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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과 최문순, 거듭된 악연의 결말은?

코후비기(잡설)

by hangil 2011. 3. 2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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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4.27 재보궐선거에서 강원도지사 후보로 맞붙게 될 가능성이 큰 엄기영과 최문순.

이 두사람의 과거 이력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어떻게 비슷한 인생 경로를 밟아오면서 이렇게 다르게 살았을까 인물을 탐구하는 분들에게는 대단히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 아닐까 싶다.

두 사람은 같은 고등학교(춘천고)를 나왔고, 같은 회사(MBC)를 다녔으며, 같은 직업(기자)을 가졌다. 그리고 둘 다 같은 회사의 사장을 했으며, 사장을 그만둔 뒤에는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이제 같은 지역 도지사를 놓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을 앞두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약 80~90% 싱크로율을 보이는 인생 경로를 밟아온 두 사람이지만, 자세히 지나온 걸음들을 살펴보면 두 사람은 극과 극 정도는 아니더라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모습으로 살아왔다.

먼저 둘 다 MBC 기자 생활을 했지만 그 내용이 판이하게 달랐다.

MBC <뉴스데스크> '카메라출동' 기자 시절 최문순


최문순은 사장이 되기 전까지 밑바닥 기자 생활에서 '시사매거진 2580' 부장에 이르기까지 사회 현안에 천착하고 고발을 일삼는 현장 기자의 삶에 더 해 MBC 노조위원장과 산별노조인 초대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언론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이에 비해 엄기영은 사장이 되기 전까지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른바 주류 엘리트의 길을 밟았다. '뉴스데스크' 앵커가 대표적이고, 버버리코트를 입고 파리 한복판에서 리포트하는 특파원 역시 순탄하게 화려한 기자의 길을 걸어온 엄기영의 지난 시절을 상징한다.

파리특파원 시절 엄기영


최문순은 MBC 노조위원장 시절 강성구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이끌다 해고되기까지 했지만, 엄기영은 매일밤 9시면 앵커석에 앉아 시청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2005년.

MBC의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MBC 사장 공모에 나서는데 엄기영, 최문순 두 사람의 이름이 동시에 거론됐다. 엄기영은 MBC 특임이사, 최문순은 '시사매거진 2580' 부장이었다.

당시 MBC는 한창 개혁의 바람이 불던 와중이었다. 특히 2004년 연말 이른바 '명품백 로비' 사건이 터지면서 MBC 내부 개혁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었다. 따라서 MBC 안팎에서는 차기 MBC 사장으로 MBC 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이 요구되었다.

MBC 내부에서는 노조위원장을 하며 해고까지 당한 경험이 있는 최문순이 급부상했고, 엄기영과 함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당시까지도 40대에다 부장인 사람이 MBC 최고 경영자로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방문진이 사장 후보를 공모한 결과 엄기영은 최종 공모에 응하지 않았다.

공모 마감일 "좋아하는 후배와 경쟁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이전투구가 될수 있다. 기자의 초심으로 돌아가 끝까지 기자로 남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응모를 철회한 것이다.

당시 엄기영의 선택을 두고 '선의의 양보'로 이해하려고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시 볼 수밖에 없다. 사실 엄기영이 2005년 사장에 응모했더라도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만큼 최문순에 대한 MBC 안팎의 지지가 컸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이왕 되지 않을 거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모양새라도 좋게 결정했을 걸로 판단된다.

어쨌거나 그리하여 일각에서는 '무혈 쿠데타'로까지 불릴 정도로 최문순이 MBC 사장이 되고, 주요 보직에 40대를 적극 앉히면서 MBC 개혁 작업에 나선다. 최문순이 MBC 사장으로 있던 동안, 특히 2005년 한해 MBC는 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뜻하지 않은 사건, 사고 그것도 대형사건들이 잊혀질듯 하면 터졌다.

'생방송 음악캠프'에 출연한 인디밴드의 공연에서 알몸노출이 벌어지질 않나, 상주에서 무대가 무너지질 않나, 급기야 연말이 되어갈 무렵 '황우석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MBC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김재철이 들어와 폐지한 'W'가 만들어졌고, '내 이름은 김삼순', '굳세어라 금순아', '거침없이 하이킥' 등 잘나가는 프로그램도 만들어냈다. 당시 'MBC에는 3순이 있다, 김삼순, 나금순, 최문순'이라는 유머가 돌기도 했다. '무한도전', '황금어장' 등 지금도 예능을 주름잡고 있는 프로그램들 역시 최문순이 있던 시절 꽃이 피기 시작했다.

2005년 MBC의 금순, 삼순, 문순


2008년 최문순은 다사다난했던 MBC 사장직을 내려놓고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오고, 최문순의 뒤를 이어 엄기영이 MBC 사장이 됐다. 2005년 사장 공모를 철회할 때부터 이미 차기 사장은 엄기영으로 내정된 거나 다름없었는데 엄기영이 MBC 사장이 되어서 한 일은 뭘까?

'무한도전', '놀러와', 황금어장' 등 원래 있던 일부 예능 프로를 제외하고 MBC 프로그램의 경쟁력은 거의 바닥으로 추락했다. 특히 드라마는 가히 안습 수준이었다. 여기에 'PD수첩' 4대강편 방송보류도 벌어지고, 방문진에 의해 끊임없이 휘둘리다 결국엔 쫓겨났다.

최문순이 사장 시절 일어난 일들은 뒷수습이 중요하고 재발방지가 중요했다면, 엄기영이 사장일 때 일어난 일들은 전적으로 사장의 책임에 속하는 경영의 문제였다. 엄기영에겐 그저 'MBC 장악'을 막는 방패막이 정도를 기대했지만 엄기영은 이마저도 하지 못하고 후배들에게 '화이팅'을 외치며 짐을 떠넘기고 중도하차했던 것이다.

방문진에 의해 사퇴당한 날. 분노한 이근행 MBC노조위원장 옆에서 난감해하는 엄기영


이제 2011년...

그리고 엄기영은 자신을 MBC 사장에서 물러나게 했던 MB의 품에 안겨 강원도지사가 되려고 나섰다. 그러자 이번엔 최문순이 아직 임기가 남아 있는 국회의원을 그만 두고 엄기영을 쫓아 강원도로 달려갔다. 한나라당과 엄기영의 만남을 "그야말로 야합, 기회주의의 전형"이라며 "강원도를 지키겠다"고 간 것이다.

이광재 전 지사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가 지사직을 잃게 된다면 강원도지사로 엄기영이 유력하다는 여러 조사 결과가 분석이 있었다. 이런 엄기영을 민주당에서도 러브콜했지만 엄기영은 한나라당으로 갔다. '무색무취하다'는 평을 받아온 엄기영이 이번에는 확실히 커밍아웃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파란 점퍼를 입고 방송에 출연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동안 강원도지사는 엄기영이 이미 차지한 것처럼 보였다. 이광재 지사가 지사직을 잃고나자 더욱 그런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최문순이 의원직을 버리고 나서자 전혀 딴판의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박빙의 판세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짐작컨대 엄기영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악몽과도 같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온갖 무리수가 등장하고 있다. 강원도에 온 박근혜에게 인사 한 번 해보려고 박근혜 지지자에게 저지당하는 봉변을 당하질 않나, 'PD수첩'을 폄하하질 않나, 심지어 '좋아하는 후배와 경쟁하면 이전투구가 될 수 있다'며 스스로 최문순에게 양보해놓고 이제와 "최문순 후보는 MBC노조위원장과 언노련 위원장을 역임한 뒤 내부 직급이 '부장 대우'에 불과했음에도 MBC사장으로 전격 발탁된 전례 없는 파격인사의 수혜자"라고 비난과 인신공격을 퍼붓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아마도 2005년의 양보가 본심에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차기에 대한 노림수였던 모양이다. 40대 '부장 대우' 직급이 파리 특파원에 뉴스데스크 앵커를 거친 '특임이사'보다 더 MBC 사장에 유력한 걸 보며 얼마나 속으로 절치부심했을까? 특임이사 다음은 '사장'이라고 계획했겠지만 일단 2005년엔 좌절되고 말았다. 당시 엄기영에게 최문순은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2011년. 2005년과 같은 양보 아니 패배는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다시 등장한 '최문순'이라는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고, 파란 점퍼를 입은 보람도 얻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갓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 벌써부터 갈 데까지 간 '막장 정치인'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과연 4월 27일 엄기영에게 '최문순'이란 악몽은 현실이 될까, 아니면 꿈으로 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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