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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09. 11. 2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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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선덕여왕의 작가가 미실의 죽음에 너무 공력을 들이고, 머리를 너무 많이 썼나보다. 미실의 죽음 이후 선덕여왕의 흐름은 수습은 뒷전, 일단 이야기를 꼬고 보자는 식인 것 같다. 어짜둥둥 긴장을 만들어내고 갈등을 일으켜서 유신과 비담의 대결을 끌고 나가며 그 사이의 선덕여왕은 또 지혜를 발휘하는 뭐 그런 전개인 줄을 알겠는데, 꼬여만 가는 이야기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뭘 이렇게나 복잡하게 만드나? 작가가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쓰는지 정말 알고 쓰나 싶고, 연기자들도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연기하는지 정말 제대로 이해하고 연기를 할까 싶다.

애초 함께 덕만의 여왕 옹립에 동참한 신라계, 즉 월야와 설지가 선덕여왕의 즉위 이후에도 계속 복야회를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다. 이미 덕만과 미실의 대결 가운데 복야회의 근거지와 주요인물들은 모두 덕만과 유신은 물론 비담에게도 파악됐을 뿐 아니라 함께 움직였을 정도였다. 그런데 '비담 몰래, 덕만 몰래 복야회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설정이라니...


그렇다치자. '복야회는 인정할 수 없다'는 덕만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조사를 모두 비담에게 맡겨놓고, 복야회 문제가 유신에게도 이어질 걸 뻔히 예상하면서, 결국 유신이 조사를 받게 되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비담의 금강계를 어떻게 깨야 하나' 고민할 건 또 뭐람. 복야회와 유신의 처리를 놓고 홀로 망루같은 곳에 앉아 고민하는 선덕여왕의 모습은 참 어색하고 당황스럽다. 그뿐이랴..

사량부 관원들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지던 유신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구출하는 설지를 보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따지며 가서는 안되는 걸 알면서도 월야를 만나러 굳이 가는 건 또 뭐고, 기껏 가서 주먹이나 한방씩 날릴 뿐 홀몸으로 다시 '짠'하고 하필이면 덕만이 "유신을 신국의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말을 하기 직전에 궁에 나타날 건 또 뭐란 말이냐.

이런 비담의 계략을 알면서도 기껏 죽방과 아무 영양가 없는 대화나 나누는 춘추는 또 뭐고, 유신이 곤란을 당하는 상황에서, 과거 유신과 대적했던 화랑들까지 나서 유신을 옹호하는데 아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알천은 또 뭐냐??

나는 미실의 죽음 이후 선덕여왕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본다. '비담과 유신의 대결구도'라니... 애초 이런 이야기가 예정되었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비담이 인기를 얻자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꼬여만 가는 이야기가 억지스럽다.


미실의 죽음 이후 선덕여왕은 삼한일통의 대업을 달성하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는 정도에서 깔끔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종방으로 나아갔으면 딱 좋았을 것 같다. 괜히 비담과 유신의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복야회를 부각시키고, 비담은 갑자기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전지전능의 전략가가 되었다. 아무리 미실의 세력까지도 포섭하는 탕평을 펼친다고는 하나 은밀하게 내사를 진행하며 모든 정보를 모으는 사량부 비담 아래 설원 등 미실세력을 두다니... 억지스럽다.

어제 선덕여왕은 수습하기 힘든 이야기는 결국 어떻게 풀릴 수밖에 없는지 분명하게 보여줬다. 마지막 장면 유신을 신국의 적으로 규정할 것이냐, 아니면 비담을 견제할 것이냐(왜 이게 고민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참 난해하지만)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을 때리던 덕만 앞에 복야회가 구출해간 유신이 떡하니 나타났다.

그런 유신을 빨리 잡으라면서 뒤돌아서는 덕만은 '고마워, 유신'이라고 독백한다. 이건 뭔 시추에이션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월야 등을 설득해서 함께 돌아올 것처럼 복야회에 구출되어 갔던 유신이 때마침 그때 홀로 '짠'하고 나타나야 비로소 이야기가 풀리게 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희곡에서 기계장치를 이용해 갑자기 신이 무대에 나타나 모든 상황을 정리하는 것을 일컬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라고 하는데, 유신의 등장이 딱 그 짝이었다. 예상컨대 앞으로 그 역할은 아마 백제의 계백이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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