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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한섬'의 죽음을 폄하하지 말라

드라마후비기

by hangil 2010. 3. 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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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에서 한섬이 죽었다.

송태하와 동료들을 배신한 것처럼 정체를 숨기고 나쁜짓을 할 때도 이상하게 애정이 갔던 캐릭터였고, 나중에 그것이 원손을 지키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거짓배신임이 밝혀졌을 때는 그 연기력에까지 감탄을 보냈던 캐릭터였고, 제주에서 마음을 주고 구애를 했던 궁녀가 죽고 홀로 원손을 데리고 떠나올 때는 그 애틋한 마음이, 솔직히 언년 혹은 혜원을 향한 대길과 태하의 마음보다 더 마음을 울렸던 캐릭터다.

듬직하면서도 재미있고, 진지하면서도 편안한... '추노'에 주목할 빼어난 조연이 어디 한둘이 아니지만 조진웅이 연기한 한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상깊은 조연이었다.

그 한섬이 죽었다. 이제 결말로 접어드는 '추노'니 지금쯤 한섬이 죽는 건 별로 아쉬울 건 없다. 다만 최근 몇회 등장하지 않다 오랜만에 등장했는데 나오자마자 죽는 게 조금 아쉽긴 하다.

그런데, 한섬의 죽음을 다루는 '추노'는 역시 또 한 번 감탄시켰다. 조선비의 배신에 분노해 온몸에 칼을 맞고 끝내 죽음에 이른 과정도 인상깊었지만, 그 보다는 한섬이 죽는 순간 그 다음이 '추노'가 왜 '추노'인지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갑자기 노출과다가 된 것처럼 화면이 하얗게 변하고 그 사이 한섬이 걸어나오더니, 어디선가 한섬을 부르는 여인의 소리가 들리고, 제주에서 자신의 이름이 '장필순'임을 밝히고 죽었던 궁녀가 '어디갔다 지금 오느냐'며 나타났다. 그리고 반가움을 나눈 한섬과 필순은 같이 손을 잡고 점점 멀리 사라진다.

이 장면이 그토록 인상 깊었던 것은 이제 결말로 치닫으며 지금까지 펼쳐놓은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야 할 '추노'가, 한마디로 갈길이 만만찮게 바쁜 '추노'가 조연 캐릭터가 가슴에 담아두고 미처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마저도 끝내 저승에서나마 이루게 했다는 거다. 이를 통해 나는 '추노'가, '추노'를 규정하고 수사하는 그 어떤 수식과 표현들보다 '휴머니즘'을 가장 큰 줄기이자 중심으로 가진 드라마로 느끼게 했다.

제주에서 필순을 남기고 떠나며 오열하는 한섬


물론 이전에도 반상을 뒤엎자는 동료들의 주장에 대해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게 좋은 거 아니가?'라고 했던 '업복'의 말, 천지호가 죽자 오열하는 대길을 끝내 죽이지 못하고 돌아오는 업복, 끝내 최장군과 왕손이를 살리는 등 휴머니즘을 느끼게 하는 장면과 대사가 한 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막바지로 가는 '추노'가, 황철웅이 계속해서 송태하와 대길을 쫓고, 노비들의 반란이 절정으로 치달아 가는 이 긴박한 때에 한섬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것도 판타지로 풀어내며 잠깐 한박자 쉬어 간 것은 '추노'답게 '추노'의 방식으로 휴머니즘의 백미를 보여준 것으로 나는 평가한다.

 최근 몇달 '추노'가 있어 너무 행복했고, '추노'와 곧 작별해야 하는 남은 시간이 너무 아쉽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 됐지만, '추노'는 '최고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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