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콘에서 내가 제일 빠져 있는 코너는 '순정만화'다.
순정만화책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코너 전체의 분위기 자체가 우선 눈길을 끈다. '고고 예술 속으로'에서 강유미와 안영미, 그리고 '봉숭아학당'에서 노우진이 주로 사용하는 만화책 소품(딱히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풍선이나 눈동자, 표정 등을 그린 소품)이 '순정만화'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된 느낌이다. 하지만 역시 무엇보다 끌리는 것은 캐릭터다.
얼굴표정, 목소리, 몸동작, 내레이션 등 순정만화다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며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고 있는 이슬비.
앞머리로 얼굴을 가려 비밀스러운 캐릭터인채 하나 깨는 사투리와 목소리로 일순간에 반전을 만들어내는 푸르매.( 최근 '푸르스르매'로 이름을 바꿨다지)
'순정만화'스러움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유리, 소라를 포함한 1인3역을 재치있게 소화하는 백장미.
두말이 필요없는 마태풍(강유미). 그리고 보이시한 매력을 맘껏 드러내며 진짜 순정만화의 남자주인공 못지 않은 우지원 등 '순정만화'의 캐릭터들은, 하나하나가 눈을 사로잡는다.
그 중에서 내가 한 번 이야기하고 싶은 친구가 바로 '우지원'을 맡고 있는 장도연이다.
껑충한 키에 나무랄데 없는 외모를 가진 장도연을 처음 접한 건 '키컸으면'이다.
키 작은 이수근과 정명훈과 함께 있으면 큰 키가 더욱 도드라졌던 장도연, 키 작은 애인을 둔 큰 키에 미모를 가진 여인으로 행세하다 막판에 긴 다리와 팔을 맘껏 휘저어대며 막춤을 추는 모습에 'ㅋㅋ 저런 애가 다 있네' 싶었다.
그런데, 매회 거의 같은 포맷의 캐릭터에다 같은 춤을 추어대니 얼마 안 가 지겨워질 수밖에 없었고, '뭐 다른 거 없나'라는 기대를 끝내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오히려 훨씬 오랫동안 출연했음에도 큰 가슴을 부각시키는 자극적인 춤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이대 나온 여자' 곽현화만큼의 인기도 얻지 못했다.(근데, 요즘 곽현화는 뭐하나??)
그리고 '키컸으면' 이후에는, 몇몇 코너에 조연 내지 단역으로 잠깐씩 등장하는 것 외에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키컸으면'에서 저 정도 키와 외모를 가진 친구가 이런 막춤을 추다니 라며 내심 대견하게 눈여겨봤던 나로서는 아쉬운 감이 없잖았지만, 뭐 별로 볼 기회가 없으니 역시 주요 관심에서 사라질 수밖에.
그러다, '순정만화'에서 '우지원'을 맡은 걸 보게 됐다. 장도연의 캐릭터를 찾은 느낌이다. '우지원'보다는 어째 '슬램덩크'의 '강백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강유미야 원체 캐릭터가 확실히 잡혀 있으니 그렇다치고, 장도연은 '순정만화 남자주인공'의 역할에 딱 맞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슬비와 마태풍, 푸르스르메, 백장미 등 다른 캐릭터와도 매우 조화가 잘 된다.
눈여겨보면서 나름 애정을 가져왔던 연기자가 부진을 털어내고 이렇게 다시 생명력을 되찾아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 기분이 좋다.
그래서 '순정만화'가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장도연과 비슷한 경우가 바로 '고고 예술속으로'에서 강유미보다 더 두드러졌던 안영미인데, 한동안 안영미의 활약을 못보다 '황현희 PD의 소비자고발'에서 대사 한 마디로 큰 웃음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역시 웃음이 배가 된다.
반면 눈여겨봤음에도 아직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남는 친구가 있는데, 바로 김기열이다. 뜰 것 같으면서도 뜨지 않는 김기열은 매우 안타깝다. 김기열도 어서 빨리 자신에게 딱 맡는 캐릭터를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