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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락씨, 30주년 연극 약속 기억하시죠?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9. 2. 1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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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락 씨, 잘 지내시죠?
아니, 이런 인사가 무색할만큼 잘 지내시는 거 이미 압니다. ^^
요즘 최양락 씨의 맹활약, 정말 반가운 마음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습니다.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2006년 11월경 MBC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아래의 기사를 쓰기 위해 인터뷰를 하러 갔더랬죠. 언뜻 기억이 나십니까? ^^

당시, (지금도 여전히 하고 계시는) <최양락의 재밌는 라디오> 스튜디오로 찾아갔었지요. 그때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찢어진 청바지, 그리고 가죽재킷을 입고 방송을 진행하던 최양락 씨의 모습이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평소 너무나 좋아하는 코미디언이었고, 팬의 한 사람으로서 '딴따라'의 끼와 포스가 물씬 풍기는 모습에 '역시, 최고야'라고 속으로 혼자 생각했지요.

과거 회상은 일단 줄이고요. 요즘 방송3사를 종횡무진하면서 입담과 '최양락의 끼'를 맘껏 펼치는 모습을 보며, 반가움과 함께 약간의 우려라면 우려랄까, 혹시 잊고 계신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물론 이 글을 최양락 씨가 직접 보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

방송과 각종 매체들이 '왕의 귀환'이라며 '최양락의 방송컴백'을 호들갑스럽게 다루는 게, 그 시작이 <야심만만-예능선수촌> 1월 5일 방송이었으니, 이제 한달이 좀 넘어가네요. 그 짧은 시간 동안 최양락 씨 개인적으로도 우리나라 방송 예능판에도 참 많은 변화가 생겼네요.


(SBS <야심만만> 1월 5일 방송)


최양락 씨와 더불어 이봉원, 김정렬, 양원경 등 한때 시대를 주름잡았던 코미디언들의 모습을 TV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됐고, 혹자들은 박미선, 이경실, 한성주 등 이른바 '아줌마'들이 이끈 2008년 예능계가 '줌마 시대'였다며, 2009년에는 '저씨 시대'가 펼쳐질 거라 예견하기도 하더군요.

근데, 말이죠. 사실 저는 '왕의 귀환'이라니, '컴백'이라니 '최양락의 등장'을 두고 떠드는 요란스러운 분위기가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최양락 씨가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직접 밝혔다시피 최양락 씨 본인은 신변잡기가 중심인 토크쇼에 출연하지 않았을 뿐 호주에서 돌아온 이후 계속 방송과 함께 했었는데 말입니다.

최양락 씨를 두고 진정한 '왕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쓰자면, 호주에서 돌아와서 iTV를 거친 뒤 했던 '알까기'겠죠. 시중에 알까기 게임 붐을 일으키고, 그 덕에 바둑프로 진행까지 맡지 않았습니까? 그 뒤로도 <코미디 하우스>에서 '삼자토론', '웃지마' 등 MBC 코미디의 부활을 위해 끊임없는 시도를 아끼지 않았고, 그 뒤로도 <폭소클럽>과 <폭소클럽2>에서는 올드 코미디언들과 올드 스타들의 방송 복귀 계기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었지요.

TV 브라운관이 아니더라도, 최양락 씨는 이미 <재밌는 라디오>에서 퇴근길 시민들의 귀를 거의 독차지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최근 들어 라디오에서 목소리만 듣다 TV에서 만나게 된 중년층들에게는 최양락 씨의 맹활약이 더 없이 반가울테지요. 10~20대에게는 '우와 저렇게 재미난 사람이 있었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할 만 하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최양락 씨가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TV 토크쇼들은 어째 최양락이라는 코미디언 썩 어울리는 궁합이 아닌 듯 합니다. 특히 전격적으로 메인MC가 된 <야심만만>을 몇 회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하게 됩니다. '최양락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젖꼭지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만개한 최양락의 입담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대한민국을 사로잡았지요. 최양락 씨의 입담에 대해서야 그 누가 딴지를 걸겠습니까? 최양락 씨가 직접 이야기했지요. '이렇게 말만 하는 토크라면 밤도 새겠다'고. 스스로 몸치임을 알아서 벌칙을 받거나, 개인기를 펼쳐야 하는 예능에는 차마 출연하지 못했지만 입담으로 승부하는 토크는 자신있다고.

그런데요. 제가 보기에 그걸로 '최양락의 제2전성기'를 펼치기엔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최양락 씨도 출연한 바 있는 MBC <명랑히어로>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추억을 판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명랑히어로나 야심만만이나, 해피투게더나 크게 다를 바 없겠지요. 최양락 씨에게 방송을 통해 팔려고 내놓을 수 있는 추억이 아무리 많다해도, 그건 금방 고갈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솔까말' <야심만만>을 보건대 방송 내내 큐시트를 뒤적거리는 최양락 씨는 토크프로그램 메인 MC로서 강호동을 절대 따라갈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그냥 그 자리는 강호동과 유재석에게 맡기시는 게 어떨까라구요. 최양락 씨는 이런 토크쇼에는 가끔씩 나와 김구라 같은 사람은 백날이 가도 할 수 없는 수준높은 입담을 선보여주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계속 하다보면 적응이 되겠지요. 어쩌면 강호동, 유재석 못지 않은 토크 진행자, 버라이어티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 자리가 최양락 씨가 원하던 자리가 맞나요?

'최고(最高)이자 최고(最古)의 현역 코미디언 최양락'은 지금 한국에 존재하는 그 어떤 코미디언보다 코미디에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방송에서 대세가 된 '공개코미디' 형식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시기도 하구요.

저랑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셨죠.


"쉽게 얘기해서 요즘 개그프로는 젊은 개그맨들이 누가 누가 더 잘 웃기나를 겨루는 웃기기 자랑대회죠. 약발 떨어지면 그냥 폐기처분당하는. 완전히 애들 기력을 소모하는 형식이에요. 그러니깐 인기 있던 애들이 어떻게 하다보니 없어졌어요.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는 직업이 개그맨이고 웃기려고 나온 건 맞습니다. 그런데 '자 여러분들 지금부터 이 사람이 웃길 거에요' 이렇게 쌈을 시키면 그게 참 얼마나 어려운 무대가 되겠습니까?"


라고. 개그프로를 대하는 방송국에 대해서도 직설적인 비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개그에도 공개방송 같은 형식이 필요해요. 신인들의 데뷔무대가 될 수 있는 거죠. 근데 모든 방송국이 그 형식을 제일 쉽게 생각하는 게 문제에요. 젊은 애들한테 그런 무대가 아닌, 진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줘야 되거든요. 돈 문제도 있습니다. 제작비가 적게 들어가요. 공개방송에서는 주로 신인들이 나오잖아요. 경력이 오래된 코미디언 한 사람 쓸 돈이면 신인들 대여섯 명은 쓸 수 있으니깐 방송국에서는 밑질게 없어요. 개그맨들 체력 소모되고 개그의 앞날이 어둡고 그런 건 방송국에서 신경 안 씁니다."


라구요.

이런 현실이기에 최양락 씨는 더더욱 현장을 떠나지 않고 여전히 아이디어를 갈고 닦아오지 않았습니까?

"아, 정말 고통스러워요. 우리가 육체노동해서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는 건 아니지만, 못 웃겨서 좌절할 때 스트레스는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그리고 더 힘든 건 갈수록 기대치가 높아진다는 거죠. 그리고 후배들, 말이 후배지 어찌 보면 경쟁자에요. 걔네들보다 못 웃기면 도태되요. 견뎌내려면 아이디어를 짜내야 되요. 특히 요즘은 경쟁에서 이긴 사람만 남으니깐 그런 게 굉장히 어려워요"라면서도 TV보다가, 책보다가, 사우나에 가서도 머리속으로는 계속 아이디어 생각만 한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요즘, 최양락 씨의 아이디어가 토크 쪽으로만 쏠려 있는 건 아닌지 살짝 우려스럽습니다.

최근 최양락 씨가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난 콩트코미디만 하면 천년만년 간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렇게 서서히 기억에서 사라졌다" "유행만 맞춰지면 잘 할 수 있다"고 말한 대목을 보니, 이른바 '코미디'가 아닌 '예능 중심'의 유행에 스스로를 맞춰가고 있다는 생각이 더욱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최근의 대세가 토크쇼같은 예능이니만큼 이런 프로그램에 최양락 씨가 출연해 최양락만의 감각으로 유행을 맞춰가는 건 전혀 문제될 게 없지요.

예전 저랑 만났을 때 최양락 씨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나이 먹은 코미디언들이 활동을 못하게 되는 이유가 뭐가 있냐면, 자기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기 때문이에요. '야, 이 나이에 그런 역할은 그렇잖니' 그러면서 역할을 따져요. 그러면 날 샌 겁니다. 나이를 잊어야 돼요. 코미디 나가서 그런 거 왜 못합니까? 코미딘데, 연긴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그래서 시대의 흐름에 맞춰 나한테 맞는 역이다 싶은 거는 죽는 날까지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최양락의 연기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최근 예능에 출연하는 최양락 씨의 모습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나이를 잊은 코미디언의 연기'로 보고 싶습니다. '야심만만' 메인MC 'dj락'으로 첫 등장할 때 의상과 머리스타일을 70년대 뮤직박스 DJ처럼 꾸미고 나온 최양락 씨의 모습은 그야말로 '최양락의 연기철학' 그 자체인 것이지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한 달 정도 토크쇼 나가보니 토크쇼도 정말 '코미디'인 것 같고, 그 속에서 입담을 펼쳐내는 자신의 모습이 '코미디언다운 연기'라고 생각되시나요? 방송3사 돌아가며 팔았던 추억 또 팔고, 남의 추억에 재치 있는 말한마디 걸치지 못하면 방송에 얼굴 한 번 비추기 힘든 현실은 혹시 아닌가요?

그래서, 말입니다. 저는 최양락 씨가 지금 추억을 한꺼번에 다 팔지 말고, 조금씩 아껴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전히 코미디를 위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어 주시면 더욱 좋겠어요. 우리나라 방송의 코미디 현실은 몇년 전 최양락 씨가 지적했던 공개코미디 중심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잖아요.

물론 그런 고민 계속 하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최양락이 어떤 사람인데. ^^ 그냥 지금까지 한 말들, 혹시나 하는 우려로 받아들여주시면 좋겠네요.

아울러, 한가지만 더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저랑 인터뷰하실 때 최양락 씨는 '코미디언 인생 30주년'을 맞는 2010년(바로 내년입니다)에 "극장 하나 빌려서 연극을 한 번 해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서울예전 연극과 출신으로서 연극 한 번 해보자 했던 마음을 연기 인생 30주년을 맞으면서는 꼭 해야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던 걸로 압니다. 그 약속, 현재진행형인 거 맞죠? 저 그 연극 꼭 보고싶고, 꼭 가겠습니다. ^^

'최고의 현역 코미디언'으로서 최양락 씨의 빛나는 활약,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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