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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불바다'와 김영삼, 그리고 1차 핵위기

뉴스후비기

by hangil 2009. 4. 1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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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SBS 라디오를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집권 비망록'이라는 것이 흘러나오고 있다. 20편에 걸쳐 방송된다고 하는데, 이틀 동안 방송된 내용을 듣자하니 기가 찬다.

어제, 오늘 방송된 내용은 1994년 당시 이른바 '1차 핵위기'와 관련한 김영삼의 '증언'이다. 김영삼은 방송에서 94년 당시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상황에서 전쟁을 막았던 것이 '전쟁만은 안된다'며 자신이 클린턴을 설득했기 때문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김영삼은 당시 북한의 핵시설이 있던 영변을 "때리기 위해" 미국 군함 33척과 두척의 항공모함이 동해에 와있었다며 위험천만했던 상황을 회고하면서 "근데 내가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했다. "전쟁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클린턴에게 전화로 절대 반대했다"는 것이다. "통수권자로서 우리 군인은 절대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전쟁을 전화통화를 막았다는 것이다.

김영삼이 클린턴에게 전화를 해 이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절대 전쟁만은 안된다'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뿐이었다. 1994년, 아니 1993년부터 1차 핵위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당시 김영삼 정부는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오로지 미국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북미간 협상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미국이 북한에 끌려다닌다며 강경대응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예로, 94년 2월 국방부는 주한미군과 국군의 전시 작전계획인 ‘OPLAN 5027'(작계 5027)을 발표하였다. 5단계로 이루어진 이 계획의 후반부는 주요 전력 격멸, 대규모 상륙작전, 평양 고립화, 점령지역의 군사통치 등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이미 팀스피리트 훈련과 주한미군의 전력 증강으로 등으로 민감해 있던 북한을 더욱 자극한 것이었다.

사실상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여 군비증강을 하고, 작계 5027 등을 수립했음에도 김영삼 정부는 미국이 실제로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군비증강에 대한 정보는 제때 제공되지 못했고 미국 정부가 실행에 옮길 때 통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미국이 전쟁 준비를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과정에서도 김영삼 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오히려 북한을 자극하고, 국민들의 반북대결감정을 고취하는 일이었다.

1994년 3월 15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 핵시설 사찰단을 철수시키자, 김영삼 대통령은 3월 17일 NHK와의 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3월 19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남북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 당시 김영삼 정부는 북한 박영수 대표의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공개해 오히려 전쟁 분위기를 조장하기조차 했다. 당시 박영수 대표의 발언은 북에 대한 제재 문제를 둘러싸고 양측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등 설전이 벌어진 와중에 나온 것이었는데, 전후맥락을 따져볼 경우 '전쟁이 일어나면 판문점에서 멀지 않은 서울은 불바다가 된다. 전쟁을 해서는 안되지 않느냐'는 의미의 발언이었다.

당시 '안기부장 특보'이자 대표적 극우인사 중 한 명인 이동복조차도 '서울불바다 발언'에 대해 "박영수 대표가 공격적으로 나온 발언이 아니라 방어적으로 한 얘기다. 이를 우리 정부가 이를 역으로 튀겨서 활용했다"고 증언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부는 앞뒤를 잘라 '서울 불바다 발언'만 공개해 마치 북한이 전쟁을 위협하는 것처럼 국민감정을 자극하고 조선일보 등 보수신문들은 '서울불바다 발언'을 대서특필하는 등 사싱상 '반북캠페인'까지 벌어졌다.

서울불바다 발언을 대서특필한 조선일보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방송. '서울불바다' 발언 이후 라면과 부탄가스 사재기가 벌어졌다.



그럼에도 김영삼은 SBS 라디오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에 대해 "그건 우리 국민에게 알리는 게 좋겠다. 미국도 아는 게 좋겠다"는 이유로 공개했다고 밝혔다. 비공개가 원칙인 남북 사이의 실무접촉 과정에 있었던 발언을 촬영해서, 그것도 앞뒤 잘라내고 자극적인 부분만 공개해놓고, 그저 '알리는 게 좋겠다'고 공개했다니 더욱 기가 찬다.

이후 남북 사이에 긴장을 고조될대로 긴장됐고, 6월이 되면 북한은 IAEA탈퇴, 핵사찰 거부를 선언하고 미국은 대사관 직원 가족 등 주한 미국인들을 미국 본토로 소개할 계획까지 추진하는 등 말 그대로 전쟁 직전에까지 치달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허둥지둥 김영삼은 클린턴에게 전화해 '전쟁만은 안된다'고 애걸복걸한 것이다.

김영삼은 SBS 라디오에서 이에 대해 "대사관의 여자들, 가족을 전부 미국으로 보낸다는 것을 발표한다고 하길래, 당신(레이니 주한미대사) 정신 있느냐, 우리나라 큰 일 난다. 내가 절대 반대라고 전해 달라. 그래서 클린턴한테 전화했더니, 안하겠다고.."라고 말했다. 자신이 전화해서 미국이 자국민 소개를 하지 않았다는 거다.

2003년 방송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한반도 전쟁위기 1994 · 2003'에 의하면 당시 미국은 김영삼의 말과는 달리 미국은 당시 영변폭격을 감행하려는 순간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군의 병력증강이 이뤄질 경우 북한이 휴전선에서 군사행동을 시작하면 북한을 선제 제압하기 위해 미국이 영변 폭격을 포함한 대규모 폭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을 비롯한 한국 정부는 미국이 어떤 군사적 계획을 갖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남북 사이의 대결을 조장하고 긴장을 부추기다 전쟁 위기가 현실화되자 그제서야 전화통화로 애걸복걸한 게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김영삼은 SBS 라디오에서 "한국전쟁 때는 미군이 없었기 때문에 처들어왔는데, 1994년에는 미군이 3만5천명이나 있었기때문에 그런 사태는 안온다고 봤기 때문에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미군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거라도 믿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안이한 인식을 가졌던 인사가 대통령이었다니 지금 와서 생각해도 참으로 아찔하고 한심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김영삼은 94년 1차 핵위기 해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 "(나는) 카터라는 사람을 엉뚱하게 봤다""카터가 가는 거 반대였다"고도 했다. 전화통화로 클린턴에게 애걸복걸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던 사람이 정작 위기 해소를 위해 북에 가는 사람을 놓고는 '엉뚱했다'니 '가는 걸 반대했다'고 말하니 정말 기가 찬다.

그래놓고 정작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하고 돌아온 카터가 자신에게 "김일성이 굉장히 겁을 먹고 있더라"며 "김일성에게 '이 위기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은 남한의 대통령 김영삼 씨 뿐이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증언'하는 대목에서는 차마 할 말이 없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방송


1994년 당시 실제 한반도가 전쟁 바로 직전 상황까지 내몰렸던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미국은 자국민을 소개시킬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고 할 동안 우리 국민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고, 한국 정부가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는 사실 또한 이미 만천하에 폭로된지 오래다. 사실상 김영삼 정부는 국민의 생명권을 방치했던 것이고, 김영삼이 바로 그 책임을 진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이제와 '집권비망록'이라며 마치 자신이 전쟁을 막았던 것처럼 한가한 소리나 늘어놓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남은 방송에서 김영삼은 과연 IMF 국가부도 사태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지 궁금하다.
SBS가 지금 이 시점에 왜 이런 '특별기획'을 아침마다 내보내고 있는지도 의아하다.

그냥 시대가 거꾸로 가고 있느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


1994년 전쟁위기에 대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 2000년 7월 9일 방송된 MBC <이제는 말할수 있다> '94년 한반도 전쟁위기'
- 2003년 1월 26일 방송된 MBC <이제는 말할수 있다> '한반도 전쟁위기 1994·2003'

를 보시고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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