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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선 결과 활용하는 조선일보의 엽기적 센스

찌라시후비기

by hangil 2010. 7. 3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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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재보선 결과와 관련해 조선일보가 사설을 썼다.
제목은 <민주, 다시 서려면 지방행정·교육부터 제자리로>다. 의미심장하다. 민주당이 지난 지방선거 승리에 도취해 오만하고 안이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이번 재보선에서 참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민주당을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야 당연하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민주당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행정'과 '교육'을 거론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알 거다.

재보선 패배는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의 현 지도체제(오늘 정세균 대표가 사퇴한다고 했지만, 어쨌거나)의 책임이 가장 큰데도, 조선일보는 그 책임을 6.2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야당 지자체 단체장들과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에게 돌리며 이들을 타겟으로 삼아 흔든 것이다.

조선일보 7월 30일 사설


조선일보는 "민주당 자치단체장들은 취임하기도 전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4대강 사업에 반대 스크럼부터 짜고 나섰다"고 야당 자치단체장들을 공격했고, "친(親) 전교조 성향 교육감들은 민주당 당적(黨籍)을 가진 건 아니지만 선거를 전후해 민주당과 사실상 한 무리가 돼 움직여 왔다", "전교조의 목소리를 확성기에 실어 보내면서 교육 현장과 학부모·학생들을 뒤흔들었다"며 진보성향 교육감들을 공격했다.

심지어 "야당 출신 지자체장들은 또 취임하자마자 전임자가 임명해 임기가 몇 년이나 남은 지방공기업 인사들에게 사표를 내라고 했다" "사실은 후보 단일화에 동의해 준 다른 야당들에 돌릴 '떡'을 마련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MB정권 출범 이후 조선일보에서 실종된 듯한 '코드인사에 대한 비판'이 드디어 다시 부활한 것이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 야당 자치단체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사 검색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송영길 인천시장이 인천시 산하 지방공기업 임원 교체를 추진하는 것 같다. 특히 인천도시개발공사가 대표적인데, 인천도시개발공사의 방만한 적자운영은 조선일보조차 지면에서 지적한 적이 있는데, 그 책임을 묻는 것을 두고 이런 지적을 하다니, 참으로 조선일보답다.

더구나 아직 교체가 이뤄지지도 않았는데도, 지레짐작하여 "다른 야당들에 돌릴 '떡'을 마련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강변하는 대목에선 정말 할 말을 잃을 정도다.

참으로 조선일보의 센스는 탁월하다. 탁월하다못해 엽기적이다. 모든 사람이 민주당 공천의 안일함과 정세균 체제에 대해 비판할 때 조선일보는 과감히 재보선과 무슨 상관이라고 임기를 시작한지 한달도 되지 않은 야당 자치단체장들과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을 걸고 넘어졌다. 백보양보해 그렇다치더라도 임기시작과 동시에 권한이 정지된 이광재 강원도지사 같은 경우는 얼마나 억울한가.

이번에 이런 센스를 보여준 조선일보가 두달여 전 6.2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참패로 끝난 직후에는 어땠을까?

조선일보 6월 4일 사설


당시 사설을 보자. 제목은 <여권, 인사·정책·소통 장애 대대적으로 혁신해야>이다. 제목이 그럴듯하지만, 보다시피 조언의 성격이 강하지 딱히 비판적이라 하기는 힘들다.

본문을 보자.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중간평가는 그만큼 냉정하고 가혹했다"고 했지만, 정작 무엇에 대해 그렇게 냉정하고 가혹했는지는 찾기 힘들다.

"국민과의 소통에 앞서 여권 내부 소통의 문제부터 바로잡을 일이다"며 국민과의 소통보다 친이/친박으로 갈라진 한나라당의 화합을 주문했고, "여권 쇄신의 출발은 인사"라며 말이야 바르지만 조선일보로서는 정권 내 권력 다툼에 발을 담궜음이 분명한 요구를 했고, 세종시 수정안과 4대강 사업과 관련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열지 못했다"고 했지만 "세종시 문제는 이 사안의 거론 시기부터 어긋난데다"라거나 "4대강 사업도 착공시기는 같았더라도 준공 시기를 유연하게 조정해 반대 여론이 결집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과 제안이 이어졌다"며 그 자체보다는 본질과는 전혀 무관한 시기의 문제만 집적댈 뿐이었다.

그래놓고 MB정권 중간평가 성격의 6.2 지방선거와는 비교하기도 민망한 재보선 결과를 두고서는 정세균 체제의 민주당도 아닌 임기 한달도 되지 않은 야당 지자체장과 진보교육감들을 조지고 있으니, 입이 딱 벌어질 수밖에.

이런 건 배워야 한다. 그리고 고스란히 같은 방식으로, 아니 더욱 업그레이드해서 되갚아줘야 한다. 이것이 내가 조선일보를 신문으로 취급하지 않으면서도 인터넷에서 굳이 기사를 찾아보는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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