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오히려 농촌에 민폐끼치는 헌터스

쇼오락후비기

by hangil 2009. 12. 15. 14:59

본문

애초 '멧돼지 소탕작전'을 펼치려다, "멧돼지가 아닌, 농촌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했던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 '대한민국 생태구조단, 헌터스'가 갈수록 갈팡질팡 헤매고 있다. 특히 농작물 피해 등 멧돼지로 인한 농촌 지역의 피해를 막으려 했던 기획의도 자체가 무색하리만큼 오히려 '헌터스'가 농촌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2회가 방송되는 동안 첫회에서는 멧돼지 구경도 못했고, 두번째 방송에서는 300kg 짜리 대형 멧돼지와 80kg짜리 멧돼지 등 두 마리의 멧돼지를 발견하긴 했다. '헌터스'는 이들 멧돼지를 농가가 없는 깊은 산 속으로 쫓아냈다며 "멧돼지 축출작전 성공"이라고 자화자찬했는데, "단순히 쫓는다는 건 일시적일 뿐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헌터스' 메인MC 이휘재의 말처럼 그건 '작전 성공'도 아니고 농촌의 피해를 줄인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심지어 실제로 멧돼지가 산 너머로 쫓겨간 건지 아니면 그저 눈 앞에서 사라진 건지도 모를 일이다. 멧돼지가 농가가 없는 곳을 도망갔다한들 먹을 게 없으면 인간의 농작물에 맛을 들인 멧돼지는 또 다시 농가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헌터스'에는 총을 든 수명의 엽사들과 수마리의 사냥개가 동원됐다. 만약 방송이 아니었다면 이들 앞에 나타난 멧돼지는 잡아야 할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농촌 지역에 피해를 입히는 멧돼지의 개체수를 줄여야 할 역할을 가진 그들은 자신들 앞에 나타난 멧돼지를 죽여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총 한 번 쏘지 못하고 멧돼지를 쫓기만 했다. 여론의 질타를 호되게 당한 '헌터스'가 '멧돼지를 총으로 쏴 죽이지 않는다'고 했으니 방송에서 엽사들이 멧돼지를 향해 총을 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농민들 입장에서는 집 마당에까지 출몰하고 조상들의 묘소까지 파헤치는 멧돼지는 쫓아내야 할 동물이 아니라 죽여 없애야 할 존재다. 그런데 엽사들까지 나섰음에도 눈 앞에 멧돼지를 그냥 보냈다. 냉정하게 말해 '헌터스'는 그들이 찾아간 의령군 개승마을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민폐만 끼친 것이다. 그들때문에 잡을 수도 있는 멧돼지를 그냥 보냈기 때문이다.

물론 난 '헌터스'가 그 멧돼지들을 총으로 쏴서라도 죽였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방송이 아니었다면 전국의 멧돼지 출몰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의령군 개승마을에서도 일어났을 것이고 그 마을 농민들에겐 당연한 일이었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만약 '헌터스'가 출몰한 멧돼지를 잡아 죽였다면 그 마을의 농민들에게 단기적인 도움은 줬겠지만 한 두마리 잡고 다른 데로 가면 어차피 같은 일은 반복된다. '헌터스'가 몇 달 동안(적어도 멧돼지 포획이 허용된 내년 2월까지) 방송되며 매회 한두마리를 잡았다 해도 전국의 멧돼지 개체수를 줄이는 데 어떤 도움이 될지는 산수만 해도 알 수 있는 문제다.

멧돼지를 잡든지 쫓아내든지 멧돼지를 쫓는 데 '헌터스'의 초점이 맞춰진 이상 '헌터스'가 생태를 구조한다는 공익을 구현하리라 여기기는 힘든 상황이다.

사실 '헌터스'가 농촌에 민폐를 끼치는 건 첫방부터 조짐이 있었다. 대규모로 출동한 연예인 MC들을 기다리며 황량한 겨울들판에 약간은 조잡하게 설치된 야외세트 앞에 모여 앉은 마을의 농민들과 바퀴가 여럿달린 신기한 산악용 바이크(?)를 타고 나타난 연예인들을 보며 '헌터스'가 농민들을 위하는 방송이기보다는 농민들을 이용한 방송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찾아다니며 들어도 될 충분한 말을 굳이 마을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그림이나 만드는 걸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제 '헌터스' 제작진들은 진퇴양난의 곤란한 처지에 빠진 것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나는 애초 '헌터스'가 멧돼지를 향해 총을 쏘고 사냥개들이 달라붙어 물어뜯고, 거대한 크기의 멧돼지를 쓰러트려 그 앞에서 MC들이 한바탕 승전의 환호성을 올리며 난리 피우는 모습을 그릴 것 같아 우려했다. 그게 아닌 '공익적'으로 만들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제작진이 가지고 있길 바랬다. 하지만 없나보다.


기껏 등장한 게 포획틀인가본데, 첫방에서는 무용지물이었고, 두번째 방송에서는 포획틀 안에 들어온 야생고양이를 가지고 시청자들을 낚는 데 급급했다. 포획틀을 갔다놓고 그 안에 음식을 넣고 주변에 막걸리를 뿌리면 전국에서 출몰하는 17만마리 멧돼지 중 한 마리 정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겠지만 '야생'이 사람 마음대로 움직이지는 않는 모양이다. 멧돼지는 '시베리아 야생호랑이' 강호동도 아니고 '야생원숭이' MC몽도 아니었다.

거기다 '헌터스'는 생명을 두고 어설프게 '공익'을 내세웠다가 지금 '공익'은 고사하고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마저 잃고 있다.

일밤 보도자료


아마 제작진은 허구헌 날 뉴스에 등장하는 멧돼지 소식을 접하며 이렇게 만들 수 있으리라 여겼나보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멧돼지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멧돼지 없이 포획틀 주변에서 밤새 불침번을 서고, 산을 헤매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스릴과 모험, 전율은커녕 지루하기만 했다.

곤경에 빠진 '헌터스'는 이제 시청자들로부터 지혜를 구하고 있다. "농민과 멧돼지 둘 다를 위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달라"고. 하지만 지혜가 나오게 될 지 의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헌터스'는 방송, 그것도 예능에서 생명을 다루는 일이 결코 쉽지 않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임 방송 제작자들에게 일깨워준 것 같다. 그것이 '헌터스'의 성과라면 성과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