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페일린 골탕먹인 프로그램, 우리도 가능할까?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8. 11. 3. 13:51

본문

미국 대선 투표일이 하루 앞(현지시각)으로 다가왔다. '별 이변이 없는 한 오바마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신문과 방송에 넘쳤났는데, 그 가운데 나의 눈길을 끈 소식 하나.

매케인의 런닝메이트인 공화당 부통령 후보 사라 페일린이 사르코지를 흉내 낸 캐나다의 코미디 프로그램의 장난 전화에 '낚였다'는 내용의 기사다.

페일린, 가짜 사르코지 전화에 낚였다
캐나다 코미디언이 장난… "8년뒤 대통령 될 것" 흥분 반응
미국 공화당의 세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사진)가 캐나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장난전화에 속아넘어가 웃음거리가 됐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2일 보도했다.
페일린 후보는 지난 1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 전화를 건 사람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가장한 캐나다 퀘벡주의 코미디언 세바스찬 트루델이었다. '가짜 사르코지'는 통화 내내 국가지도자의 발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농담을 했지만, 페일린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동물 죽이기를 아주 좋아한다. 생명을 빼앗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며 사냥을 같이 가자는 제안에 페일린은 "함께하면 즐거울 것 같다. 일석이조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게 대답했다. '일석이조' 농담은 딕 체니 부통령이 2006년 사냥 도중 동료를 쏴 부상을 입힌 데서 유래한 것이다.
"캐나다의 스티브 카스 총리는 어떤가"라는 질문에는 "아주 잘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현 캐나다 총리는 스티븐 하퍼이며, 스티브 카스는 가수 이름이다. "당신이 알래스카에서 러시아를 볼 수 있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집무실에서 벨기에가 보인다"는 농담에도 페일린은 호응했다. 장난전화로 외교적 상식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셈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도 대화의 소재로 등장했다. 페일린이 먼저 "개인적으로 당신은 물론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가짜 사르코지'는 "브루니가 '밤일'은 끝내준다"면서 "신곡으로 '돼지 입술에 립스틱'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대답했지만 페일린은 알아듣지 못했다. 신곡의 제목이 프랑스어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돼지 입술에 립스틱'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에 지명한 공화당을 비판하며 사용해 논란이 됐던 표현이다. AP는 "대통령이 된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에 "아마 8년 후"라고 말한 페일린의 답변에서 그의 권력의지가 가볍게 엿보였다고 전했다.
이 방송에서는 그동안 사르코지 대통령을 비롯해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과 가수인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을 속이는 데 성공했다.

(출처-경향신문)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질문을 받고서도 끝내 알아채지 못한 페일린의 어리숙함이 재밌지만, 더더욱 재밌는 것은 한 나라의 대통령, 그것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강대국 프랑스의 대통령을 흉내내고, 심지어 선거 중에 있는 세계 일류 초강대국 미국 집권당의 부통령 후보에게 장난 전화를 걸 수 있는 캐나다의 코미디 프로그램 진행자들이다. 아니 재밌다기보다는 부럽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페일린을 상대로 장난전화를 한 캐나다의 라디오 방송 CKOI 홈페이지)

페일린을 상대로 "동물 죽이기를 좋아한다, 함께 사냥하자"라거나, 사르코지의 아내 부르니가 '신곡으로 '돼지 입술에 립스틱'이라는 곡을 당신을 위해 작사했다'고 하는가 하면, 포르노 잡지인 '허슬러'가 페일린과 닮은 포르노 배우를 내세워 패러디한 '포르노 영상'을 만든 것을 두고 "당신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사랑합니다"라고까지 했지만, 페일린은 그저 좋아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뿐이었다.('허슬러'의 패러디 또한 대선 분위기에 편승한 상업적 의도의 묻어가기이긴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거의 무한대로 보장되는 것은 역시 부럽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포르노 잡지 '허슬러'의 페일린 관련 패러디 포르노 소개-모자이크 처리는 본인이 하였음, 허슬러가 이 정도를 모자이크하지는 않겠죠? ^^;)


그러면서 드는 생각... 우리나라엔 이처럼 '쎈' 풍자와 정치인을 상대로 대놓고 장난질치며 대중을 후련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라는 왠지 모를 서글픔..

내가 보건대 현재 우리나라의 방송 중에 가장 높은 수위의 정치풍자는 뭐니뭐니 해도 MBC의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다. 특히 최근에는 '대충토론' 코너에 MB 성대모사까지 등장시켜 직설적이고 강도높은 풍자를 쏟아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대충토론'을 들으면서 '청와대가 이걸 듣는다면 압력이 장난이 아니겠는걸', '없어지는 거 아냐'라는 생각부터 드는 건 왜일까?

실제로, 이것 못지 않게 강도높은 풍자를 쏟아냈던 KBS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시사난타'는 '낙하산 사장', '관제사장'이 KBS에 들어서면서'시투'의 사실상 폐지가 확정되어 없어질 가능성이 99.99999%다.

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우리나라의 방송에서는 정치풍자, 시사풍자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기 힘들다.

페일린을 골탕 먹인 캐나다의 라디오 방송과 비슷한 포맷이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송되고 있는데(바로 '더 폰(The Phone)'), 이것은 그야말로 포맷만 비슷할 뿐 야시꼴랑한 연예인 골탕먹이기에 불과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말 김혜수와 목소리는 물론 말씨까지 빼다박은 어떤 여성 출연자가 등장하지만, 그 목소리로 기껏 하는 거라고는 다른 출연자들, 즉 성대현이나 고영욱, 신동욱과 '가까운' 지인이랄 수밖에 없는 연예인들 골리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고, '무릎팍도사'... 연예인을 넘어 이른바 사회저명인사들까지 출연시키는 놀라운 섭외력을 보이고 있지만, 가슴 뻥 뚤리는 날카로운 질문이나 풍자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저 그동안 공개하기 어렵거나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개인사를 '날카롭게', '직설적으로' 들춰내는 데 그치는 것이다.(물론 그 자체가 '무릎팍도사'의 남다른 '미덕'이기도 하다)

더욱 암담한 것은 이른바 '사이버 모욕죄'니 뭐니 떠들면서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위축시키는 이놈의 사회 분위기에서 캐나다의 그런 프로그램이 가능키나 한 것일까라는 생각은 드는 것. 만약 어떤 프로그램에서 그런 '짓거리'를 했다가는 방송사에도 '공안정국'의 피바람이 당장 불어닥치지 않을까?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