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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학번 동아일보 간부의 독재 구분법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6. 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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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 어느 화창한 여름 한낮, 어느 대학생이 "무심코" 서울 시내를 나와 종로를 걷다가 졸지에 닭장차에 실려 경찰서에서 하루 밤을 보낸 뒤 각서를 쓰고 나왔다고 한다.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사복경찰에서 신분증을 줬더니, 그 사복경찰은 신분증을 낚아채 내달렸고, 따라갔더니 닭장차에 밀쳐졌고, 닭장차 안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로 이미 만원이었고, 그 어느 누구도 항의조차 못했고, 경찰서를 나올 때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했다는 어느 대학생.

이 대학생은 지금 동아일보에서 영상뉴스팀장을 하고 있는 박제균.

박제균이 쓴 6월 22일 동아일보 '광화문에서'


박제균은 자신이 끌려간 그 날 일이, "대규모 시위가 예상된다는 경찰정보에 따라 시위 잠재인력을 대량 소개시켜 말 그대로 시위를 '원천봉쇄'한 것"이었다며 "1980년대 초 군부독재정권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신문과 방송 등 어떤 언론매체에서도 하루 낮과 밤 사이에 일어난 대규모 인권유린사태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그런 게 바로 독재"라고 규정했다.

박제균에 따르면 "공개적으로 '독재'란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다면 그건 독재가 아니라는 반증"이란다. 즉 80년대에는 독재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정도여서 '독재'였는데, 지금은 '독재'라는 말을 할 수 있으니 '독재정권'이 아니라는 거다.

80년대, 전두환 독재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을까?
물론 '무심코' 시내에 나왔다, 영문도 모른 채 잡혀 간 박제균 같은 '대학생'은 그랬나보다. 하지만 박제균 같은 대학생과 함께 학교를 다니던 또 다른 대학생 중 누구는 학교 도서관 옥상에서 유인물을 뿌리고 '독재정권 물러나라'를 외치다 잡혀갔고, 또 누구는 자신의 몸을 던지며 '독재 타도'를 외치기도 했다. '독재'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으니 독재가 아니었나?

87년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던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 거리를 가득 매운 수많은 시민들이 '독재 타도'를 외쳤으니, 독재가 아니었나보다.

물론 독재를 독재라 말할 수 없었던, 그리고 말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다. '무심코' 거리에 나왔다 영문도 모르게 잡혀간 박제균 같은 대학생 말고도,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신문과 방송이었다. 군사독재정권의 나팔수였고, 어용매체였던 그들 중 누구는 감히 '독재'를 '독재'라 말할 수 없었을테고, 또 누구는 안정적 신분과 출세를 보장해줬던 독재정권을 오히려 고마운 존재로 여겼을 거다.

지금 이명박 정권을 두고 '독재'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미네르바처럼 잡혀갈까봐 두려서워 독재라 말 못하는 사람이 있을테고, 조중동처럼 부와 권력을 가져다줄 이명박 정권과 이미 한몸이라서 독재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지금은 박제균이 80년를 돌이켜 '독재의 기억'을 이야기하지만, 과연 80년대 당시 대학생 박제균에게 전두환 정권은 독재정권이었을까?

아니었을 것 같다. 박제균이 독재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말하지 못했다면, 무심코 거리에 나가는 게 아니라 '독재 타도'를 외치기 위해 거리에 나가보지 않았다면, 그저 출세를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만 할 줄 알았지, 그 도서관 옥상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독재 타도'를 듣지 못했거나 귀를 막고 있었다면, 적어도 그에게 전두환 독재정권은 '독재'가 아니었을 거다.

만약 박제균이 80년대를 그렇게 살았다면, 2009년 MB 독재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 연인과 데이트하러 명동에 나갔다가 시위를 원천봉쇄하려는 경찰에게 잡혀가는 일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경찰이 그 연인에게 "왜 하필 데이트를 명동에서 하냐?"며 핀잔을 주는 것도 오히려 '친절한 경찰'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길거리에 나선 성직자들이 경찰에 구타당하고(경찰, 천주교 신부들에 '막가파식' 폭력행사), 정부정책을 비판한 언론인이 잡혀가는 일 따위는 반정부적인 불순세력의 일탈행위쯤으로 볼 수도 있겠다. 80년대 무심코 시내에 나가던 어느 대학생과 같이 학교를 다니던 누군가의 행위가 그렇게 치부되었듯이.

덧) 박제균은 "'불도저 대통령'에게선 좀처럼 강한 신념과 비전을 느낄 수 없다. TK 독식 인사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 물결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도 읽힌다"고 지난 번 칼럼에서 쓴 적이 있다며 "현직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쓸 수 없는 게 독재"라고 말했다. 저 정도를 강도 높은 '정권 비판'이라고 여기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80년대 동아일보 한 번 찾아보시라. 저 정도 수준의 칼럼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80년대는 독재가 아닌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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