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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극초반 히어로는 백윤식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09. 11. 1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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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새 수목미니시리즈 <히어로>가 시작했다.

원래 여주인공이었던 김민정이 어깨부상으로 갑작스레 하차하면서 방송이 한 주 연기되는 등 시작도 하기 전에 고비를 겪기도 했지만, 스타트가 나쁘지 않다.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없지만 첫회부터 일단 캐릭터는 어느 정도 구축한 듯 하고, 드라마의 전반적인 분위기 또한 밝고 유쾌해 보는 데 부담이 없다. 관건은 아무래도 3류찌라시 기자와 주류메이저신문 기자와의 대결이 얼마나 설득력있게 전개되느냐에 달린 듯 하다.

극초반 눈길을 잡는 건 15년 만에 출소한 전설의 조폭 '쌍도끼파 두목' 조용덕 역의 백윤식이다. 몇 마디 대사도 없었지만, 포즈 하나, 움직임 하나, 표정 하나하나에서 백윤식의 카리스마와 포스가 뿜어져나왔다. 15년만에 출소하면서 교도소에 들어갈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온 탓에 짧은 소매의 그것도 흰색의 셔츠에 밀짚 중절모를 쓰고 찬바람 부는 거리를 걷는 그의 모습은 당당하기 이를 데 없으면서도 그 부조화에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도록 초라하기도 했다. 당당함과 초라함, 그 두가지 모순을 동시에 보여주면 웃음을 줄 수 있는 배우는 아무래도 백윤식이 딱이다.


물론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이미 다른 작품들로 구축된 백윤식의 이미지와 캐릭터 탓이다. 극초반 백윤식의 모습은 영화 '싸움의 기술'의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고, 역시 영화 '타짜'에서도 익히 봐왔던 모습이며 '범죄의 재구성'으로도 연결된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구축된 이미지를 100% 활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고, 반대로 이런 모습만 보여준다면 백윤식은 정체된 채 과거를 울궈먹는 걸로도 볼 수 있다. 백윤식 뿐만 아니라 진도혁 역의 이준기는 드라마 '일지매'를 연상시키게 했고, 윤소이는 '아라한장풍대작전'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히어로>의 캐릭터는 연기자들이 그동안 쌓아온 캐릭터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그것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답습에 머물지 진화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

어쨌거나 극초반 <히어로>의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은 주인공 이준기보다는, 옛날 졸개의 퀵서비스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서도 전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싸가지없게 구는 배신한 부하에게 재털이를 그대로 한 방 날리는, 사채업자에게 위협을 받는 진도혁의 앞에 나타나 갑자기 셔츠를 확 열어 제끼며 촌스런 쌍도끼 문신을 보여주며 일격에 사채업자들을 제압하는, 그리고 "그럼 신문사 하나 만들지"라는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을 정리하며 다음편으로 시청자를 인도해주는 백윤식이었다. 백윤식만으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었고, 다음을 기대하게 했다. 백윤식이 잘 깔아놓은 멍석에서 주인공들이 제대로 논다면 <히어로>는 충분히 수목의 지존을 놓고 <아이리스>, <미남이시네요>와 한 번 붙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가지 더 덧붙인다면,

<히어로>의 기획의도를 압축하자면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3류 인생이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욕으로 세상에 부딪혀가는 고군분투기' 정도라 할 수 있겠는데, 판에 박혀 하나마나한 권선징악의 교훈이나 들려준다면 '코믹드라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고, 얼마만큼 현실에 기반해 사람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느냐에 따라 <히어로>가 괜찮은 드라마의 목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는 '쌍도끼파 두목' 조용덕을 보기 위해 오늘도 <아이리스> 대신 <히어로>로 채널을 돌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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