며 이원진의 '작곡 실력'을 높이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변희재가 제시하는 한류 확산의 길

이후 '한류의 침체'와 '살아날 길'을 논하는 변희재의 글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인데, 어쨌든 변희재는 "최소한 미국시장만 놓고 볼 때 우리가 홍콩이나 필리핀, 인도, 태국보다 앞서 있다는 증거는 없다", "음악 분야에서는 필리핀의 활약이 눈부시다"며 남아시아 지역의 나라들이 미국에서 각광받는 현실을 언급하고, 갑자기 "일본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는 한류 현상의 원인으로 600만 명의 한민족 네트워크와 이웃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평화의 역사를 꼽았다""즉 아시아인에게서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만 한류가 지속되고 확산될 수 있다는 말이다"며 '한류 확산'의 해법을 제시했다.

변희재는 또 영화, 드라마, 음악 등 "자국 문화를 독점하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탄하며 "최소한 아시아대중문화센터, 아시아문화포털 등을 개설해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아시아문화 네트워크 국가가 될 때 침체된 한류도 살아날 것이며 다문화 정책도 힘을 받을 것"이라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들며 글을 마무리했다.

글 자체의 수준이 워낙 엉망이어서 사실 '비평'의 대상으로 삼기조차 민망하다. 애초 '시작되는..'은 왜 언급하고, 이원진에 대해서는 왜 안타까워 했는지 나의 머리로는 이해불가다. '시작되는..'처럼 아시아지역에서 표절이라도 될만한 노래가 나와야 한다는 걸까? 변희재에 따르면 미국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인도, 일본, 필리핀, 태국 등은 과연 '아시아대중문화센터', '아시아문화포털' 같은 것을 개설했을까?

변희재는 "아시아인에게서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만 한류가 지속되고 확산될 수 있다"는 당연한 말을 했는데, 내 생각에는 물론 그 나라의 대중문화를 폭넓게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겠으나, 그보다는 밤문화를 즐기는 한국 관광객들의 행태, 현지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현지처를 만들고 방치하는 기업인들 등 이른바 '반한정서'를 만들어내는 행태부터 개선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황영철씨는 왜 세계적인 작곡가가 못됐을까?

그런데, 변희재의 이글은 전체적인 내용을 평하기에 앞서 가장 초보적이면서, 무슨 의도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칼럼에서 핵심으로 삼았던 팩트를 틀리고 만다.
"살아 있었더라면 세계적 작곡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던 이원진은 동아일보가 정정보도에서 밝혔듯 '시작되는..'의 작곡가가 아닌 것이다.

변희재의 이 글이 동아일보에 게재되자 마자 같은 날, '自重自愛'라는 블로거가 '<동아일보> 변희재 칼럼에 대한 딴지'라는 글에서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동아일보 홈페이지에서도 'killtazzo'라는 네티즌이 6일 "기사든 칼럼이든 쓸려면 최소한의 정보 정도는 검색하고 쓰세요"라며 댓글로 지적했다. 'killtazzo'는 "황영철씨가 아마 아직 생존해계신걸로 아는데 세계적인 작곡가가 못된건 또 무슨 이유인가요?"라고 물었는데, 나 또한 변희재에게 간절히 물어보고 싶은 대목이다.

이 정도 수준의 칼럼을 쓰는 변희재는 '객원논설위원', '실크로드CEO포럼 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 이밖에도 '인터넷미디어협회 정책위원장', 미디어발전국민연합 공동대표' 등의 직함도 있으며, '대중문화 평론가', '미디어평론가' 등도 가끔 단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나라당에 의해 이른바 미디어법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기구'인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여당쪽 위원으로 추천되었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변희재 위원


자, 여기서 내가 굳이 이토록 적지 않은 분량으로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나온다. 지난 연말과 연초, 그리고 지난 2월과 3월 초 동안에 있은 1차 입법전쟁과 2차 입법전쟁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방송법 등 미디어법을 앞으로 100일 동안 논의할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위원 중 한 명이 변희재라는 건데, 과연 변희재에게 그만한 깜냥이 있을까?

내가 단 한가지 변희재에 대해 그나마 평가하는 것은 '포털권력화'에 대한 변희재의 끊임없는 관심인데, 애초 '포털권력화'에 대한 변희재의 관심이 시작된 대목에 있어서는 따지고 싶은 부분이 있고 내용에 있어서도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어쨌든 변희재는 거의 스토커 수준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포털권력화 문제에 천착해왔다. 그리고 나는 별로 평가하지 않지만 대중문화와 관련해 책을 내고 글을 쓰는 등 이 분야에 있어서도 객관적으로 전문성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 외에 나는 사실 이번에 논란이 되는 방송법과 신문법, 방통융합 등 쟁점이 되고 있는 미디어 관련 현안에 대한 변희재의 정책적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할만한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앞서 봤듯 변희재의 나름 전문분야라 할만한 대중문화에 있어서도 핵심적 팩트를 틀리지 않나, 논리마저 엉성하지 않나.

변희재의 서울대 미학과 선배인 진중권은, 자신을 비판하는 글과 발언으로 주가를 올리던 변희재에 대해 "듣보잡"이라며 "나랑 이걸(논쟁) 해가지고 장사를 할 생각이거든요.내가 어떤 입장을 취하든 걔는 반대 입장을 취할 거란 거예요. 의사소통의 진정성 자체가 없다라는 거죠"라고 평가한 바 있다.

부디 변희재가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 들어가서 모르는 얘기가 나오면 그냥 입이나 닫고 있길 바란다. 야당에서 추천한 사람이 어떤 입장을 취하든 반대 입장을 취하려 들거나, 괜히 한마디 했다가 기본적인 팩트조차 틀려 수모나 당하지 말고.

덧) 변희재가 자신이 대표였던 인터넷매체 '빅뉴스'에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여야 대리전 안돼" 라는 글을 썼다. 변희재는 현재 미발위가 '여야 대리전으로 변할 것'이라고 하는 언론들의 보도를 비판하며 "미발위의 성공 여부는 바로 우리 기자들의 손끝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이 글의 전반적인 취지는 대체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미발위의 성공'은 언론보도에 달린 게 아니라 한나라당의 태도에 달려 있다.
100일이라는 시간을 정해놓고 미발위를 '자문기구일뿐', '참고용일뿐'이라며 끊임없이 위상을 격하시켜 미발위가 어떤 합의를 이룬다한들 한나라당이 받을 가망조차 없는 상황에서 '잘해보자'는 것은 한가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다. 변희재는 "정당의 추천을 받은 인사로 구성되는 위원회는 정당의 하부조직이 아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한나라당에게 '미발위가 합의할 때까지 기다리고, 그 합의를 그대로 반영할 것'을 요구해보라. 그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 미발위는 그나마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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