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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불 지폈다는 조선, 독재타도 선봉이었다는 동아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10. 2. 23.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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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동아일보가 '민주혁명 참뜻 살리기'를 한다고? 참으세요>라는 포스팅을 올렸다.

4.19혁명 50주년이 되는 올해, 창간 90년을 맞았다는 동아일보가 "민주혁명 참뜻 살리기, 동아일보가 함께합니다"라며 기념행사 같은 것을 준비한다고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싣고, 나아가 "총탄에 맞선 민주의 필봉…동아는 독재타도 선봉장이었다"는 제목까지 뽑았길래 오그라든 손가락을 겨우겨우 펴 글을 썼다.

2월 16일 동아일보 4면


그런데 어이구, 오늘은 조선일보까지 나섰다. 

조선일보 역시 창간 90년을 맞아 연재중인 '격동의 역사와 함께 한 조선일보 90년' 시리즈로 오늘자 18면에서 '[15] 민주주의 염원 담아내다'를 실었다.

메인 기사의 제목은 <이승만 권위주의에 맞서… 민권운동 이끌다>였다. 기사본문을 보자.

조선 왈,

 "일제하에는 국권회복, 광복 직후에는 국가건설에 힘을 기울이던 조선일보는 1950년대에 이르러 이승만의 권위주의 정부에 맞서는 민권운동의 선봉에 서게 됐다"

2월 23일 조선일보 18면


몰랐다. 동아일보는 '독재타도의 선봉'에 서고, 조선일보는 '민권운동의 선봉'에 섰는지를. 나름대로 사학과를 나와 역사공부를 조금은 했지만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선봉장들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였는지는 정말 몰랐다. 아무래도 역사공부를 다시 해야 할 듯 싶다.

이쯤해도 오그라든 손발을 펴기가 쉽지 않았는데 다음 기사를 보고서는 속에서 쓴물까지 올라오는 듯 했다.

"'비밀 논설위원' 최석채, 4.19 불 지펴"라...

2월 23일 조선일보 18면


물론 최석채 선생이 쓴 <호헌 구국운동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라는 조선일보 사설은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를 비판하며 "사는 길은 오직 호헌 구국의 대의를 내걸로 전체 국민과 더불어 투쟁하는 국민 운동 전개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을 자각한다"고 호소하는 등 4.19 혁명의 기폭제 중 하나로 평가받을 만한 글이긴 하다. 그리고 최석채 선생은 존경받는 언론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최석채 선생을 내세워 마치 조선일보가 4.19 혁명 과정에서 대단한 역할을 한 것처럼 내세울 건 아닌 것 같다.

조선일보 기자를 지내고 김영삼 정권 당시 노동부장관을 지낸 남재희 선생이 2000년 '관훈저널'에 쓴 글을 보면, "당시의 사회분위기나 언론의 분위기는 자유당 정권에 대한 비판 또는 저항 일색이었다. 금년 IPI(국제언론인협회)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언론자유영웅 50명 가운데 한 분으로 선정된 고 최석채(崔錫采) 조선일보 주필은 그 무렵 '호헌구국운동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는 사설을 써서 유명해졌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그랬다"고 회고했다.

그렇다고 해서 최석채 선생이 쓴 글의 가치를 폄훼할 건 전혀 없다. 다만, 최석채 선생이 1968년 '기자협회보'에 쓴 글을 보면 과연 지금의 조선일보가 최석채 선생을 내세워 '4.19'가 어떠니 떠드는 게 얼마나 가관인지 알 수 있다는 거다.

"한국의 언론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이상으로 경영주의 손에 의해서만 움직여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전까지 한국 언론이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양상의 시련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 '포스트9' <[05월 03일] 2000 IPI, 최석채 선생 언론자유영웅 선정> 참조

여기서 말한 '경영주'가 누군가? 조선일보의 '방가'를 이야기함이요, 동아일보의 '김가'를 이야기함이다. 1968년에 이미 최석채 선생은 한국 언론, 특히 신문이 족벌사주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고를 한 것이다.

지금, 방씨 족벌체제의 강고한 틀 안에 갇혀 있는 조선일보가 이런 최석채 선생을 내세우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거기다, '민권운동의 선봉'이었다니, '민주주의 염원을 담아냈다'니 떠드니, 어찌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고 배기랴.

어제(2/22) '4.19민주혁명회'와 '5.18기념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3.15의거기념사업회', '6.3동지회' 등 민주화운동 관련 8개 단체는 "현재는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위기"라며 올해를 '민주화운동 계승의 해'로 선포했다.

2월 23일 한겨레 1면


권위주의 시절, 독재정권 시절 직접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여전히 계승하겠다는 분들은 지금을 '민주주의의 위기'로 규정하고 "민주화운동 정신의 부활과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을 담아" '민주화운동 정신 계승의 해'를 선포하는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는 눈을 닫고, 귀를 닫고, 입을 닫고, 과거를 되새김질하고 있다. 자격도 없는 것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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