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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반미' 잣대 들이대는 사람들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09. 9. 1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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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선일보 칼럼란에 박은주 엔터테인먼트부장이 쓴 <이태원 살인 사건과 팝콘 반미주의>라는 글이 게재됐다.

박은주 부장은 최근 개봉한 '이태원 살인 사건'을 만든 홍기선 감독이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선택' 등을 만든 '운동권 감독'이라 할 만한데, 미군 혹은 재미교포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한국 학생 살인 사건을 반미 영화로 만들지 않았다며, "이런 게 바로 진보적 영화만들기"라고 칭찬한다.

홍기선 감독에 대한 절찬은 칼럼 곳곳에 진하게 묻어나는데, "감독은 미국인이 범인인 사건을 다루되, 그저 '양키 고 홈' 같은 1차원적 감정 배설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반미 영화를 가장 잘 다룰 것 같고, 다룰 '자격'이 있는 감독이 자신의 장기(長技)를 버렸다는 건 일종의 충격"이라고 평가했고 홍기선 감독의 '이태원 살인사건'이 "팝콘 같은 반미 영화에 식상한 관객들에겐 작지 않은 선물"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박 부장은 "반미 정서는 요즘 영화 흥행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며 "반미가 지적(知的) 액세서리가 되고, 돈도 되는 시대"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팝콘 반미주의"? 그건 니 생각이고

박 부장은 "우리 흥행 영화에서 나타난 미국의 이미지는 대개 부정적"이라며 영화 '괴물'과 '국가대표'를 사례로 들었다. '괴물'에서 미국은 쑥대밭이 된 한국 땅에서 바비큐파티나 벌이는 나라로, '국가대표'에서는 주먹을 부르는 얄미운 운동선수들이 많은 나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묻고 싶다. 정말 '괴물'과 '국가대표'가 '반미 영화'인가? '괴물'을 보고 '국가대표'를 본 수백만의 우리 관객들 중 어느 정도나 되는 사람들이 과연 이 영화들을 '반미 영화'로 생각하길래, 박 부장은 자신만만하게도 이들 영화를 "팝콘 같은 반미 영화"로 낙인 찍을 수 있는걸까?

단언컨대, '괴물'과 '국가대표'를 반미영화로 보고 싶은 것은 박은주 부장, 당신 생각일뿐이다. 미국에 대해서는 일말의 부정적인 묘사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당신이나, 당신이 속한 조선일보, 그리고 조선일보류가 짜놓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쪼개고 나누고 규정하는 사람들의 생각일뿐이다. '국가대표'를 두고 '반미'는 물론 '반국가', '계급갈등'을 조장하는 영화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변희재 따위가 대표적이다.

주한미군이 한강에 포름알데히드라는 독극물을 무단 방류한 사실을 영화화했다는 이유로 '괴물'이 반미영화라면, 죽은 사람(조중필씨)도 있고 죽인 사람(미군 혹은 재미교포)도 있지만 범인은 없었던 살인 사건을 다룬 '이태원 살인 사건'도 반미영화로 규정해야 마땅하다.

박 부장 말대로 영화에 미국이 부정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괴물'과 '국가대표'가 '반미영화'라면, 마찬가지로 괴물의 습격을 받은 한국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제 몸을 돌보지 않았던 주한미군의 용감한 모습이 등장한 '괴물'은 '친미영화'로 볼 수 있겠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따뜻한 인간적 면모를 그려낸 '웰컴투 동막골'도 '친미영화'로 규정할 수 있겠다.

과연 영화에조차 반미니 뭐니 잣대를 들이대 재미를 보려는 건 누구란 말인가?
"팝콘 같은 반미 영화에 식상한 관객"이라니? 그렇다면 '괴물'로 '웰컴투 동막골'로 충분히 식상해했던 관객들이 왜 그렇게 많이 '국가대표'를 찾았단 말인가?
만약 '이태원 살인 사건'이 흥행에 실패한다면 미국을 부정적으로 다루지 않아서라고 해석해야 하는 걸까?

조선일보에서 이런 류의 칼럼을 보는 건 정치, 사회 관련 사안만으로도 정말 식상하다. '엔터테인먼트 부장'까지 꼭 그래야 하나? 엔터테인먼트를 다루는 사람들만이라도 좀 '문화적 칼럼쓰기' 하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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