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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스'의 교훈, 야생은 강호동도 MC몽도 아니다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9. 12. 2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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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소탕작전'(나중엔 '축출작전'으로 바꼈지만)을 펼치기 위해 제작진 왈 'MBC 예능프로그램 사상 최대'의 인력과 물량을 쏟아부었던 일밤 '대한민국 생태구조단, 헌터스'가 방송4주만에 사실상 '종영'했다. 예고에서는 '헌터스'의 이름이 그대로 붙어있었지만 그보다 앞으로 선보일 코너는 '에코하우스'로 명명될 것 같다.

'에코하우스'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이산화탄소 배출과 관련해 출연자들이 에코하우스에서 생활하며 '탄소 제로'에 도전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생태'를 내세웠던 일밤의 공익적 예능의 타겟이 '멧돼지'에서 '이산화탄소'로 급선회한 것이다.

애초 '멧돼지 사냥'이라는 포맷에 우려를 나타내며 이후 본방에서 재미도 감동도 웃음도 아무것도 주지 못하고 방황하던 '헌터스'를 보며 씁쓸했던 터라 제작진의 결단이 일단 반갑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곧 막을 내릴 것 같다'는 의견이 우세했는데, 그럼에도 '일밤'의 대대적인 변화를 내세우며 야심차게 출발했던 프로젝트라 포맷을 변경하는 게 제작진으로서는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이 정도면 발빠른 결단이라 할 만 하다.

(관련글 : 새로운 일밤, 멧돼지를 소탕한다는데.. / 오히려 농촌에 민폐끼치는 헌터스 )


'헌터스'와 관련한 지난 글에서도 잠깐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나는 '헌터스'의 가장 큰 교훈은 '야생은, 야생호랑이 강호동도, 야생원숭이 MC몽도 아니다'라는 점을 방송 제작자들에게 깊이 확인시켜줬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의 '야생' 그 자체, 즉 생태계는 '리얼버라이어티'를 주름잡으며 '1박2일'에서 강호동과 MC몽이'야생'을 내세우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 연예인들과는 달리 제작진들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멧돼지'는 예능의 재미를 위해 험한 파도에는 스스로 뛰어드는 '시베리아 야생수컷호랑이 강호동'이 아니었다


추측컨대 제작진들은 거의 매일같이 신문과 방송에 등장하는 멧돼지 소식에 '멧돼지가 있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멧돼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을 것 같다. 농촌은 물론 도심 한복판에까지 나타나 사람들과 자동차를 들이박는 멧돼지의 모습을 보며 '저 놈들과 쫓고 쫓기는 모습을 담아내면 재미는 따놓은 당상'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나 많이 출몰한다는 멧돼지는 정작 코빼기는 찾을 수 없었다. 포획틀을 설치해 먹이만 뿌려놓으면 300kg 거구의 멧돼지가 당장 잡힐 것이라 자신만만했을테지만 기껏 야생고양이만이 들락거릴 뿐이었다. 사냥개에게조차 카메라를 달아놓았는데, 그 사냥개가 멧돼지를 쫓는 장면에서조차 멧돼지 모습은 구경조차 할 수 없고, 원거리에서 방송카메라로 멧돼지를 쫓고 있다는 사냥개를 보여주면서도 그 어디서도 멧돼지 모습은 찾을 수도 없는 '안습' 그 자체가 지난 4주 동안의 '헌터스'였다.

한마디로 멧돼지 쉽게 봤다가 큰 코 다친 격이 '헌터스'인 셈이다. '공익'을 포장해 '재미'를 쫓으려 자연을 쉽게 본 일밤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뉴스와 다큐멘터리 등에서도 부디 '헌터스'의 교훈을 되짚어 볼 일이다.

비단 방송뿐일까. 전국 각지에서 17만마리나 득시글댄다는 멧돼지조차도 인간의 마음대로 뜻대로 할 수 없는데, 자연과 생태계를 인간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이 또한 '헌터스'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강바닥을 파헤치고, 물길을 바꾸고, 그래서 물을 살릴 수 있다고 오만하게 장담하고 있는 사람들 특히!

덧) 새롭게 시작하는 '에코하우스'에 대해서도 일말의 우려가 든다.
일단 얼마나 재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에코하우스'에서 다뤄질 내용과 비슷한 내용은 이미 '무한도전'에서도 다뤄진 적이 있다. 바로 자전거페달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내용 등이었다. 이런 내용이 '무한도전'의 찌질한 캐릭터들이 도전하는 것으로 1회성 재미는 충분하지만 과연 매주 방송될만큼 충분한 재미를 보장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내용은 다큐멘터리인 'MBC 스페셜'에서도 다뤄진 적이 있는데, 바로 '이현우·박진희의 북극곰을 위한 일주일'이었다. 다큐로서는 충분한 재미가 있었지만 이런 내용이 예능으로 다뤄졌을 때는 또 어떤 재미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또 하나 드는 생각은, 갑자기 '멧돼지'를 접고 '탄소 제로'에 도전하는 '에코하우스'가 과연 얼마나 '지구온난화'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기획되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나아가 혹시 '탄소 제로'를 다루는 내용이 최근 코펜하겐 기후회의 이후 MB가 주창하고 있는 '미 퍼스트(Me first) 운동'에서 어떤 영감을 얻은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정부 정책에 호응해 '내복 입기', '실내 온도 낮추기', '전기 코드 뽑기' 등과 같은 캠페인성 내용으로 채운다면 이 또한 예능적 재미를 담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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