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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폭탄, but 조선일보엔 장어낚시의 낭만이

조중동 잡다구리 후비기

by hangil 2009. 7. 1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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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정말 말이 안나온다.
남부와 중부를 번갈아가며 한반도가 물폭탄에 휩싸인 지금, 조선일보엔 "폭우에 강물 뒤집히자" "장어 낚시꾼들 물때 만"났다며 한강에 장어낚시 하러 나온 낚시꾼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그냥 실린 게 아니라, 한 개 지면을 대부분 덮을 정도로 크게 실렸다. 크게 실리기만 한 게 아니라 본지 11면 사회면에 실렸다.

7월 16일 조선일보 11면

제목은 <장대비 오면 한강 가지요 장어 잡으러…>다.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왔다! 왔어!"
13일 오후 5시쯤 서울 영등포구 당산철교 밑 한강 둔치, 4m 길이 릴낚시대 끝이 눈 깜짝할 사이 직각으로 휘더니 부르르 요동쳤다. 두 손으로 낚싯대를 움켜진 김XX씨가 상체를 뒤로 젖혀 낚싯줄을 잡아당겼다. "걸렸다! 힘 좋다!"


뒤 이어,
낚시에 잡힌 장어의 모습, 그걸 보러 온 사람들의 모습, "날뛰는 장어 꼬리에 맞느라 김씨 팔뚝에 휘초리 맞은 것처럼 벌겋게 자국"이 난 이야기, 그 장어를 사러 온 중년 부부와의 흥정이 실렸고, 조선일보는 "여름 비로 불어난 한강에서 민물장어 낚시가 한창"이라고 전한다.

기사글이 아주 재미나고 생생하다.

먹구름 아래 흙탕물이 된 강물이 둔치 바로 밑까지 불어나 콸콸 흘렀다. 그 속에 통통하게 살진 장어들이 뛰어 노는 것이다.


그 살진 장어들을 잡는 재미가 얼마나 좋겠는가?
조선일보는 친절하게도 "국산 민물장어는 한강, 임진강, 금강 등에 주로 산다. 필리핀 심해에서 부화해 중국, 일본, 한국으로 헤엄쳐 오는 '앙길라 자포니카' 종"이라며 장어의 종류까지 알려준다. 그 장어들이 "장마철에는 물살이 느린 강가로 헤엄쳐 나온다"는 건데, "요컨대 장마철은 장어 낚시의 계절인 것"이란다.

강태공들이야 그럴 수 있다. 낚시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잡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물폭탄이 떨어져 난리가 나고 이재민이 생겨도 낚시대를 들고 강물이 불어난 한강으로 달려갈 수 있다.

그런데, 이른바 '1등신문'이라는 조선일보가, 어떻게 이렇게 보도할 수가 있을까?

서울에는 잠시 비가 그쳤다고 하지만, 오늘도 남부 지방에는 집중호우로 도로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하는데...
- 영호남은 물폭탄 맞아 비와 전쟁 치르는 중..
- 부산은 지금 물바다

물폭탄에 사람이 죽어나가고, 이재민이 발생하고, 논이 잠기고, 축사와 비닐하우스가 물에 잠겨, 그 피해로 눈물 짓고 한숨 짓는 사람이 곳곳에 있는데, 어떻게 신문에서 그런 물폭탄을 두고 낭만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토록 아름답게, 이토록 재미나게, 이토록 낭만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

정말 이해가 안간다. 왜 이같은 기사가 이렇게나 크게, 지면을 거의 덮을 정도로 실려야 하는지. '가십'이라면 또 모르겠다. 본지가 아닌 섹션지 그 중에서도 레저 등을 다루는 지면에 '물폭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도 있다'며 그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면 또 모르겠다.

물폭탄으로 가족과 이웃과 동료를 잃고, 가재도구를 날리고, 천금같은 농작물과 가축들을 잃은 사람들이 조선일보의 이 기사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저 사진에 장어를 들고 미소 짓는 사람처럼 즐거워할까? 재밌어할까?

조선일보에게는 더 이상 고통받고 피해받는 이웃의 마음 따위를 생각할 여유도 필요도 없어진 걸까?

참고로 아래는 오늘 한겨레 '사회면'(9면)에 실린 사진이다.

7월 17일 한겨레 9면

"폭우가 휩쓸고 간 한강공원"이라는 제목으로 "서울·경기 등 중부지방에 장마가 소강상태를 보인 15일 오후 서울 한강시민공원 반포지구에서 서울시 직원들이 폭우로 물에 잠겼던 공원 일대에서 진흙을 쓸어내는 청소를 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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